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도 ‘주 52시간’ 제도가 필요하다
아이들에게도 ‘주 52시간’ 제도가 필요하다
  • 기고=이수정
  • 승인 2020.06.0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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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놀아요?②] 이수정 사단법인 놀이하는사람들 상임대표

놀이를 빼앗긴 대한민국 아이들. 놀이라는 ‘권리’를 되찾아주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서울시 아동 놀이권 조례 제정을 위한 시민연대’의 연속 특별기고로 놀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 편집자 말

시간도둑은 누구인가 ©베이비뉴스
시간도둑은 누구인가 ©베이비뉴스

"들어 보세요, 여러분, 우리 말을 들어 보세요.
열두 시 오 분 전에 종이 울렸습니다. 
그러니 깨어 일어나 정신을 차리세요. 
누군가 여러분의 시간을 훔치고 있으니까요. 

들어보세요, 여러분, 우리 말을 들어 보세요. 
더 이상 괴롭힘 당하지 마세요!
일요일 세 시에 오셔서 우리 얘기를 들어 보세요.
그럼 여러분은 자유를 되찾을 수 있어요!”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서, 아이들이 대규모 어린이 시위를 준비하며 부른 노래 가사다.

단 10분의 시간이라도 아껴 돈을 벌고 성공하겠다며 시간도둑에게 시간을 저당 잡히고 자신의 아이들과 대화할 시간조차 없앤 어른들에게 경고하려고 만든 노래다. 그러나 시간이 없는 어른들은 시간도둑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이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여전히 시간에 쫓기는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삶의 방식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12년 즈음 한 정치인이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을 때, 많은 직장인들이 환호했지만 잠시 스쳐갔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새로 출발한 정부는 ‘주 52시간’ 만큼은 꼭 정착시키겠다고 약속했고 사람들은 또 환호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주 52시간’은 여전히 이런 이유 저런 핑계로 완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주 52시간 이하 노동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위한 토대가 된다고 말한다. 과도한 노동은 인간적인 삶을 방해하고 이는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할 것이고, 결국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할 것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으니까.

새마을 운동으로 상징되던 시대, 일만 알던 우리 사회가 어느 사이 노동만큼 ‘쉼과 여가’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의 일상에서 ‘주 52시간 이하의 학습(아이들에게는 노동과 마찬가지)’은 잘 이뤄지고 있을까?

◇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시간’, 그것은 아이들의 권리다

놀이시간은 수많은 경험과 기회의 시간이다 ©이수정
놀이시간은 수많은 경험과 기회의 시간이다 ©이수정

어른의 52시간과 아이들의 52시간을 물리적으로 동일하게 계산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얼마만큼의 자유시간을 주고 있는지, 아이들의 시간을 도둑질 하는 시간도둑은 과연 누구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자.

아마 이 질문에서 자유로운 부모는 별로 없을 것이다. 아침에 눈뜨면 학교로 향하고, 학교를 마치면 학원을 가고, 저녁이면 숙제에 학습지까지 하는 아이들이 허다하다. 토요일에도 계속되는 특별 수업들까지 포함하면 아이들은 어른들 못지않게 바쁘다.

그런데도 쉴 틈 없이 짜인 아이들 시간표를 보며 마음 아파하기보다, 무엇을 더 넣어야 좀 더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부모가 더 좋은 부모라고 말하는 사회가 아닌지 이제 돌아봐야 한다.

어른들에게 휴식을 포함한 여가시간이 절실하듯, 아이들에게도 놀이를 포함한 자유시간이 절실하다. 꽉 짜인 아이들의 시간표를 보며 안도할 것이 아니라, 쉼표 없고 놀이 없는 아이들의 일상에 깊은 우려를 보내야 한다.

아이들의 일상에서 계획되지 않은 시간, 곧 놀이 시간은 단순한 쉼의 시간이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는 시간이다. 주변을 탐색하고, 친구나 또래와 대화하고 사귀는 법을 익히며 자기가 알게 된 것들을 몸소 시도해 보는 시간인 것이다.

또 어른들이 만들어준 시간표대로가 아니라, 온전히 그 시간의 주인이 돼 자발적인 선택이 가능할 때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주도적이다. 따라서 놀이시간은 수많은 경험과 기회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도 주 52시간 제도가 필요하다. 그저 보호자들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정책적 차원에서 아이들의 놀이시간과 학습시간의 비율을 제도화할 필요성이 있는지 사회적 논의를 시작했으면 한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 그 시간이 보장된다는 것은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동등하게 주어져야 하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다시 「모모」의 이야기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세상에는 아주 중요하지만 너무나 일상적인 비밀이 있다. 모든 사람이 이 비밀에 관여하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대개 이 비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비밀은 바로 시간이다. (줄임)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

☞ 서울시 아동 놀이권 조례 제정 함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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