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분유 싹쓸이'…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미국 엄마들
'마트 분유 싹쓸이'…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미국 엄마들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20.03.1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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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인류학] 퍼지는 불안감 속에서도 아이들은 쑥쑥 자란다

내가 현재 사는 곳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북부의 작은 도시. 동쪽으로는 뉴욕 주, 서쪽으로는 오하이오 주와 인접해있다. 3월 초까지만 해도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불안감과 문제의식의 체감은 매우 낮았다. 하지만 3월 둘째 주를 기점으로 조금씩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큰아이의 학교에서는 집에서 손 씻기 교육을 생활화해줄 것과 아이가 약간의 열이 있더라도 등교시키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 담긴 가정통신문을 보내왔다. 무언가 조금씩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항상 붐비던 주말 점심시간의 단골 중국식당이 텅텅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서부터다.

하지만 아이들과 엄마들의 모임이나 만남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3월 12일까지만 해도 만 2세 전후의 둘째 아이 친구들, 그리고 그 엄마들과 함께 트램펄린 파크와 놀이터에서 플레이데이트(Play date)를 했다. 엄마들은 아무렇지 않게 평소대로 만남을 제안했다. 심지어 3월 12일에는 헤어지며 돌아서는 길에 다음 주 월요일(3월 16일)에 동물원에서 다 같이 만나기로 약속까지 했다.

◇ 텅텅 비어버린 마트… 생필품 '사재기' 심화

평소라면 손님으로 가득했을 단골 중국 식당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텅텅 비어 있다. ⓒ이은
평소라면 손님으로 가득했을 단골 중국 식당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텅텅 비어 있다. ⓒ이은

하지만 3월 13일을 기점으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국가비상사태 선포가 이루어지고 뒤따라 펜실베이니아 주의 주지사 역시 관련 결정을 내리고 발표했다. 지역구 대부분 학교가 잠정적으로 3월 말까지 2주간의 휴교에 들어갔다. 남편이 가르치고 있는 대학 역시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변경됐다. 미국의 이 작은 도시까지 코로나19의 영향이 강력하게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대도시에 사는 지인들의 경우는 상황이 더 복잡하고 어려운 듯했다. 주 정부의 명령으로 식당 등의 강제 폐점과 통금이 결정된 경우도 많았고 사재기 현상도 더 심하다고 했다.

예정돼있던 플레이데이트는 모두 취소되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평소대로 다음날인 14일 토요일에 장 보러 갔다가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마트에는 손 세정제, 멸균 티슈 등은 물론이고 해열제와 감기약, 화장실 휴지까지 모든 매대가 비어 있는 것 아닌가.

통조림 종류를 비롯한 각종 식료품도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고 빠른 속도로 매진되고 있었다. 혹시나 온라인 주문이 가능한지 확인해봤지만 온라인도 모두 매진인 경우가 많았다.

눈앞에서 사재기의 현장을 목격하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나도 무언가를 사서 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살 만한 것도 또 살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아 아이가 자주 마시는 실온보관 우유를 사왔다. 기저귀와 아기 물티슈, 그리고 아기 분유를 모두 쓸어 담고 있는 한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서로의 씁쓸한 미소가 스치고 지나간다.

그 뒤 상황은 더 급변했다. 온라인 주문이 가능한 마트 웹사이트에서 많은 생필품(멸균 성분이 함유된 세탁세제, 비누, 일반 물티슈 등)이 매진되기 시작했고, 큰 아이의 학교뿐만 아니라 각종 학과 외 수업과 작은 아이의 문화센터 프로그램도 모두 취소되었다. 뒤이어 주말에는 지역 도서관과 어린이 박물관, 공연장과 스포츠 경기장을 잠정폐쇄한다고 공지했다.

◇ 교민들 "한국 가는 게 안전하겠다"… 그저 무탈하게 지나가기를

텅텅 비어 있는 미국 마트의 매대, 생필품은 물론이고 해열제 같은 구급약도 사기 힘들다. ⓒ이은
텅텅 비어 있는 미국 마트의 매대, 생필품은 물론이고 해열제 같은 구급약도 사기 힘들다. ⓒ이은

솔직히 이 작은 도시까지 영향이 있을까 싶었던 안일한 마음이 조금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미국의 경우 본인이 많이 아픈 사람이 아니라면 마스크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 쉽지 않고(사실 마스크를 구할 수도 없다) 마스크를 구해서 쓰더라도 혐오 범죄(hate crime)의 대상이 될 위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이 좋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바이러스에 노출되더라도 해당 검사를 받기 쉽지 않고, 자부담 비용도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방법이 없다는 불안감이 팽배해있다. 심지어 대도시에는 현재 상황이 장기화 될 때 일어날 수 있는 폭동 및 위험 상황을 대비한 총기구입도 늘고 있다고 하니 마음이 갑갑해진다.

3월 초까지만 해도 ‘인구 밀도가 낮은 미국은 괜찮지 않겠느냐’는 한인들의 반응도 ‘가능하다면 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안전하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바뀌었다. 훌륭한 의료진, 검사 기회와 비용이 합리적인 의료 시스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 마스크를 생활화하고 자가격리에도 협조적인 국민들의 태도까지 한국이 몹시 부러운 요즘이다.

때문에 아이들과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집 안에서 지내도록 노력해볼 생각이다. 답답하면 집 앞의 작은 공간을 오가며 산책을 할 것이고 벌써 심심해하는 큰아이를 위해서는 별수 없이 어린이 영화를 많이 다운로드받아 두었다.

잠정적으로는 2주, 하지만 이곳의 많은 사람이 생각하듯 실질적으로는 여름이 오기 전까지 길고 긴 이 기간 동안 많은 이들이 비슷한 생활패턴을 이어가게 될 것 같다. 지역 엄마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홈스쿨링이 가능하도록 무료 학습자료와 가상으로 방문 가능한 동물원이나 어린이 박물관 사이트 링크들도 공유되기 시작했다.

집에만 있어야 함에도 매일 학교에 가는 아빠와 오빠까지 포함해서 온 가족이 다 같이 있는 것이 좋기만 한 막내는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큰아이는 아직은 한가로운 휴가가 즐거운 모양이다. 신나서 영화를 고르면서 동생에게 내용을 설명해준다.

아이들은 하루하루 쑥쑥 큰다. 아빠와 엄마는 낯선 이국에서 맞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그저 무탈하고 안전하게 지나가기를 기원해본다. 세계 각지에 있는 모든 이들이 불안을 이기고 모두 건강히 이 시기를 지내기를!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미국과 한국에서 큰아이를 키웠고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순간으로 이미 성장해 가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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