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김재희 기자】
2011년 교내 체벌 금지를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마련됐다. 학교 다음은 가정이다. 아동이 있는 곳이라면 '훈육'을 목적으로 한 체벌은 존재해온 만큼, 가정에서도 체벌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부모가 아동을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잇따라 일어나면서, ‘훈육과 체벌을 이유로 아동 폭력을 용인하는 것이 마땅한가’를 두고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박주민, 신현영,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공동 주최한 ‘민법 915조 국회 토론회’가 있었다. 민법 제915조에서 명시하고 있는 친권자의 자녀 징계권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두고 각계가 의견을 보탰다.
헌법은 아동 또한 기본권의 주체로 보고 있다. 하지만 민법은 친권과 친권의 효력으로 징계권 규정을 두고 있다. 민법 제915조는 징계권 규정을 밝힌 조항으로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고 법원의 허가를 얻어 감화 또는 교정기관에 위탁할 수 있다”는 구문이다. 이 내용은 1958년 민법 제정 당시 그대로 유지돼왔다.
그러다 지난해 5월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면서 ‘아동의 법적 지위 강화’를 도모하고자 “‘징계권’ 용어 변경 및 한계 설정, 징계권의 범위에서 체벌을 제외하는 등 한계를 설정하는 방안 검토”를 제시했다. 같은 해 10월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5‧6차 심의 결과 최종견해를 발표하면서 “모든 체벌을 명시적으로 금지할 것”을 권고했다. 21대 국회에서 총 네 건의 관련 법안이 계류돼있다.
◇ “국제인권규범은 훈육적 체벌도 금지한다”
이날 토론회는 징계권 규정을 삭제하자는 쪽으로 다수의 의견이 모아졌다. '판례와 국제인권규범에 비추어 본 민법 징계권 개정방향’을 주제로 발제를 진행한 강정은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국제기구의 권고와 국내법의 법조항들이 체벌 금지를 방향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는 “‘아동복지법’은 선언적 규정으로 체벌 금지를 명문화하고 있지만 이를 위반할 경우 강제할 벌칙이나 과태료 조항이 없어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아동복지법을 비롯해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도 아동학대를 금지하고 있지만, 징계 혹은 체벌을 제재할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
징계권 개정 논의 중에는 “필요한 훈육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넣자는 의견도 존재한다. 현재 국회 계류 법안 중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안과 황보승희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안이 이에 속한다. 강 변호사는 “국제인권규범은 일관되게 ‘훈육적’ 형태의 체벌‧폭력‧처벌을 금지하고 이를 허용하는 관련 규정을 삭제하라고 권고한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민법 제915조는 전부 삭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징계권을 삭제하려는 입법 취지는 징계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모든 형태의 폭력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자는 데에 있다”며 “아동에게 행사하는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은 징계권 삭제 입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밝혔다.
“아동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주체”라고 강조한 강 변호사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육자는 아동 최상의 이익을 실천하는 이행의무자일 뿐, 권한행사자가 아니”라며,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아동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체벌 금지 입법한 국가, 국민인식 전환 계기 마련”
2020년 현재 총 60개국이 부모의 자녀에 대한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부모의 자녀 체벌 금지 관련 독일, 일본, 뉴질랜드 입법례’를 주제로 발제한 김명수 국회도서관 법률정보실 전문경력관은 독일, 일본, 뉴질랜드 등에서 체벌을 금지하는 법 개정이 계기가 돼 사회 전반에 체벌에 대한 인식 전환이 있었다는 점을 소개했다.
독일은 2000년 ‘양육시 폭력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키면서 “체벌을 비롯해 심리적 상처 및 그밖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조치를 금지한다”는 규정을 뒀다. 법률 개정을 기점으로 사회적 인식도 변화했다. 2011년 16~40세 9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52%가 어린 시절에 체벌을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중 16세에서 20세 사이 응답자는 63%가 체벌을 받지 않았다고 답했다.
일본은 아동체벌 전면 금지를 59번째로 선언하고 해당 법안을 올해 4월부터 시행했다. 후생노동성은 ‘체벌 등에 의하지 않는 양육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체벌하지 않는 양육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김명수 전문경력관은 “우리 나라도 사회 전반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고 (아동 체벌 금지 방향으로) 발 빠르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국가가 부모의 양육‧교육권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에 “훈육방식을 선택할 권리보다 비폭력적 양육을 받을 권리를 아동에게 인정하려는 토대를 마련하려는 것”이라며 “부모의 양육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김재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교수는 미국소아청소년과학회의 정책성명서를 인용해, 훈육과 체벌이 아동 행동 통제에 효과가 없다는 점을 설명했다.
김 교수는 부모 체벌 관련 연구 결과를 종합해 ▲18개월 미만 아동에서는 체벌이 신체 손상 위험을 증가시킴 ▲반복 체벌의 아동의 공격 행동 증가 ▲아동기의 도덕관념 내재화와 자존감에 부정적인 영향 ▲청소년기와 성인기의 반항과 공격 행동, 알코올‧약물 남용 등 문제 위험 증대 등으로 정리했다.
특히 “체벌은 학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한 김 교수는 “아이에게 책임감과 자기 조절 능력을 학습시키는 대신 수치심과 모멸감을 안겨주고 공격성과 분노를 유발하는 데 그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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