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풍 앓으며 울적하다가, ‘이 책’ 만나 위로받았다 
산후풍 앓으며 울적하다가, ‘이 책’ 만나 위로받았다 
  • 칼럼니스트 오윤희
  • 승인 2020.06.2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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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지기 엄마의 그림책 이야기] 「나의 작은 화판」 ‘권윤덕의 그림책 이야기’를 읽고서

출산 한 달 만에 복직하고 무리하게 일 한 탓일까? 최근 많이 아팠다. 살면서 무릎이 시리긴 처음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한의원에 찾아갔다. 그리고 심한 산후풍이 들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너무 아파서 책도 읽을 여유도, 글을 쓸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기가 잠든 밤이 되면 ‘내가 결혼을 안 했다면, 내가 아이를 안 낳았다면’이란 상상을 하며 잠이 들곤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결혼 전 나를 소개해 두었던 한 프로필을 마주했다.

'일과 여행과 예술을 사랑하는, 보고, 쓰고, 배우기를 탐하는, 보다 더 균형적인 삶을 추구하기를, 궁극적인 삶의 목표는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도요.’

과거의 내가 쓴 프로필처럼 나는 지금 즐겁게 살고 있을까? 자유롭게 부유하는 삶을 바라던 과거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이 교차하는 혼란 속에서 어렵게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쉽게 읽히지 않았기에, 더 쉽게 잊고 싶지 않았던 책 속의 글과 문장들은 산후풍으로 고생하는 나를 지탱하고 위로해 주었다.

「나의 작은 화판」 표지. ⓒ돌베개
「나의 작은 화판」 표지. ⓒ돌베개

내 머릿속에는 세 개의 방이 있다. 일상을 살아가는 현실의 방, 작품 구상을 넣어 두는 창작의 방, 그리고 그 누구의 간섭 없이 제멋대로 노니는 꿈결의 방. – 본문 5쪽 

첫 문장부터 강렬하게 나를 자극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권윤덕 작가다. 한국인 최초 2016년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상 후보에 올랐던 어른들의 어른이자 그림책 작가들의 작가, 1세대 그림책 작가인 권윤덕 작가가 새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름하여 「나의 작은 화판」 (글과 그림 권윤덕, 돌베개, 2020년)이다. 이 책은 25년 넘게 작가로 활동하면서 선보인 10권의 그림책과 인생을 담았다.

내가 ‘어른과 아이를 위한 그림책방’을 연지도 두 달 남짓이 지났다. 그림책이 좋아서 시작한 일이 두렵기 시작한 건, 그림책을 ‘일’로 대하기 시작하면서다. 그림책을 골라 손님들에게 설명하고 직접 그림책 수업도 하면서 즐거운 일들도 많았지만, 사업을 하는 대표로서 매번 쉽지 않은 결정들과 용기 사이에서 매일을 보내는 요즘, 책을 즐겁게 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러한 나를 위로해 주듯, 권윤덕 작가도 서문에서 매번 그림을 그릴 때마다 막막함과 불안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지금도 하얀 화판 앞에 앉으면 무섭고, 겁이 난다고. 화판에 한 획을 긋기 위해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고 말이다. 만인의 독자에게 사랑받은 작가도 나와 비슷하다는 공감 때문이었을까? 한 아이의 엄마이자, 작가로,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시민으로, 그녀가 작업한 총 10권의 그림책과 인생의 에피소드가 엮인 책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어진 밑줄로 가득 채워졌다.

◇ 나와 내 아이가 찾은, ‘인생’이라는 그림책

나는 내 무릎에 앉은 아이와 그림책을 읽으며 공감하던 그 시간이 참 행복했다. 따뜻한 온기뿐 아니라 냄새와 숨소리와 감정 들까지 아이의 등 뒤에 맞닿은 내 가슴으로 고스란히 빨려 들어갔다. – 본문 24쪽 「오직 그림」 중에서

책방을 열기 전 가장 크게 생각한 점은 바로 ‘내 아기가 언제와도 좋은 책방’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내 아이가 좋아하면, 친구들이 좋아할 것이고, 부모들이 좋아하고, 동네 사람들, 책방 손님들 모두가 좋아할 것이라는 막연함은 사업을 준비하는 동안 나를 지탱해 준 희망이었다.

책장에 넣을 그림책을 고르며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그림책 주인공이 되었다가, 다시 아이가 되었다가, 엄마가 되었다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준비했던 책방이었다. 권윤덕 작가도 나처럼 책을 그리는 동안 그림책과 현실 속 공간을 넘나들었다는 문장에서 나는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권윤덕 작가의 「만희네 집」 만희가 작가님의 아드님 이름인 줄 몰랐다. 이제 생후 6개월이 되어가는 아이의 볼을 어루만지며 책을 읽어 내려가다 밑줄을 긋기를 여러 번. 권윤덕 작가님도 어린 아들을 바라보며 이렇게 그림책을 읽었겠구나. 아이와 함께 읽어가는 그림책은 책 이상의 소중한 시간을 안겨주는 선물이었다. 몸은 힘들지만, 이 순간만큼은 누구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순간, 소중한 내 아이와의 시간이었다.

권윤덕 작가의 첫 그림책 「만희네 집」처럼 지금은 나와 내 아이가 ‘인생’이라는 그림책을 함께 만들어가는 ‘작가’가 되어가는 시간이 아닐까? 서툴어도 나와 내 아이의 화판에 그려질 무언가를 함께 시작하는 것, 두려움보다 기대가 큰 앞으로의 나날들을 기다려진다.

권윤덕 작가가 쓴 10권의 그림책 전시. ⓒ오윤희
권윤덕 작가가 쓴 10권의 그림책 전시. ⓒ오윤희

◇ 선에서 태어나 선(善)함과 선(先)함을 이야기한 10권의 그림책

「나의 작은 화판」에서는 첫 작품 「만희네 집」을 시작으로 어릴 적 옷장 속 옷들을 품은 이야기책 「엄마, 난 이 옷이 좋아요」, 초등학생이 된 만희와 만희 친구들을 바라보며 새롭게 시도했던 「만희네 글자벌레」, 제주도꼬리따기노래를 그녀만의 그림책으로 탄생시킨 「시리동동 거미동동」, ‘진주’라는 고양이 집사로 살면서 그린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매일' 이라는 일상과 일터를 담은 「일과 도구」까지….

그녀가 그려온 그림책과, 그림책 작가가 된 이야기, 또 25년간 작업한 그림책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과 도구」 이후 그녀의 그림책은 일상에서 나아가 세상을 향한 다양한 목소리를 담기 시작한다.

나는 내 작업이 한 개인의 삶을 보여주는 데 머물지 않고, 개인을 지배한 사회구조까지 함께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개인의 일과 역사적 맥락을 연결할 수 있을까 계속 질문했다. – 본문 203쪽 「전쟁, ‘위안부’」 중에서

「꽃할머니」를 알게 된 건 이전에 소개한 칼럼에서 소개했던 이억배 작가의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의 시리즈인 한국, 중국, 일본이 함께 만드는 「평화그림책」에서다. 권윤덕 작가는 2016년 봄, 일본에서 온 편지를 시작으로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어린이들에게 알려주는 어른이 되어야 함을, 사회 문제를 다룬 그림책 작가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작가의 고민은 일본 위안부를 다룬 「꽃할머니」, 어지러운 사회 속 불안과 치유를 다룬 「피카이아」, 제주 4·3 사태를 다룬 「나무도장」,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룬 「식스틴」으로도 이어졌다. 마냥 그림이 좋아 시작했다던 권 작가의 그림책은 선에서 태어나 선(善)함과 선(先)함을 나누는 매개체가 되었다.

권윤덕 작가 특별전(展). ⓒ오윤희
권윤덕 작가 특별전(展). ⓒ오윤희
권윤덕 작가가 쓴 10권의 그림책 전시. ⓒ오윤희
권윤덕 작가가 쓴 10권의 그림책 전시. ⓒ오윤희

이 책을 덮으며 나는 어떠한 어른이 되고 어떠한 책방지기가 될 것인가? 깊이 생각해 보았다. 책방에 오는 모든 이들에게 의미를 주는 그림책을 소개하고, 책의 첫 문장처럼 현실의 방과 창작의 방, 꿈결의 방을 매일 오가는 어른이면서도 선(善)과 선(先)을 향해 바른걸음을 하는 어른이고 싶다. 그런 어른이 되기 위한 첫걸음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 끝에 권윤덕 작가님과 함께 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일주일 전, 작가님과 함께하는 기획전을 위해 책으로만 뵙던 권윤덕 작가님을 직접 만났다. 선한 눈빛과 인상이 함께했던 시간은 쉽사리 잊히지 않는다. 작가님의 원화와 그림책, 드로잉 클래스까지 이곳에 오는 모든 이들에게 나누고 싶은 자리를 준비했다. 특히 올해는 6·25 전쟁 70주년을 맞이한다. 그래서 오는 25일에는 작가님과 북 토크 자리도 준비했다.

권윤덕 작가 원화와 소품 1. ⓒ오윤희
권윤덕 작가 원화와 소품 1. ⓒ오윤희
권윤덕 작가 원화와 소품 2. ⓒ오윤희
권윤덕 작가 원화와 소품 2. ⓒ오윤희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작고 하얀 화판을 가지고 태어난다. 화판에 무엇을 담아 어떻게 그려 갈지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수없이 많은 탐색선을 그을 수밖에 없고, 대부분이 삐뚤고 망친 선투성이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지지 않을까. 거기서 다시 그려나갈 실마리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 본문 ‘책을 열며’ 중에서

나의 화판은 어떤 그림을 담아가고 있을까? 수많은 탐색선이 오고 가는 거친 화판일지라도, 그 끝에는 당신과 나의 소중한 인생이라는 이야기가 엮인 화판이길 응원한다.

*칼럼니스트 오윤희는 생일이 같은 2020년생 아들의 엄마입니다. 서울 도화동에서, 어른과 어린이 모두가 커피와 빵, 책방과 정원에서 행복한 삶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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