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이는 24개월, 세 살이다. 영이는 개미, 거미, 돌멩이, 나뭇잎 등 자연물에 대한 호기심이 참 많다. 그래서 5분이면 갈 수 있는 어린이집도 보통 20분은 걸린다. 길가에 있는 모든 자연물을 바라보고, 만져보느라….
영이는 엄마가 아프거나 슬프다는 이야기에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나와 엉겨 붙어 몸으로 놀다가 부딪혔을 때, 내가 우는 시늉을 하며 아프다고 말해도 영이는 ‘씨익’ 웃고는 다시 엉겨 붙는다. 가끔은 내 연기력이 형편없어서 그런가 싶지만, 전반적으로 공감 능력이 그리 높지 않은 것 같다.
영이는 겁이 참 많은 아이지만, 미끄럼틀을 탈 때 계단보다는 엄마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고 싶어 한다. 줄을 잡고 올라가거나 암벽을 타고 올라가는, 딱 봐도 모험스러운(?) 길을 선호한다.
영이는 미술놀이를 하면 종이보다는 자신의 몸, 의자, 책상 등 새로운 곳에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가방의 클립을 스스로 끼웠다가 빼기를 좋아하며, 퍼즐과 같은 조작 놀이를 즐겨한다. 우리 영이는 호기심이 많고, 신체놀이와 조작 놀이를 즐기는 ‘딸’이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구분하는 분위기가 많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활달한 우리 영이는 여전히 어른들에게 “예쁘게 놀아야지”, “공주님은 이렇게 하지 않아”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여전히 아들과 딸은 다르게 키워야 한다는, ‘아들 버전’, ‘딸 버전’의 양육방법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정말 아들과 딸의 양육방법이 구분될 수 있을까? "
굳이 영이의 성향을 성별로 구분하자면, ‘아들스러움’에 더 가까운 딸에 가깝다. 이런 영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요즘 생각이 참 많아졌는데, 예를 들어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이야기할 때 ‘공감 능력’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나오곤 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공감 능력이 높으니 딸에게는 공감 능력을 통한 훈육이 효과가 있고, 아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
하지만 정서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우리 영이에게는 공감을 요구하는 감정에 대한 설명보다 짧은 설명과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폭력적이지 않은 단호함’이 더 효과적이다. 단호한 훈육이 주로 아들에게 적용되는 훈육방법으로 제시되곤 하지만 말이다.
‘아들스러움’과 ‘딸스러움’은 아이의 행동에 제한을 두게 만들고, ‘왜 우리 아이는 다른 집 딸, 책에 나온 아들과 다르지?’라는 불편감을 불러일으킨다. 부모는 아이가 아들이냐 딸이냐를 따져 양육방법을 정하기보다는 아이가 현재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이의 이해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지 등 아이의 성격과 기질, 현재 발달 수준에 따라 아이와의 상호작용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어린이날도 지났다. 여전히 어린이날 선물하면 남자아이는 파란 로봇, 여자아이는 핑크빛 인형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어린이날이 벌써 98번이나 지났다. 이제는 육아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부모들에게 아들과 딸이라는 이분법적인 양육법을 제시하기보다는, 아이의 고유한 특성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따뜻한 관심과 조언을 더 많이 제시해야 할 때가 아닐까?
*칼럼니스트 이미연은 아동인권옹호활동을 하는 국제아동인권센터의 연구원으로, 가장 작은 자를 위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작은 힘을 보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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