"언니 집에 OO책 있어?"
"아니 없는데…우리 집에 있는 건 이거!"
"아, 내가 착각했네. 있으면 좀 빌려보려고 했어. 요즘 나 책 빌려서 잘 봐."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아이들이 어렸을 적, 나를 전집의 세계로 이끌다시피 한 동생이었다. 그런 동생이 책을 안 사고 빌려본다고? 이게 무슨 일이람? 궁금증은 자세히 이야기하면서 풀렸다.
"언니 나 요즘 책 빌려보잖아. 일정 기간 대여비를 내면 집으로 책을 갖다주고 또 가져가. 요즘 코로나 19 때문에 도서관에서 책도 맘대로 못 빌려 보잖아. 또 필요해서 책을 사도 애들 볼 때가 지나면 또 짐으로 남아서 처리하기도 어렵더라고. 그래서 빌려보기 시작했는데 좋더라고. 특히 둘째가 좋아하는 학습만화 방학 중에 빌려서 실컷 보고 며칠 전에 반납했어."
귀가 솔깃했다. 그동안 학습만화는 정말 간절히 원할 때 생일선물이나 특별한 날 이벤트로 사주고 대부분은 도서관에 가서 읽게 했다. 그런데 도서관에 비치된 책은 다른 아이들이 너무 많이 봐서 상태가 안 좋거나, 몇 권은 빠져 있거나 해서 늘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마저도 요즘은 코로나 19로 도서관 대부분이 문을 닫아 대출도 어려워졌다.
그랬는데 이런 반가운 소식이라니. 당장 사이트 정보를 받고 아이들이 즐겨보는 학습만화와 재밌을 것 같다는 시리즈 책 4권을 대여했다. 다음날 책이 도착했다. 어린이책 중고서점에서 운영하는 데라고 들어서 근처 지역 대리점에서 대여해주는가 싶었는데, 보낸 지역이 청주였다. 헐. 청주에서 하루 만에! 속도가 가히 놀라웠다. 그런데 이건 예상 못 했다.
◇ 책 대여 서비스 알고 좋았는데… 이 책을 누가 봤을지, 갑자기 불안해졌다
정부가 코로나 19의 위기 경보 단계를 '경계'에서 '심각' 단계로 격상한 거다. 그러자 갑자기 나도 이 책의 동선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봤을까? 소독은 하고 보내는 건가? 불안이 엄습했다. 그제야 부랴부랴 소독제로 책을 한 권, 한 권 닦아냈다.
이 시국에 괜히 빌렸나 싶은 생각이 들 무렵, 지인의 말이 생각났다. 어렵게 문을 연 도서관에서도 예전과 달리 책을 일일이 소독한 다음에 대출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거였다. 코로나 19가 바꿔놓은 일상이 아닐 수 없다. 이랬는데 그걸 깜빡하다니. 혹시 관련한 공지사항이 있는지 홈페이지에서 확인해 보았지만, 책 소독과 관련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쉬웠다. 있었으면 덜 불안했을 텐데….
이런 내 마음과는 무관하게, 아이들은 대여한 책을 만족스럽도록 읽고 또 읽는 중이다. 반납일이 언제인지도 따져가면서. 유튜브 볼 시간 다 보고 심심하다는 말도 조금 줄어들었다. 뭔가 조용하다 싶으면 책을 보고 있으니, 나 또한 안심이 된다. 그런데 반납 이후에 또 빌려보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한국은행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차단을 위해 금융기관을 거쳐 들어온 화폐도 2주간 보관 후 내보겠다고 하는 마당이니까, 나도 조심 또 조심해야지.
결국 개학이 일주일 연기됐다는 소식이다. 아이들은 그저 기뻐하는 눈치다. 예비 중학생인 큰아이는 이러면 여름방학이 줄어들고, 더운 날 학교에 더 가야 한다는 이른 불만을 토해내고 있지만. 두 아이 모두 학원에 가지 않아 감염병에 대한 걱정은 덜하지만, 엄마인 나는 좀 안쓰럽다. 동네에서 아이들 노는 모습을 좀처럼 보기 힘들어서다. 내 아이들 역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외출을 삼가고 있으니까.
그나마 27일, 전국적으로 어린이집을 다음 달 8일까지 휴원 하기로 하면서 아파트 단지 놀이터에서 몇몇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집에만 있기 답답해서 잠시나마 아이들 숨통을 트여주러 나온 걸 거다. 포근해진 날씨만큼 찬 공기도 순해졌다. 이 바람을 타고 사나워진 코로나 19도 속히 잦아들었으면 하고 기도하게 되는 요즘이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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