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없는 놀이터에 예산만 계속… 중요한 건 ‘권리’다”
“놀이 없는 놀이터에 예산만 계속… 중요한 건 ‘권리’다”
  • 최규화 기자
  • 승인 2020.06.30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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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울시 아동 놀이권 조례 추진’ 권수정 서울시의원

【베이비뉴스 최규화 기자】

권수정 의원은 아이들이 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시간’의 문제를 지적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권수정 의원은 아이들이 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시간’의 문제를 지적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금 아동들에게 서울시가 할 수 있는 지원 중에 가장 중요한 게 놀 수 있는 권리, 놀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발의할 서울시 아동 놀이권 조례가 그것의 시발점이 될 겁니다.”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 소속 정의당 권수정 의원(비례대표)의 말이다. 권 의원은 ‘서울시 아동 놀이권 조례 제정을 위한 시민연대’와 함께 ‘서울시 아동의 놀이권 보장을 위한 조례(안)’ 제정을 추진 중이다.

2018년 아동종합실태조사 결과, 만 9~17세 아동의 70% 이상은 평소에 시간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시간 부족에 시달리는 이유로는 학교 27.5%, 친구관계 학교 밖 활동 27.0%, 학원 또는 과외 수업 23.3%, 자기학습 19.6% 순으로, 학습 관련 시간 부족이 전체의 70.4%를 차지했다.

놀이를 잃어버린 아이들. 특히 과도한 학습 부담 때문에 놀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놀이정책은 놀이터와 놀이시설에 대한 고민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권 의원은 놀이를 아동에게 필수적인 권리로 인정하고, 놀이시간과 아동참여를 보장하는 조례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9월 통과를 목표로 추진 중인 놀이권 조례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놀이권 조례를 통해 아동들의 삶은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지난 24일 서울 서소문동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서 권 의원을 만나서 물었다.

Q. 아동의 놀이권 문제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년 전 지방선거 때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통해서 아동들이 직접 만든 아동정책공약을 제안받았다. 세부적인 것까지 깊이 있게 논의돼 있어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말 놀랐다. 그 가운데 놀이시간과 놀이권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아동 당사자들에게 정말 중요하게 다뤄지는 문제라는 걸 확인했다.

의회에 와보니 지역구 의원들이 예산을 확보하려 노력하는 것 중 하나가 놀이터 시설 개선 예산이었다. 정작 아이들은 없는 놀이터에 돈은 계속 쏟아붓고 ‘예산 얼마 확보 환영’ 현수막만 거는 걸 보면서,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놀이시간과 놀이권 자체에 대해서 들여다보게 됐다.”

Q. 지금을 ‘놀이를 잃어버린 시대’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무엇이 아이들에게서 놀이를 빼앗아간 걸까.

“일단 놀 시간을 안 준다. 2018년 아동종합실태조사 결과, 학교에 있는 시간 이외에 하루에 3시간 이상을 사용하는 활동은 ‘학원 혹은 과외’가 61%로 가장 많았다. 게다가 1시간 이상 3시간 미만으로 하는 활동 중 가장 높은 응답률을 나타낸 항목도 ‘통학, 학습 관련 이동을 포함하는 이동시간’이었다.

공부하느라 너무 바쁘다. 아이들은 ‘나중에 부모님이 원하는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지금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답한다.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감과 똑같다. 사회는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생각, 내 삶의 안전성은 오직 내가 노력해서 확보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어려서부터 공부에 매달리게 한다.

‘어릴 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시간을 조금 보낸다 해도 내 인생이 전부 파괴되진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부모부터 아이들까지 모든 세대들에게 부족한 거다. ‘사회적 안정망을 통해 모든 국민의 삶이 보호되고 있다’라는 신뢰가 없다는 점 역시 ‘놀지 못하는 시대’를 만든 하나의 이유가 되지 않을까.”

◇ “‘안정적 삶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어른 세대 불안감과 똑같아” 

‘서울시 아동의 놀이권 보장을 위한 조례’ 제정을 추진 중인 권수정 서울시의원.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서울시 아동의 놀이권 보장을 위한 조례’ 제정을 추진 중인 권수정 서울시의원.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Q. 우리나라는 노동시간이 길기로 유명한 나라다. 부모의 노동시간이 아동의 놀이권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분명 관계가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2018년 '아동행복생활시간'(전국 초등학교 4학년 ~ 고등학교 2학년 571명 대상) 조사 결과를 보면, 아동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하루 중 13분(0.9%)에 불과했다.

한국 부모들이 미취학 자녀와 보내는 시간은 하루 48분으로 OECD 평균인 150분보다 크게 적고, 특히 아버지가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하루 6분에 불과했다(OECD 2015년 삶의 질 보고서). 부모와 같이 놀고 싶어도 놀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특히 취약계층이나 맞벌이 가정 아동들에게 놀이권은 더 먼 얘기일 거다.”

Q. 놀지 못하는 것이 아동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진단하나.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노는 시간’은 ‘남는 시간’이라고 인식한다. 해야 할 것을 다 하고 나서 시간이 남으면, 그때 놀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논다는 것은 아동기에 필수적인 요소다.

놀면서 다투기도 하고, 함께 승리의 기쁨을 맛보기도 하고, 서로 부딪히고 부대끼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들은, 아동의 사회화 과정에 꼭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면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점점 성숙해가고, 아이가 겪는 사회의 범위가 넓어져간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과정들이 없어지다 보니, 아이들의 사회가 축소돼 있다.

이 점은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대한 고민들이 옅어지고 개인화 문제가 심해지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놀이시간은 자투리 시간이 아니라, 아동기에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다.”

Q. 조례안은 놀이를 권리로 규정해 ‘놀이권’이라고 명시했다. 놀이는 왜 권리여야 하는가.

“노동자들은 하루에 8시간 일하면 1시간 쉬는 게 당연한 권리로 보장되지 않나. 최근 제가 청소년 생리대 보편지급 조례도 추진했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조건이다. 개인이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 조건 속에서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해주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고, 곧 국민의 권리라는 의미다.

놀이권도 이것과 맞닿아 있다. 우리는 아직 놀이를 권리로 보지 않는다. 교사나 부모가 종일 공부만 시키고 놀 시간을 아예 주지 않아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다. 놀권리 역시 권리로 강력하게 보장해줘야 그걸 위해서 사회가 노력할 거다. 놀이를 권리로 여기고, 또 그것을 보호할 제도적 장치들이 같이 만들어져야 한다.”

◇ “놀이와 쉼을 죄악이라 여겨온 사회… 이제라도 ‘스톱’ 외쳐야”

권수정 의원은 “놀이정책은 놀이터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정작 아이들은 놀러올 시간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권수정 의원은 “놀이정책은 놀이터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정작 아이들은 놀러올 시간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Q. 서울시 놀이권 조례가 제정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아동학대 문제를 예로 들어보면, 사회적으로 아동학대를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은 상당히 높아져 있다. 하지만 개인의 문제에서, ‘내 아이를 내가 체벌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때릴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놀이권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아이들은 잘 놀면서 커야 한다’라는 인식이 높아지더라도, 막상 내 아이의 문제가 됐을 때 부모들이 그 권리를 쉽게 인정해줄 수 있을까. 대한민국 경쟁시스템의 최전방인 교육전선에서, 과연 이 권리를 내 자녀에게도 줄 것인가. 분명히 차이가 발생할 거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와 행정의 영역에서 놀이를 권리로 만들기 위해 더 노력해줘야 한다. 그래야 이 권리가 가정 내로 적극적으로 침투할 수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민과 시민의 행복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시민 안에는 아동도 포함돼 있다. 그들의 행복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조례에 담아야 한다.”

Q. 아동 역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서울시정은 어떤 점이 더 변화해야 할까.

“서울시가 청년에 주목하면서 청년청을 만들고 예산과 인력을 대대적으로 투입했다. 청년정책 포럼을 통해서 당사자들이 정책을 숙의하고, 시는 그것을 실제로 주택이나 일자리 사업에 반영했다. 청년의회나 청소년의회가 있는 것처럼, 일단은 아동 당사자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기구들이 더 마련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서울시에 아동 담당 부서조차 없다. 푸른도시국부터 여성가족정책실까지 여러 부서와 연관이 있는데, 각자 자기 영역만 보면서 얘기하는 한계가 있다. 놀이정책은 놀이터와 놀이시설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누가 어떻게 놀 것인지 고민이 부족하다. 놀이터는 다 비어 있고 아이들은 놀러올 시간이 없다.

놀이는 없고 놀이터라는 이름만 남은 놀이정책은 이제 변화해야 한다. 아동정책 전반을 맡을 부서를 정리해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아동 의견수렴 기구를 만드는 것까지 동시에 진행되는 게 필요하다.” 

Q. 아동의 놀이를 바라보는 관점은 결국 우리 사회가 ‘쉼’을 바라보는 관점과도 연결된다. ‘쉼’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는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쉼은 노동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주어진 일을 쉼 없이 하는 것만 미덕이라 생각해왔다. 재충전이나 자기계발 같은 가치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노는 것, 쉬는 것은 오랫동안 죄악이라 여겨졌고, 가치 있는 활동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권리로 인정해주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수십 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빨리 성장해야 돼!’라는 얘기만 해왔다. 경제적 성장, 물질적 성장, 지표의 성장뿐이었다. 개인의 성장, 민주주의의 성장, 인권의 성장 등을 말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완성된 사회로서 성장하지 못한 거다. 지금이라도 우리 사회가 말하는 성장에 대해 ‘스톱’을 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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