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코로나19)는 나중에 역사책에 나오겠지?”
방학이 3주나 연기돼 아이들 생활, 특히 밥(!) 걱정이 한창인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배달음식 맛집을 순례하며 엄마 지갑을 탈탈 털어가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즐기고 있는 아이가 물었다.
“그렇겠지” 하고 짧게 답하고 나니, 나 역시 궁금하다. 재난 ‘사실’만 기록된다면 역사책에 나오겠고, 바이러스 문제로는 과학책에 나올 만한 사건이겠지.
하지만 인류가 이 재난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극복했고, 또 과정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그것은 사회학적인 문제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예전 같으면 ‘좌파’적인 주장이라 치부되던 공공의료 같은 사회 공공성 문제나 기본소득 같은 보편복지 이야기가 집권 여당의 입에서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코로나19’라는 ‘천재지변’이 가져온 변화라지만 격세지감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장은 전주시가 지난 10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250억 원 규모의 기본소득을 지원키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보다 이틀 앞선 8일에는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모든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 100만원을 지급하자”며 정부와 국회에 제안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 상황이 끝나더라도 재난기본소득으로 시작된 기본소득이 다방면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기대감도 든다. 최소한 보편복지에 대한 논의가 국민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하니 이 얼마나 큰 변화인가.
또 우리는 기본소득과 더불어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이 시점에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다시 회자되는 것도 그가 폐쇄한 진주의료원 때문이다. 대구를 비롯해 영남 지역에 ‘코로나19’의 피해가 집중돼 있는데, 이를 해결할 공공의료 시스템이 턱없이 모자라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재난 속에서 비로소 똑똑히 보게 된 것이다.
공적 마스크 공급도 그렇다. 평소에 2000원을 넘지 않던 마스크가 온라인에서는 5000원이 넘는 가격으로 거래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정부에서 전 가정에(보편), 무료로(무상) 지급하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서 ‘좌파적 정책’으로 치부되던 ‘보편’과 ‘무상’ 정책을 전 국민이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 코로나 사태를 통해 모두가 배우고 있는 '공공성'의 가치
이 모두가 공통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사회 공공성의 문제이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평소에는 ‘이념’의 문제 정도로 터부시되던 ‘사회 공공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학습하고 있는 셈이다.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무상급식이나 무상교복이 사회주의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하던 사람들도 지금 마스크를 국가가 무상으로 나눠줘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지 않는다. 청년수당이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던 사람들도 재난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변화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자기 자신의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재난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지금보다 ‘더 많은’ 재난을, ‘더 많은’ 사람들이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예측되지 않는가. 재난에는 환경재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실업과 부의 편중으로 인한 빈곤, 인간에 대한 다양한 착취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 등. 이 중 어느 한 가지는 미래의 나, 또는 우리 아이들이 마주해야 하는 문제일 터이다.
그래서 바로 지금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아직 부족하다. 더 많은 지자체와 정부, 결국은 국가가 나서 보편복지, 사회 공공성, 기본소득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그렇다.
재난을 당하고 그제서야 깨닫는 인류란 얼마나 어리석고 안타까운지. 하지만 후세대를 위해 지금이라도 사회의 많은 사적인 부분을 공공재로 돌리고, 더 많은 세금이 공공의 보편적 이익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이야기하고, 그 정책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후 다시 인류에 또 다른 위기가 닥쳐왔을 때, 지금의 경험이 교훈이 돼 의연히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가 말했다.
“엄마, 오늘 나 마스크 받는 날인데, 안 받을래. 나는 어차피 방학도 남았고, 학원도 안 가니까.”
재난은 인류에게 당장의 큰 고통을 주지만 그 고통에만 머물지 않는 것이 사람이고, 또 사회 공동체의 힘이다. 분명히 이 고통 속에서도 새로운 것은 움트고 있다.
*칼럼니스트 엄미야는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 두 딸의 엄마다. 노동조합 활동가이자, 노동자 남편의 아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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