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돌도 많은 섬, 제주도. 제주 땅의 척박함만큼, 한국에서 발달장애 아동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또한 척박하다. 자녀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고자 옥답을 가꾸듯 투쟁하는 부모들이 제주에 있다. 발달장애·발달지연아동 부모모임 ‘제주아이 특별한아이’를 만나 조금 느릴 뿐인 아이들과 함께하는 가족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우리 사회는 어느 방향으로 변화해야 할지 모색했다. - 기자 말
"아빠가 보고 싶어요!"
제주로 출장 온 지 5일차. 휴대폰 속 딸아이의 수줍은 고백에 가슴 한편이 뭉클합니다. 그날 제주 밤바다는 왜 그리도 일렁이는지... 괜스레 손하트를 내밀었습니다. 아빠가 보고 싶은 아이가 미주알고주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보통 가족의 평범한 일상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보통날이 오랜 희망이 된 가족들도 있습니다. 이 글은 발달장애아 가족의 특별한 일상을 담은 사진 이야기입니다.
발달장애는 선천적으로 또는 발육 과정 중 생긴 대뇌 손상 때문에 지능 및 운동 발달 장애, 언어 발달 장애, 시각, 청각 등의 특수 감각 기능 장애, 기타 학습장애 등이 발생한 상태를 말합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초기 발달과정에서 비슷한 증상을 보여도 장애가 있다고 쉽게 단정 하지 못합니다. 제주에서 만난 엄마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말과 행동이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조금 지연될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병원에서 발달장애 판정을 받아도 아이와의 상호작용이 좋은 날이면 '혹시 괜찮은 게 아닐까'란 생각도 합니다. 숱한 고민이 밤새 쌓이고 또 무너지길 반복합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털어놨습니다.
무엇보다 아이의 장애 이유가 자신에게 있다고 자책합니다. '내가 너무 흔들어서 그런 게 아닐까?', '임신했을 때 먹은 것 때문에?', '아기 때 너무 안 돌아다녀서 그런가?' 취재 중에 만난 한 어머니는 아이가 태어나고 지금껏 '맘마'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며 모든 결과를 자신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하지만 이유가 어떻든 엄마는 자책할 시간도 없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아이의 손과 발이 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공부방에 쌓인 발달장애 관련 책들과 관련 강좌에 참석한 엄마의 빼곡한 노트가 간절한 심정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이들 가족에게 다가서기가 더 조심스러웠습니다. 특히, 아이들에게 기자의 정돈되지 못한 말과 낯선 카메라가 상처가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재활 힐링 승마체험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이 모든 걱정은 쓸데없는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들은 여느 아이들처럼 오래 앉아있는 것을 지루해 했고 자신의 모습이 나오는 카메라에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반응했습니다. 본격적인 승마 체험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제 몸집보다 거대한 말에 놀라 울음을 터뜨리는가 하면, 처음으로 말을 탄다는 설렘에 눈과 입이 동그래지기도 했습니다. 그날 하루 말과 교감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아이들은 그냥 아이다웠습니다.
호진이와 건하의 하루를 동행취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른 아침에 때 쓰며 일어나기, 억지로 아침 먹기, 모든 것에 궁금해하기, 그리고 엄마를 힘들게 하는 학교 가기 싫어하기. 6살, 9살 남자아이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큰 카메라와 낯선 아저씨를 경계하던 아이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서툴게나마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언어 치료를 마친 호진이는 장난감 화분을 들어 보이며 "호진이 향기"라고 소개했습니다. 엄마를 똑닮은 건하는 비 그친 날 운동화 대신 파란 장화를 신고서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비로소 마음을 열어준 그 순간이 어찌나 고맙던지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이 가벼워졌습니다. 물론, 언어 능력과 돌발행동은 보통의 아이들과는 조금 다릅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르듯이(심지어 쌍둥이도) 이 아이들도 다를 뿐입니다. 오히려 풍부한 감수성과 고도의 집중력을 지닌 호진이와 건하는 보통의 아이들보다 특별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제주아이 특별한아이'란 모임명이 만들어졌는지 모릅니다.
취재 일정의 마지막은 발달장애·발달지연 아동 부모 모임 '제주아이 특별한아이'의 집담회였습니다. '제주아이 특별한아이'는 발달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들이 모여 관련 정보와 마음을 나누는 자조 모임입니다. 이날, 테이블에 둘러앉은 엄마들은 저마다의 사연에 공감했습니다.
2시간 넘게 진행된 집담회 동안 엄마들은 세상이 장애아를 대하는 웃픈(웃기면서도 슬프다) 현실에 분개하고 모질었던 지난날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물론 앞으로를 위한 미소도 잃지 않았습니다. 발달장애아 부모는 자녀의 일생을 평생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고 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개선되고 꼭 필요한 정책들이 실현돼 이들의 부담감이 조금이나마 덜어진다면, 호진이와 건하처럼 제주의 특별한 우리 아이들이 더 향기 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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