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붙' 대책으론 아동학대 못 막는다… 문제는 "인프라"
'복붙' 대책으론 아동학대 못 막는다… 문제는 "인프라"
  • 권현경 기자
  • 승인 2020.06.16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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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 이순기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 부장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최근 충남 천안에서 아홉 살 남자아이가 여행가방에 갇히는 등 가정 내 학대로 사망했고, 경남 창녕에서 아홉 살 여자아이가 가정 내 상습적인 학대로부터 탈출하는 등 잇따른 아동학대 사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끊이지 않는 아동학대 사건. 하지만 여론의 관심은 주로 자극적인 학대 내용과 아동학대 관련자의 처벌 여부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을 뿐, 피해아동에 대한 관리, 향후 대처와 재발방지 장치 등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아동학대 사건이 이슈가 될 때마다 발표한 대책은 현장의 필요와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을까. 보건복지부의 위탁을 받아 전국 시·도 위탁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운영하는 굿네이버스의 이순기 아동권리사업본부 부장과 지난 15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리는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할까.

◇ “상담원 1인당 64건 사례관리… 아동보호, 인프라 확충에 달렸다”

잇따른 아동학대 사건과 관련해 아동학대를 막기 위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베이비뉴스
잇따른 아동학대 사건과 관련해 아동학대를 막기 위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베이비뉴스

Q. 최근 이슈가 된 아동학대 사건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최근 아동학대 사례를 보면 아직도 아동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고 훈육이라는 명목으로 체벌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2018년 아동학대 주요 통계에 따르면, 학대 행위자가 부모인 경우가 76.9%로 가정 내에서 아동학대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차적인 보호와 돌봄을 제공해야 할 가정에서 아동학대가 발생할 경우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어요.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가정 내에서 아동과 부모가 오랜 시간 같이 있으면서 스트레스가 높아져 부모의 학대가 증가했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등교 개학이 미뤄지면서 아동을 관찰할 수 있는 학교, 어린이집, 유치원 등의 신고 의무 보고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도 이유로 볼 수 있습니다.” 

Q. 아동학대 사건을 막기 위해 현재 법과 제도의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먼저 아동보호 인프라 확충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아동보호체계는 인프라가 부족하고 아동보호서비스가 불균형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종사자 업무량 또한 과다한 상황입니다.

아동복지법 제45조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을 시·도 및 시·군·구에 1개소 이상 설치하게 돼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전국에 68개만이 설치·운영되고 있어, 총 229개 지방자치단체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때문에 아보전 1개소당 평균 4개 정도의 시·군·구를 관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자체의 관심과 재정 여건에 따라 설치 수의 편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아보전 상담원 1인당 평균 사례관리 수는 64건입니다. 보건복지부 ‘포용국가 아동정책’에서 제시하는 기준인 32건, 굿네이버스 ‘대한민국 아동보호 기준선 수립연구(2018년)’에서 제시하는 기준인 20건에 비해 2~3배 많은 수준입니다.

상담원이 전문가로서 충분히 업무를 수행하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적정 사례관리 기준 마련이 필요해요. 결국 아동학대 대응에 있어 신속성과 접근성, 서비스의 충분성과 전문성은 아동보호 인프라의 충분한 확충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모든 사업에는 예산 확보가 중요하죠. 아동학대예방사업 예산의 일반회계 전환과 충분한 예산 확보가 필요합니다. 아동학대예방사업의 경우, 사업추진(보건복지부)과 예산편성(법무부, 기획재정부) 부처가 이원화돼 있어요.

아보전 및 학대피해아동쉼터 운영 예산이 부처의 본 예산이 아닌 기금(범죄피해자보호기금, 복권기금 등)으로 편성돼 불안정한 구조죠. 아동학대예방사업 예산은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기본예산(일반회계)으로 편성해 안정적인 예산 확보와 사업 수행이 가능할 수 있도록 신속히 개선돼야 합니다.

오는 10월부터 개정된 아동복지법 및 아동학대처벌법이 시행되는데요, 이에 따른 준비와 안정적인 정착도 필요합니다. 아동학대 신고접수와 현장 조사, 행위자 및 피해아동에 대한 주요 조치는 지자체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맡아 학대행위에 대한 위법 여부 확인, 현장에서 피해아동 또는 행위자에 대한 조치 등 친권 제한과 관련한 업무 등은 공적체계에서 맡게 됩니다.

아동학대 분야는 발생 원인도 다양하고 업무절차나 기준 등이 다른 분야보다 매우 상세하게 마련돼 있을 뿐 아니라 아동의 발달단계나 피해아동 및 학대 행위자 특성 등 포괄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이 업무를 맡게 될 공무원들이 이러한 지식과 실천기술을 잘 습득하고 배치돼야 초기 정착단계에서 피해아동 보호망의 누수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 “아동은 독립된 인격체, 권리주체로 인식하는 사고 필요”  

굿네이버스 아동학대예방 캠페인 '아이들을 지키는 골든타임, 아동학대 국민감시단이 되어주세요' 진행 모습. ⓒ굿네이버스
굿네이버스 아동학대예방 캠페인 '아이들을 지키는 골든타임, 아동학대 국민감시단이 되어주세요' 진행 모습. ⓒ굿네이버스

Q.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할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아동을 권리주체로 인식하는 사고가 필요해요.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아동을 독립된 인격체, 권리의 주체로 인식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동학대를 범죄로 인식하지 않고,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체벌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 법무부가 민법 제915조(징계권) 조항 삭제를 비롯하여 체벌금지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아동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징계권’을 주장할 게 아니라 보호자로서의 ‘의무’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아동을 친권자의 징계 권리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아동을 성인과 동등하게 존엄성을 지닌 온전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대돼야 합니다.

또한 아동학대에 대한 적극적인 신고 의식이 필요합니다. 미성년인 아동들은 외부의 신고가 절대적으로 중요해요. 특히 아동의 연령이 어릴수록 공적체계에서 아동을 관찰하며 이상 징후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신고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합니다. 신고의무자로 명시된 직군의 종사자이든 아니든, 학대상황이 의심되면 112로 신고해서 더 늦기 전에 아동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Q. 아동학대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보도 경향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언론 보도를 통해 아동학대를 사회적 문제로 공론화하고 국민의 인식을 개선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경쟁적으로 자극적이고 선정적 제목과 내용의 기사를 생산하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있어요. 수사 중인 내용에 대해 사실 확인을 하지 않거나, 혹은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기사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정보들이 SNS를 통해 무분별하게 재생산되고 확산하는 과정에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되죠. 자극적 콘텐츠에 초점을 맞춘 아동학대 언론 보도는 2차 피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에 있어 그 방향성을 저해할 수 있어요. 아동학대 보도영역은 전문적인 취재 영역이므로 인권과 윤리의식이 필요하며, 아동학대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신중한 보도가 필요합니다.”

◇ 아동학대 사망사고 되풀이… “법과 제도 발전 매우 더딘 편” 

굿네이버스는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운영을 통해 아동학대 신고접수 및 현장조사, 피해아동 보호조치 등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굿네이버스는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운영을 통해 아동학대 신고접수 및 현장조사, 피해아동 보호조치 등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Q. 시민사회 차원에서는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굿네이버스는 우리나라 아동보호체계가 마련되기 전인 1996년 민간단체 최초로 아동학대상담센터를 운영하면서 아동학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시키고, 아동보호와 아동학대예방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습니다.

2000년 아동복지법 개정으로 국가가 아동학대 문제를 국가의 책임으로 인식하고 아보전 설치 근거를 마련한 이후부터는, 업무를 위탁받아 아동학대 신고접수 및 현장조사, 피해아동 보호조치 등의 역할을 담당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대피해아동 쉼터 설치 운영, 아동학대 인식개선을 위한 캠페인, 아동학대 관련 법 개정 및 제도개선 촉구, 아동학대 관련 연구 등 아동학대예방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해주세요.

“2000년 아동복지법이 개정된 배경에도, 2014년 아동학대처벌법이 제정된 배경에도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발단이 됐으나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의 발전은 매우 더딘 편입니다.

지난 주, 정부는 사회관계 장관회의를 통해 아동학대 대응책을 발표했어요. 주요 골자가 아보전과 쉼터 확충인데, 이 대책은 이미 여러 차례 발표됐지만 예산 확보가 원활하지 않아 매년 미비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적어도 이번엔 현장 실무자들이 더욱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관련 인프라가 확충되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현장의 상담원들을 기억해주기를 바랍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는 신고와 현장 출동, 환영받지 못할 공간으로 들어가 조사하고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어려움, 학대행위자들의 폭언과 폭력, 위협, 사회적 인식 부재와 폭증하는 사례로 인한 과도한 업무량, 충분하지 않은 인력과 예산 등의 문제 등 악조건 속에서도 아보전 상담원들은 책임감과 소명감으로 묵묵히 일하고 있습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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