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 키우는 일이 힘들어 고민이라고 말하면, 열에 일곱은 꼭 이런 대답을 한다.
“너희 집 애들 지금 미운 네 살이라 그래.”
‘일 더 하기 일은 귀요미’같이 네 살 하면 당연히 ‘밉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붙는다. 나도 이 말에 익숙해졌는지, 나도 모르게 ‘미운 네 살이라 그런지 요즘 정말 힘들다’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그러다 언젠가 지인에게 “애들 들을라. 미운 나이가 세상에 어딨나. 어른 말 좀 안 듣기 시작했다고 미운 나이라 하는 거 좀 별로야”라는 얘기를 들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내게 ‘미운 네 살 키우느라 고생이 많다’ 하는데, 이 사람만은 내게 ‘미운 네 살’이라는 말 좀 안 쓰면 안 되냐고 말하다니.
그래서 ‘미운 네 살’이란 말을 곰곰이 곱씹어봤다. 네 살은 어떤 나이인가. 자아가 커져 고집이 세진다. 말은 느는데 논리가 없어 속수무책이다. 위험하든 말든 엄마 속이 타들어 가든 말든 찻길에 뛰어들고 싶으면 뛰어들어야 하고, 물가가 있으면 몸을 던져 적셔야 직성이 풀린다.
“밥 먹어” 하면 “안 먹어”, “이 옷 입자”면 “안 입을 거야”라고 말대꾸부터 한다. 집에서든 어디에서든 쿵쿵 뛰고 소리 질러야 신이 나고, “하지 마!” 혼내면 삐져서는 눈물로 투쟁한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에 내 뜻대로 안 되는 네 살 아이들까지 달래가며 살아야 하니 부모 진이 쏙 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이 시기를 함께 지나는 사람들끼리, 혹은 그 시기를 먼저 지난 사람들과 함께 ‘미운 네 살’을 데리고 사는 게,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위로하고 다독인다.
그런데 그 육아를 위로하는 말의 그릇이 가끔은 험하다. 아이가 18개월이 되면 "‘18' 소리(굳이 음을 따라 적진 않겠다) 절로 나오는 18개월"이라고 말하고, 네 살이 되면 ‘미운 네 살’이라고 말한다. 요즘은 '미운 네 살'이 아니라 '미친 네 살'이라고도 한단다. 일곱 살이 정말 정점인데 ‘죽이고 싶은 일곱 살’이라는 표현이 실제로 있다. 18개월과 일곱 살에 비하면 미운 네 살이란 말은 오히려 양반이다 싶을 정도다.
하지만 아이들의 고집이 세지는 것도, 말대꾸하는 것도, 여기저기 활동반경이 늘어난다는 것도 모두 아이가 잘 크고 있다는 증거 아닌가. 부모는 좀 힘들지만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자연스러운 성장과 발달을 ‘밉다’라느니, ‘18 소리 나온다’느니, ‘죽이고 싶다’느니 하는 건 좀 너무하다.
앞으로 나는 ‘미운 네 살’이란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이다. 아이들 18개월 때도 ‘마의 18개월’이란 말까지는 했어도 "‘18' 소리 나는 18개월"이란 말은 안 했듯이, 아이들이 일곱 살이 되어서 정말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죽이고 싶은 일곱 살’이란 말은 입밖에도 꺼내지 않을 거다.
뭔가 말로서 육아에 지친 나를 다스리거나, 혹은 그런 상태의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면 다른 말을 좀 생각해보자. 천방지축 네 살. 장난기 가득한 네 살. 정도로 한다면 어떨까? 작위적으로 느껴진다면 더 자연스러운 말을 고민해봐도 좋겠다. 내 말 그릇에 내 아이가 담긴다. 나는 오늘 어떤 말 그릇에 우리 아이들을 담았을까?
*전아름 기자는 35개월 남자 쌍둥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육아와 일상과 엄마와 아빠의 고민을 함께 풀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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