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장애인만 기억하는 세상… '혜승이'를 기억해주세요
성공한 장애인만 기억하는 세상… '혜승이'를 기억해주세요
  • 칼럼니스트 박현주
  • 승인 2020.04.17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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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꿈을 꾸는 아이] ‘평범한’ 아이, 혜승이를 소개합니다

당신은 어떤 장애인을 알고 있나요? 시각·청각 장애를 극복한 헬렌 켈러? 지체장애가 있던 스티븐 호킹 박사? 청각장애가 있었음에도 명작을 남긴 베토벤? 혹은 맨해튼 전경을 사진 찍듯 그려낸 자폐증 천재 화가 스티븐 윌트셔같이 ‘유명한 장애인’만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혹시 알려지지 않은 장애인은 ‘노력하지 않은’ 장애인이라고 알고 계시진 않으신가요?

이번에는 장애가 있는 우리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대부분 장애인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신기하고 특출난 재능도 없답니다. 하지만 더불어 살아갈 내 아이의 친구, 우리의 이웃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10여 년 전 꿈고래어린이집에서 만난 혜승이입니다.

그녀의 사진은 대부분 이렇답니다. 앞을 보고 있을 때 셔터를 눌러도 빛의 속도로 뒤돌아 달려가 버리거든요. ⓒ박현주
그녀의 사진은 대부분 이렇답니다. 앞을 보고 있을 때 셔터를 눌러도 빛의 속도로 뒤돌아 달려가 버리거든요. ⓒ박현주

10여 년 전 봄. 예쁜 여자아이 한 명이 엄마 손을 잡고 첫 상담을 왔어요. 이 아이의 어머니는 이런 이야기를 제게 털어놓으셨죠. 아이 위에 오빠가 한 명 있는데, 발달장애가 있다고. 그래서 오빠에 대한 모방 행동으로 산만함과 언어 지연 문제가 있다고요.

하지만 저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네 살이었는데, 신발을 신은 채 교실로 무작정 돌진하던, 과하게 활발한 아이. 그 아이가 바로 김혜승이었거든요. 사실 발달장애아인 것 같았지만, 오빠가 얼마 전 장애로 진단받은 상황이라 상담을 하는 내내 마음이 아팠어요.

자폐증을 규정짓는 특징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눈 맞춤, 사회적 사인을 이해하는 것 등) ▲의사소통의 질적인 손상 ▲제한적이고 반복적이며 일정한 방식이 유지되는 행동이나 흥미 등으로 이야기할 수 있답니다. 보통 진단 시기는 생후 36개월 무렵으로 알려졌지만, 요즘은 진단 시기가 매우 빨라졌어요. 왜냐하면 어릴수록 교육과 치료의 효과가 크게 나타나기 때문이에요. 

제가 혜승이를 잊을 수 없는 제자로 기억하는 이유가 있답니다. 가출도 아닌 '원출'을 시도한 첫 원생이었기 때문이에요. 등원 이틀째 되던 날, 혜승이는 바람처럼 사라집니다. 어린이집은 비상이 걸렸지요. 아이를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부모님은 물론이고 소방서와 경찰서 등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모든 곳에 도움을 요청했어요.

머릿속이 새하얘졌지만 경찰과 함께 어린이집 인근부터 차근히 수색을 시작했어요. 인근 아파트에도 아이를 찾는다고 방송을 수차례 하는 바람에 ‘애 잃어버리는 어린이집’이라는 광고도 하게 됐지요. 하지만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신경 쓸 겨를도 없었습니다. 

한 시간가량 흘렀을까요? 드디어 혜승이를 찾았습니다. 어린이집 인근 아파트 1층. 들어오면 안 된다는 할머니와 막무가내로 들어가겠다고 떼를 쓰는 혜승이를 발견했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는 경험을 이 아이를 통해 처음 하게 됐어요.

이 사건 이후 혜승이 어머니는 아이가 우리 어린이집에 다니는 동안 자비로 경비업체 서비스 비용을 내겠다고 하셨어요. 사실 그때 어린이집 초창기라 운영이 어렵긴 했지만 그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우리는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아요. 왜 장애아를 가진 부모님들은, 사회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개인의 책임으로 가져가려고 하는지를 놓고 말이에요.

어린이집에서는 혜승이 부모님께서 설치해주시겠다고 한 경비서비스를 신청했고 '원출' 아동에 대한 비상대응훈련 매뉴얼을 만들었답니다. 그리고 지역사회에 요청했어요. ‘이런 친구들이 오면 꿈고래 친구들이니 꼭 데리고 있어달라’고요.

아이들에게는 다른 위험한 곳으로 가지 않게 동네에 있는 안전하고 매력적인 장소들을 소개했어요. 문구점, 마트 같은 곳에서 원하는 것을 사게 해 원출을 하더라도 그곳부터 갈 수 있도록 말이지요.

인근 상가의 사장님들에게는 우리 아이들의 사진을 전달해 드렸고, 간단한 특성을 설명해드렸어요. 우리 마을 모두가 아이들을 지키는 지킴이가 되어주었어요. 혜승이가 시작한 우리 마을의 첫 변화였답니다. 사실 사장님들을 가르치는 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쉬웠어요.

◇ 자기만의 속도와 방법으로 세상의 소리 듣고 익히는 아이

혜승이는 노래를 좋아했어요. 비록 '성난 허수아비 아저씨'를 “야야야야야”로만 부를지언정. 기분이 좋은 날에는 한쪽 어깨를 들썩이며 춤을 추었어요. 혜승이가 여섯 살이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 눈이 동그래져서 제게 달려왔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죠.

“혜승이가 글을 아나 봐요!” 

선생님이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 칠판에 자석 글자로 '엄마', '아기' 등 그날 배운 동시에 나온 단어를 맞춰 놓았답니다. 선생님은 신이 나서 정수기 앞에 ‘물 주세요’, 현관 앞에는 ‘안녕하세요’ 등 평소 혜승이에게 가르치던 문장을 붙여 놓았어요. 

혜승이는 특유의 억양으로 글을 읽듯이 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혜승이가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늘 산만했고, 앉아 있는 것을 몹시 힘들어했거든요. 그때 가르침을 멈춰선 안 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답니다. 아이가 안 듣는 것 같아도 선생님의 동시, 새 노래, 이야기 나누기 시간 등 모두 자기 속도로, 자기의 방법으로 듣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날 즈음부터 단어로 짧은 문장으로 조금씩 이야기하던 혜승이는 일곱 살이 되자 말이 없어졌어요. 혜승이는 조금 과했던 행동이 약으로 통제가 되면서부터 필요한 순간 외에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열네 살이 된 지금도 거의 말을 하지 않아요. 

혜승이를 처음 만났을 때, 혜승이는 종일 울기만 했어요. 처음에는 달래도 보고, 그만 울라고 혼도 냈지만, 쉽게 멎지 않았어요. 아이가 말을 하지 않으니 우리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고, 종일 우는 아이도 너무 힘들어 보였어요. 혜승이는 각성 수준이 높은 아이라 잠을 적게 자고 온 날이면 더 심하게 울었답니다. 푹 잤으면 좋겠는데, 고작 네 살인 아이가 잠을 못 자 짜증 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게 아파왔었죠. 

그럴 때 혜승이를 어린이집 차에 태우고 동네라도 한 바퀴 돌고 들어오면 그날은 기분이 좀 괜찮았답니다. 차를 타면 깊이 잘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혜승이는 선생님과 여러 활동들을 해보았어요. 그런 노력 끝에 찾아낸 혜승이가 안정감을 찾는 활동은, 그네타기, 산에 가기, 차 타기라는 걸 알게 되었고 이런 활동은 감각통합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혜승이는 빙글빙글 도는 것을 좋아했어요. 선생님이 혜승이를 꽉 끌어안고 뱅글뱅글 돌려주면 넘어지지도 않고 벌떡 일어나 다시 안아달라고 해맑게 웃던 아이였어요. 높은 곳에 오르는 것도 좋아했어요. 혜승이는 자폐증의 특성 중 하나인 감각통합에 어려움이 있어 우리와 살짝 다른 감각을 느끼는 것 같아 보였어요.

자폐인들의 감각은 비자폐인들과 살짝 달라요. 예를 들어 높은 곳에 올라가길 좋아하는 아이들은 단지 높은 곳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바닥에 있을 때 모래에 파묻히는 것 같은 불쾌감을 느낀다고도 해요. 답답함이 싫어 높은 곳에 올라갈 수밖에 없죠.

까치발을 들고 걷는 아이들도 있는데요, 자폐를 극복하고 동물학자가 된 템플 그랜딘 박사는 자서전 ‘어느 자폐인 이야기’에서 ‘자갈밭이나 깨진 유리 위를 걷는 것처럼 아파서 까치발을 들 수밖에 없었다’고도 회고했습니다.

이런 차이는 자폐인이 비자폐인들과 감각을 처리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인데요. 그러니, ‘말을 안 듣는다’, ‘일부러 저런다’라고 오해하기 전 그들의 입장에서 한 번 더 헤아리는 것이 자폐인들을 이해하는 방법이 될 수 있겠습니다.

◇ 당신의 잣대로 혜승이에게 성공을 강요하지 말아주세요

그녀와 친해지기는 어렵지 않아요. 먼저 인사해주세요. 말 걸어주고 옆에 앉아주세요. ⓒ베이비뉴스
그녀와 친해지기는 어렵지 않아요. 먼저 인사해주세요. 말 걸어주고 옆에 앉아주세요. ⓒ베이비뉴스

자폐아들은 언어발달 지연과 동시에 사회적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흔히 여덟 살까지 말을 하지 않는 무발화 아동은 평생 말하지 않을 확률이 80% 가까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애가 있는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아이가 어릴 때 언어치료, 감각통합치료 등 치료 교육에도 많은 신경을 씁니다.

유아들에게 약물치료를 한다고 하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득과 실을 잘 생각해서 결정하셔야 한답니다. 앞서 말했듯 혜승이는 일곱 살 여름에 약물치료를 시작했어요. 아이가 약물치료를 시작했다면 교사와 부모는 아이의 상태를 잘 살펴야 합니다.

약을 먹은 뒤 잠시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하던 혜승이는 착석이 가능해졌어요. 그리고 예전보다 징징거리고 우는 소리가 줄었어요. 늘 날이 선 예민한 혜승이의 모습이 조금 편안해 보였다고 할까요? 잠도 잘 잤어요. 혜승이가 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혜승이 어머니 다크서클도 줄어들고, 늘 부르터 있던 입술도 가라앉았으며 표정도 밝아지셨답니다.

대신에 혜승이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없어졌어요. 사실 선생님들은 이 점을 무척 아쉬워했어요. 눈 깜짝하는 사이에 하얀 벽지에 선생님 가방에서 꺼낸 빨간 립스틱으로 추상화를 그리거나, 잠깐 사이에 벽에 붙은 교구들을 뜯어내는 괴력의 소녀가 바로 우리 혜승이었거든요.

매일매일 어찌나 창의적으로 사고를 치던지…. 화가 안 났다면 거짓말일 테지만, 매일매일 색다른 ‘사고’의 세계를 열어주는 창의적인 이분 때문에 심장을 떨면서도, 그 창의적인 사고를 살짝 기대하기도 했답니다. 무엇보다 혜승이가 약물치료를 시작하면서 말을 잃은 것은 참 슬픈 일이었어요. “원장니임~! 주세요~” 라던 혜승이 특유의 목소리를 더는 들을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혜승이가 졸업한 후에도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을 통해 우리는 혜승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답니다. 사실 혜승이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자폐의 번뜩이는 천재성도 없고(이건 혜승이만 없는 게 아니에요. 대부분 없답니다), 말로 의사소통이 잘 되는 것도 아닌 편인 아이인지라. 부모의 마음으로 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고민하고, 그 고민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혜승이는 이제 저와 키가 비슷해진 소녀가 되었답니다. 조신하게 앉아서 저를 쳐다보지만 제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언제든 아랫입술을 깨물며 눈동자의 흰자를 한껏 확대해 스승님을 협박하시는 ‘걸 크러쉬’ 넘치는 소녀가 되었지요. 여전히 좋고 싫고 의사표현은 누구나 알 수 있게 말이 아닌 온몸으로 하고요.

사실 그녀와 친해지기는 어렵지 않아요. 먼저 인사해주세요. 말 걸어주고 옆에 앉아주세요. 그녀의 기분에 따라 무척 싫어할 때도 있을 것이고, 흔쾌히 곁을 내어주는 날도 있을 겁니다. 어떤 반응이건, 친해졌는지 안 친해졌는지는 그녀만 알 수 있습니다. 그냥 믿으세요. “나는 혜승이와 친하다, 친하다” 그냥 친하다고 생각하세요.

네, 사실 특수교육전문가라고 하는 저도 반쯤은 자기최면으로 가끔은 희번득한 혜승이의 흰자위의 협박을 감수해가며 혜승이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답니다. 그러니 십 년 만난 스승도 잘 모르는 그녀의 모든 매력을 한 번에 알려고 하지 말자고요. 그렇다고 먼저 손 내미는 일을 겁내지도 말고요. 속을 알 수 없는 게 그녀만의 매력 포인트랍니다.

성공한 장애인만 기억하는 치열한 세상에 혜승이를 기억해주세요. 부디 장애인을 이해하려 멀리 보지 마시고, 비교하지 마시고, 당신의 잣대로 우리 혜승이에게 성공을 강요하지 말아주세요. 대신 먼저 다가와 가까이에서 봐주세요. 장애인들은 여러분들의 이웃에, 내 아이 친구의 모습으로 가까이 있답니다.

*칼럼니스트 박현주는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해 특수학교에서 근무했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내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어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됐다. 화성시에서 장애통합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모님들과 함께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동참해, 현재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에서 장애영유아 발달상담도 함께 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 육아에서 시작해 아이들의 삶까지, 긴 호흡으로 함께 걸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풀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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