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가기 싫다는 아이의 마음 속 ‘나쁜 기억’ 꺼내주세요 
유치원 가기 싫다는 아이의 마음 속 ‘나쁜 기억’ 꺼내주세요 
  • 칼럼니스트 김영훈
  • 승인 2020.06.0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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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의 두뇌훈육] 아이의 불안을 키우는 ‘암묵기억’ 없애는 법

Q. 2주일 전쯤인가요,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가 무척 우울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난 친구가 없어. 유치원 가기 싫어…”라고 하더라고요. 다음날 선생님께 확인해봤더니, 미술 시간에 자리가 없어서 아이만 긴 책상에 혼자 앉아 그림을 그렸다네요. 그게 아이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았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그 일이 해결된 이후에도 아이가 계속 유치원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계속 유치원이 재미없고, 친구가 없다면서요.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달래줘야 아이가 다시 즐거운 마음으로 유치원에 갈 수 있을까요?

◇ 힘들었던 기억 제대로 ‘잊지’ 않으면 아이들은 내내 불안에 시달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유치원 가고싶지 않아"라는 아이의 마음 속엔 어떤 '암묵기억'이 자리잡고 있을까요? ⓒ베이비뉴스
"이유는 모르겠지만, 유치원 가고싶지 않아"라는 아이의 마음 속엔 어떤 '암묵기억'이 자리잡고 있을까요? ⓒ베이비뉴스

A. 유치원 갈 나이 정도 되면 아이들은 엄마와 별다른 문제 없이 떨어진다. 그러나 엄마와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 유치원에 갈 때마다 울고불고 떼를 쓰는 아이도 있다. 이렇게 엄마와 떨어지는 일을 격하게 거부하는 아이라면 과거에 원치 않게 엄마와 떨어졌던 안 좋은 기억이 있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부모는 아이의 기억이 조각나있다고, 그래서 따로따로 꺼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억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일종의 연결이다. 연결장치인 뇌는 현재 아이의 생각, 느낌, 냄새, 이미지를 처리하고 그 경험을 과거 비슷한 경험과 연결한다. 따라서 과거의 경험은 아이가 지금 보거나 느끼는 것을 해석하는데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과거의 어떤 사건이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생후 18개월까지는 무의식적으로 기억되는 ‘암묵기억’만 형성한다. 아이는 집이나 부모에게서 나는 냄새, 맛, 소리, 배고픔, 젖 먹을 때의 행복감, 엄마와 떨어졌을 때의 느낌 등을 부호화해서 기억으로 남긴다. 아이는 감정, 신체감각, 심상 등을 부호화하고, 자라면서 기기, 걷기, 자전거 타기 등의 행동을 부호화해서 암묵기억을 형성한다.

괴롭고 부정적인 경험을 통해 형성된 암묵기억은 그 기억을 의식하지 못할 때, 땅속에 파묻힌 지뢰처럼 아이의 행동을 크게 제한하고 불안을 키운다.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뇌는 많은 사건을 기억한다. 엄마가 눈앞에서 사라졌던 기억부터 높은 곳에서 떨어졌던 기억까지, 고통스러운 순간들은 뇌에 새겨져 아이에게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아이가 그 기억의 근원을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암묵기억은 슬픔, 두려움, 불안 등의 고통스러운 감정과 신체적 고통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아이들이 자기들도 왜 싫은지 모른 채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 고통스러운 기억의 원천을 파악하지 못하면 아이는 계속 두렵고 불안해할 뿐 아니라 수면장애까지 앓을 수 있다. 

◇ 아이들에겐 힘든 경험을 ‘자신을 이해하는 기회로 바꾸는 힘’ 필요하다

아이가 어떤 경험을 할 때마다 뇌 속 1000억 개의 뉴런은 전기신호에 활성화된다. 이때 뉴런은 다른 뉴런과 이어져 연결을 만든다. 아이의 경험 하나하나가 뇌의 물리적 구조를 바꾸어나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이가 부모와 안 좋게 떨어졌던 경험은 저마다 특정한 뉴런을 활성화하고 이렇게 활성화된 뉴런은 동시에 활성화되는 다른 뉴런들과 연결을 형성한다. 

뇌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미래에 대해 기대하고 또는 불안하게 만든다. 기억은 아이에게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게 함으로써 현재를 통찰하게 한다. 결국, 아이의 과거 경험이 뇌 속의 연결을 통해서 현재와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과거의 경험이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부정적인 과거의 경험에 영향을 받아 괴로워할 때는 암묵기억을 외현기억으로 바꾸어주는 기억의 통합기술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부모들은 아이가 고통스러운 경험을 잊기 바라지만, 고통스러운 경험을 자기를 이해하는 기회로 바꾸는 힘을 기르지 않으면 아이는 어려움을 겪는다.

아이의 뇌에는 암묵기억과 외현기억을 통합해서 아이가 자기 자신과 세상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해마’라는 부위가 있다. 해마는 다른 뇌와 협력하여 암묵기억의 모든 감정, 감각, 심상을 한데 모으고 짜 맞추어서 의식 수준에서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외현기억으로 바꾼다. 부모는 아이와 대화하면서 유치원에서 연상되는 두려움을 일으키는 암묵기억이 외현기억으로 통합되도록 하여 아이가 자신의 두려움을 이해하고 다스리도록 하여야 한다.

◇ 자신의 두려움을 다스릴 줄 아는 아이로 키우는 양육지침

▲아이와 대화할 것= 부모는 아이와 대화하며 아이가 가지고 있는 유치원에 대한 두려움이 어디에서 왔는지 아이에게 알려줘야 한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이용해 아이의 암묵기억이 밖으로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암묵기억이 아이를 휘두르지 않는다. 일단 불쾌했던 암묵기억이 의식으로 드러나면 아이는 현재의 두려움도 쉽게 다스릴 수 있다. 암묵기억이 외현기억으로 통합되면 통찰력과 이해를 높일 뿐 아니라 마음도 치유할 수 있다. 

▲이유를 따지기보다는 감정의 요인을 파악하라=아이는 본인이 왜 유치원에 가기 싫은지 그 이유를 스스로 알 수 없다. 아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유치원에 가고 싶지 않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이 어디에서 오는지 부모가 알려준다면 아이에게는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제할 힘이 생긴다. 그 힘이 있는 아이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재구성할 줄 알게 된다.

▲경험을 재생하여 이야기할 것=기억을 통합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야기하기’이다. 하지만 아이가 과거의 안 좋은 경험에 영향을 받고 있을 때 그 경험 전체를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그때에는 마음을 조작하는 ‘리모컨’ 사용법을 아이들에게 알려주자. 이 리모컨으로 기억을 일시 정지, 되감기, 빨리 감기하는 것이다. 불쾌한 기억은 ‘빨리 감기’로, 좋은 기억은 ‘되감기’ 한다면 아이에게 기억의 통제권을 줄 수 있다. 그러면 아이는 힘든 경험을 받아들이고 그 경험을 분명한 의식 수준으로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기억 연습을 할 것=평소 아이들에게 매일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게 하자. 그렇게 암묵기억과 외현기억을 통합하는 연습을 하자. 특히 가족과 함께한 경험, 친구들과 우정, 새로운 집단에 합류하게 된 일 등 아이들이 중요하고 감동적인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것을 외현기억으로 많이 만들어주면 긍정적 경험의 영향력이 커진다. 저녁 식사 시간마다 “오늘 하루 어땠는지 말해줄래? 좋았던 일, 나빴던 일,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했던 일을 한 가지씩 말해줘”라고 말해보자.

아이에게 의미 있는 중요한 경험을 부모와 나누며 좋은 기억을 강화하는 과정에 사진과 영상물을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베이비뉴스
아이에게 의미 있는 중요한 경험을 부모와 나누며 좋은 기억을 강화하는 과정에 사진과 영상물을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베이비뉴스

▲사진과 영상은 좋은 ‘추억물’=아이가 좋은 기억을 많이 갖고 살게 하려면 예전에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을 함께 보는 것도 좋다.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기억의 책을 만들어보는 것도 효과적이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잘 지냈을 때의 경험을 그림으로 그리고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사진 등을 모아 아이와 함께 기억의 책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아이에게 의미 있는 중요한 경험을 부모와 나누며 좋은 기억을 강화하는 것이다.

▲엄마의 불안부터 없애자=엄마가 오히려 아이를 떼놓는 일에 불안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먼저 점검하자. 아이의 집단생활을 불안해하는 엄마도 있다. 엄마의 불안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내색하지 않아도 아이는 엄마의 행동이나 눈빛에서 불안을 읽는다. 엄마의 불안이 전달되면 아이는 자신이 유치원에 간 사이 엄마가 사라져버리진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러니 당연히 유치원에 가기 싫어지는 것이다. 엄마 마음이 편해야 아이 마음에도 여유가 생긴다. 

▲무작정 떼놓으려 하지 말자=아이가 엄마와 떨어질 땐 단계적으로 서서히 시도해야 한다. 처음엔 엄마가 수업을 참관하고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간다. 일주일 정도 반복했다면 유치원 문 앞까지만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자. 그것 또한 익숙해졌다면 이제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도 좋다. 단계적으로 엄마와 아이의 분리를 시도한다면 아이는 엄마와 떨어져 있는 것도 자연스레 받아들일 줄 알게 된다. 제일 중요한 것, 데리러 오겠다고 약속한 시간은 반드시 지키는 것이다. 아이가 끝나는 시간보다 5~10분 미리 가서 기다리자. 

▲달래기나 협박은 통하지 않는다=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쓰는 아이. 이런 아이가 일단 유치원 버스를 타거나 유치원 안에 들어가면 울음을 멈출 거로 생각해 강제로 차에 태우거나 등 떠밀어 보낸 뒤 얼른 자리를 뜨는 일도 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해선 안 된다. 유치원에 가기 싫은 아이의 마음을 먼저 공감한 뒤 단계적으로 떼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 

▲집도 따분하고 재미없다는 것을 알게 할 것=유치원이 재미가 없어서 꾀를 부리는 것이라면 집에 있는 것이 오히려 더 따분하고 재미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 좋다. 아이가 유치원에 안 갔다면 유치원이 끝나는 시간까지 집에서 하는 일상의 행동에 자유를 줘선 안 된다. 방에만 계속 있게 하되 장난감은 모두 치워버리고 재미있는 놀거리를 제공하지 말자. 

▲아이에게 신뢰를 주자= 아이가 엄마를 신뢰하지 못하면 엄마에게서 떨어지기 싫어한다. “잠깐 쓰레기 버리고 올게”라더니 이웃집에서 1~2시간 수다 떨고 돌아오는 일이 반복되면 아이는 엄마를 못 믿는다. 유치원에 갔다 돌아오면 엄마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에 집을 나서기가 싫어지는 것이다. 이런 가정이라면 우선 아이와 엄마의 신뢰관계를 다시 쌓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의 행동이나 말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여주고 아이와 하기로 한 것은 반드시 실천한다.

*칼럼니스트 김영훈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와 소아신경과 전문의로 가톨릭의대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현재 한국두뇌교육학회 회장과 한국발달장애치료교육학회 부회장으로 학술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아이가 똑똑한 집, 아빠부터 다르다(2017)」 「4-7세 두뇌습관의 힘(2016)」 「적기두뇌(2015)」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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