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는 내 마음이 복잡하단 걸 어떻게 알았을까
유튜브는 내 마음이 복잡하단 걸 어떻게 알았을까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0.07.03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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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서 배운 삶] 사람도 토끼도 살던 대로 살아야지, 안 그러면 병나

처음은 뭐든 어색하다. 불편하다. 처음 출근하던 날도, 처음 다른 부서에서 일하게 된 날도, 처음 출장을 가서 만난 사람도…. 처음이란 말이 익숙해질 법도 할 만큼 수많은 '처음'을 보냈지만, 처음은 항상 언제나 힘들다. 외롭고 괴롭다.

겨우겨우 넘어가야 하는 깔딱 고개 같다. 동네 뒷산을 오를 때마다 가장 초입에 만나는 깔딱 고개는 얼마 높지도 않은데 매번 거친 숨을 몰아쉬게 만든다. 이러면 더 힘들지 싶어 애써 호흡을 가다듬고 들이쉬고 내쉬고를 반복하며 한 발 한 발 걷는 깔딱 고개. 처음이란 것도 그런 걸까. 요즘의 나는 익숙한 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도전을 모색하고 있다.

이제 한 달도 안 되었다. 마음이 힘들다. 그냥 힘들다. 익숙한 관계와 처음이었을 때의 3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그때도 매일 심장이 벌렁거렸다. 이러다 안 될 것 같을 때 여행을 떠났다. 다 두고 친구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홍콩 어딘가에서 걷고 놀고 마시며 이야기하다가 힘을 얻었다. 에너지를 찾았다. 상황을 좀 더 떨어져 보게 됐다. 그때의 어색하고 불편한 관계는 3년 후 익숙한 관계가 되었지만, 우리는 다시 도전을 택했다. 새로움이라는.

그래서 또 한 번의 복잡한 마음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뭔가 계속 부족한 것 같고, 모자란 것 같은 마음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지금도 충분히 괜찮은데, 문자로는 써지는 이 문장이 마음으로는 뭔가 성에 차지 않는 기분이다. 하루 휴가를 냈다. 갈 데도 딱히 없는데 무작정 집을 나와 버스를 타고 한적한 카페로 갔다. 그런데 이럴 수가. 위치만 한적할 뿐,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유튜브를 켰더니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 때 듣는 노래 리스트'가 딱 떴다. 대박. 유튜브, 너 정체가 뭐냐. ⓒ베이비뉴스
유튜브를 켰더니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 때 듣는 노래 리스트'가 딱 떴다. 대박. 유튜브, 너 정체가 뭐냐. ⓒ베이비뉴스

주변의 소음 속에서 음악이나 듣자 싶어 유튜브를 켰다.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 때 듣는 감성 팝송 플레이 리스트'가 찾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찾아왔다. 대에박. 유튜브 대체 넌 정체가 뭐니(이런 내 마음 그대로 누군가가 '(유튜브) 알고리즘은 내 마음이 복잡하단 걸 어떻게 알았을까'라고 쓴 댓글도 있더라). 노을이 지는 4차선 도로 위로 차들이 쉴 새 없이 다니는 모습이 무한 반복되는 이미지에 듣기 편한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화면을 보고 멍 때리며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한참을 듣고 있을 때 화면 아래 댓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괜찮아 괜찮아했지만 사실은 안 괜찮았어요. 애써 감정을 무시한 거였죠…”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린가 싶어 댓글 리스트를 클릭해 봤더니 세상에. 나 들으라고 하는 댓글이 700여 개가 넘었다.

4개월 전 올린 플레이 리스트인데 조회 수가 70만 회. 댓글 안에서 마음이 복잡한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소통의 무대가 벌어지고 있었다.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 두기와 생활 속 거리 두기가 계속되던 시점과 일치하는 기간이었다.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기 다 흔적을 남기고 있던 거였다.

생각해보니 내 마음이 괜히 복잡한 것도 코로나와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몇 개월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소통이 더 힘들어진 기분이다. 어디선가 굳이 온라인 회식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렇게까지 회식을 해야 하나 싶었는데 지금은 조금 이해가 된다. 어느 분이 쓴 글을 읽고도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독일에서 회사 다니는 한국 분이었는데 그분 회사에서 말로만 듣던 온라인 회식을 하고 있었다. 말이 회식이지, 그저 각자 좋아하는 음료를 하나씩 놓고 온라인으로 이런저런 이야길 주고받는다는 거였다. 재택근무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일상적인 소통을 하지 못해서 고안한 것이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직원들 반응이 좋다고 했다. 사람들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었다. 새삼 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래도 3년 전보다는 나은 상황이다. 혼자라는 마음은 별로 들지 않으니까. 어디선가 나를 응원하고 있을 누군가가 있음을 아니까. 역시 쓰다 보면 괜찮아진다. 코로나를 핑계로 한동안 쓰는 재미를 잊고 살았다. 그래서 놓치고 있었다. 재밌게 살 궁리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다는 걸. 다시 돌고 돌아서 내린 결론은 나답게 살자다. 어떻게 재밌게 살 수 있을지만 고민하자. 나 원래 그랬잖아!  

잠깐만!

오늘 이런 너에게 읽어주고 싶은 그림책이 하나 있어. 유설화 작가의 「슈퍼 토끼」(책읽는곰, 2020년)야. 전작 「슈퍼 거북」을 다 읽은 아이들이 작가에게 물었대. "그래서 경주에서 진 토끼는 어떻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해. 참 고마운 아이들이지?

사람이 살던 대로 살아야지, 안 그러면 병 나. ⓒ책읽는곰
사람이 살던 대로 살아야지, 안 그러면 병나. ⓒ책읽는곰

전편에서 어처구니없이 거북이에게 진 토끼는 체면이 말이 아니었어. 경기에서 진 이유를 아무리 설명해도 사람들은 관심도 없었어.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지. 상처받은 토끼는 뛰지 말자고 맹세했어. 그런데 뛰지 않게 된 토끼는 눈도 침침하고, 털도 부쩍 빠지고 많이 아팠어. 살던 대로 살지 않아서 병이 난 거야.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어떻게 됐을 것 같아? 사람도 토끼도 살던 대로 살아야지. 안 그럼 병나, 안 그럼 아파. 그러니 너도 토끼처럼 그렇게 살아. 너답게 말이야.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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