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택격리 6주, 엄마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괴물'같다니
자택격리 6주, 엄마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괴물'같다니
  • 칼럼니스트 김보민
  • 승인 2020.05.25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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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지구인으로 살아가기] 나도 몰랐던 너, 너도 몰랐던 나

“엄마, 엄마는 꼭 그린치 같아."

“그린치가 누구야?”

“영화에 나오는 초록색 괴물인데 크리스마스를 싫어해. 걔 이름이 그린치야.”

“난 크리스마스 좋아해. 내가 왜 그린치 같다는 거야?”

“아, 그린치는 맨날 화를 내거든.”

엄마더러 '그린치'같단다. 맨날 화 내는 '괴물'. ⓒ유니버설 스튜디오
엄마더러 '그린치'같단다. 맨날 화 내는 '괴물'. ⓒ유니버설 스튜디오

집에서만 생활하며 아이와 마주 앉아 삼시 세끼를 먹은 지 6주가 넘어가고 있다. 나름 생활 계획표도 만들고, 저녁마다 다음 날 미팅 일정과 아이의 비디오 수업 일정을 확인하며 체계적으로 하루를 보내기 위해 애쓰고, 건강한 밥상을 하루 세 번 제공하기 위해 식단 관리까지 한 결과, 난 아이에게 화내는 엄마가 되었다. 나름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마음을 잘 보듬어 주는 사람이 바로 나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않은 아이의 반응을 들으니 괜히 섭섭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싱가포르 정부가 서킷 브레이커(Circuit Breaker)를 발동하면서 우리 식구는 4월 8일부터 지금까지 6주째 집에 옹기종기 모여 지내고 있다. 6주가 온전한 휴가였으면 몸과 마음이 덜 힘들었을 텐데…. 아이와 나란히 앉아, 내 업무를 하면서 아이 공부까지 챙기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어제 서킷 브레이커가 최소 4주 또는 그 이상 연장될 거라는 정부 발표가 있었다.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금까지 집안에서만 보낸 시간 만큼을 앞으로 더 견뎌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 지난 6주의 결과가 ‘화내는 엄마’라면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6주를 어떻게 살아 내야 할 지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우리가 원하지 않은,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해 마음이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 나와 아이가 주로 나누는 말들, 아이의 요구들, 아이와 내가 서로 마음이 언짢아지는 순간들을 떠올려봤다. 

◇ 지금 종일 나와 함께 있는 너, 엄마가 퇴근 후에만 만나던 너 맞니?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열심히 하는 아이와 자주 마주친다. 아이의 머릿속이 어떤 생각으로 꽉 차 있는지 궁금하다. ⓒ김보민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열심히 하는 아이와 자주 마주친다. 아이의 머릿속이 어떤 생각으로 꽉 차 있는지 궁금하다. ⓒ김보민

아이의 학교 수업을 봐주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공부’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한국에서 어린이집 4년, 싱가포르에서 유치원 2년을 다니며 아이의 학습 능력 또는 수준에 대해서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 정신없이 출근하고 해 질 무렵 퇴근해 들어오면 아이와 머무는 시간은 고작 2시간 남짓이 전부였고, 그 시간 동안 뭘 배웠는지 혹은 무슨 공부를 했는지 물어보는 건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피곤한 일이었기에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았는지, 뭘 보고 뭘 느꼈는지 물어보는 게 전부였고, 거실을 뒹굴며 놀거나,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인형 놀이나 시장 놀이를 하다 책을 보며 잠드는 게 전부인 일상을 보냈다. 올해 들어 진지하게 한글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주중엔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고, 주말엔 놀기 바빠 그것마저 못 하는 형편이었다. 

아이를 옆에 앉혀 놓고 학교(싱가포르에서는 유치원 과정이나 기관을 학교라 칭한다)에서 내어주는 홈스쿨링 과정을 함께 하면서 아이에게 화를 많이 냈다. 아이는 5분짜리 영상을 보면서 가만히 앉아 있는 법이 없었고, 책상 주변에 놓인 물건을 만지작거리거나 굳이 인형을 가져와야 한다며 자리를 뜨기 일쑤였다. 영상을 다 보고 나면 꼭 내용에 대해 질문하고 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질문 두어 가지를 던지면 기억이 잘 안 난다거나 모르겠다는 답을 했다. 

처음에 두어 번은 그러려니 하며 넘어갔는데 1~2주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아이가 학습에 문제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 나의 잔소리가 자동으로 시작되었다. ‘똑바로 앉아라, 제대로 들어라, 모르면 다시 봐야 한다’ 정도의 잔소리는 아주 경미한 수준이었다. 가끔 육아서에 나오는 ‘절대 아이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 섹션에나 정리될 법한 말들이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터져 나왔다.

‘이러다 나중에 뭐가 되려고 하니, 너 학교에서도 이러니, 이렇게 하면 커서 아무것도 못 해’ 이 정도가 되면 아이는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차 싶은 순간이다. 이성을 되찾고 아이에게 화를 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며 하던 공부로 돌아간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아이가 무엇을 제대로 배우기는 할까 싶어 다시금 미안해지고 기어코 화를 낸 나 자신을 질책하기도 했다. 

왜 이렇게 날이 선 말들이 터져 나왔을까? 퇴근 후 저녁 두어 시간 만날 때에 알고 지낸 아이와 종일 옆에 두고 공부를 봐주는 아이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두어 시간 같이 놀 때의 아이는 오롯이 놀이에 집중해 잘 놀았기에 뭐하나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잘 놀고, 이야기도 곧잘 했고, 본인 감정에 충실했고, 표현에도 아주 능한 멋진 친구였다. 그런데 종일 곁에 두고 공부를 봐주다 보니 아이가 잘 못 따라오거나 부족한 부분만 유독 눈에 띄었다.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만 더 쓴소리를 하게 되고, 잘하는 부분은 원래 그 정도는 해야 하는 영역으로 치부되었다. 

◇ '기역'을 '미역'이라고 해도 이제 화 내지 않을게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집 밖을 나설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갤러리에 맨 먼저 갈 거라고 아이들에게 약속했다. ⓒ김보민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집 밖을 나설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갤러리에 맨 먼저 갈 거라고 아이들에게 약속했다. ⓒ김보민

코로나19 상황이 장기전에 돌입하면서 나의 몸과 마음도 일상 유지를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고, 가끔 예민해지고 가끔 지나치게 우울한 마음이 불쑥 튀어나온다. 아이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 상황이 이상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늘 만나는 친구들, 선생님과 하던 밝고 명랑한 학교 생활이 아닌 노트북을 앞에 두고 영상을 보며 뭔가를 이해하고 익혀야 하는 시간들, 일주일에 두어 번 비디오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 짧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어색하고 불편할 수 있다.

만약 이런 극적인 상황이 아니었다면 난 조금 더 여유롭게 아이의 학습 과정을 지켜봤을까? 아이는 때때로 나와 공부하는 내내 마음이 불안했을 것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엄마와 나란히 앉아 공부하는 지금을 좋아라 하던 아이였는데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의 생각과 달리 ‘틀리면 혼난다’는 무서운 기억만 간직할 것 같다. 큰 소리로 혼을 내고 화를 내는 엄마의 무서운 표정보다 더 끔찍한 기억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어찌 보면 아이가 이만큼 훌쩍 커서 ‘공부’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그저 대견할 따름인데, 궁금함을 해결해 나가고 뭔가 하나씩 익혀 나가는 아이의 모습을 기특하게 봐주지 못하고, 그 과정을 함께 격려해주지 못해 미안하기도 하다. 

얼마 전, 여유가 있어 아이에게 ‘ㄱ, ㄴ, ㄷ, ㄹ’ 한글 자음 네 개를 종이 위에 써 놓고 읽는 법과 소리를 알려주었다. 고작 자음 네 개를 반복적으로 알려줬으니 충분히 기억하고 있으리라 믿으며 ‘ㄱ’을 가리켜 어떻게 읽는지 아이에게 물어봤다. 한참 동안 생각을 하던 아이가 힘차게 소리를 내뱉았다. 

“미역.”

정답은 아니지만, 정답에 아주 가까운 그 소리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순간을 맞이했고, 내가 내다보는 영역을 아이는 다 볼 수 없음을 인정하자는 내 마음의 소리를 키워야만 했다. 

지금까지 6주 시간을 집에서 잘 버티고 있다. 우리 식구는 잘 챙겨 먹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건강하게 지내려 애쓴다. 바이러스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외출도 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민폐가 되는 행동도 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간 감정 기복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최대한 덤덤하고 무던하게 지내기 위해 감정을 조절하려 노력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태로 6주를 더 집에서만 지내야 한다. 6주 이후에 우리의 일상을 되찾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다만 앞으로의 6주는 지금까지 와는 다르게 보내 볼 생각이다. 내가 아이에게 무의식중에 바랐던 점들, 아이가 나에게 기대하는 점들을 나누면서 코로나19 이후 변곡점에 서 있을 우리의 모습을 상상하며 더 많은 생각과 마음을 나누고 싶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야 하는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으니까.  

*칼럼니스트 김보민은 '한국땅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산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라는 호기심으로 2년째 싱가포르에 체류 중이다. 싱가포르에 올 때 4살이던 첫째와 생후 2개월이던 둘째는 어느덧 각각 6살, 26개월로 훌쩍 자랐다. 365일 여름이고, 아시아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주로 영어를 쓰고, 작은 나라이면서도 어마어마하게 큰 아시아를 가르쳐주고 있는 싱가포르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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