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김정아 기자】
"아이들은 본인들이 선택하지 않은 일 때문에 평생을 고통 받으며 살고 있어요. 피해자는 있는데, 어떻게 책임져주는 어른은 하나도 없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준석 군의 어머니 추준영 씨의 말이다. 추 씨는 지난 6월 17일부터 매주 월, 수, 금요일 오전 8~10시까지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박준석 군은 돌 전부터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고, 만 1세였던 지난 2009년 3월, 폐가 터졌다. 현재 준석 군의 폐는 정상인의 50% 정도 밖에 기능을 못하기 때문에 일상적인 생활에 큰 여러움을 겪으며 살고 있다. 10년도 훌쩍 넘은 사건에도 준석 군의 어머니가 1인 시위를 새롭게 시작한 이유는 뭘까. 지난달 31일, 1인 시위 현장에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 "폐가 터졌는데 폐손상 정도가 4단계라니…"
-1인 시위를 하고 계신 이유가 궁금하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이하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이 통과됐고 오는 9월 25일부터 그 시행령이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은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법이다. 그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오게 됐다.
또한, 지난 1~4차 가습기살균제 환경노출조사에서 인정을 받은 국가 인정자들에 대한 전수 조사, 특검 등을 요구하기 위해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준석 군은 폐 손상 정도가 '4단계'라고 들었다. 그 기준이 무엇인가?
"4단계라는 얘기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질환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판단을 받은 것이다. 그 이유를 환경부 관계자들에게 물었더니 '양상이 틀려서요'라는 답변을 받았다. 바로 초기 인정 받은 7명의 가습기살균제 피해 산모들과 피해 양상이 다르다는게 이유란 얘기다.
코로나19만 봐도 알지 않나. 누구는 하얗게 폐가 굳어져도 아무 증상이 없다가 급격히 나빠지기도 하고, 누구는 바로 발열, 기침 등이 나타난다. 또 누구는 아무런 증상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폐가 터졌는데도 4단계일 수 있나."
(지난 3월 통과된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으로 폐질환 1~4단계의 구분이 폐지되고, 다른 질병과 같이 '인정'과 '불인정'으로만 나눠 피해 인정의 폭이 넓어졌다. 하지만, 기존 1~3단계의 폐질환 환자 경우 피해자로 자동 인정받지만, 4단계의 경우 재심사를 신청해야 한다.)
-준석이의 증상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이라고 주장하시는 이유는?
"우선 병원에서 '준석이는 가습기살균제 때문인 것 같다'는 의료진의 이야기를 듣고 2016년 4차 피해 사례 접수 때 신청을 하게 됐다.
2007년 9월생인 준석이가 가습기 살균제를 처음 사용한 건 2008년 8월말부터였다. 현재 대학교 1학년인 조카가 어릴 때부터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고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육아박람회나 심지어 주유소에서도 사은품으로 가습기살균제를 흔히 나눠주던 때였다. '가습기살균제 안 쓰는 부모도 있어요?' 소리를 들을 만큼, 영유아를 키우는 집에서는 흔하게 사용했다.
그런데,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준석이에게 아토피 증상이 나타났다. 당시 병원에서는 계절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그 후 돌 무렵부터 모세기관지염, 인후염 등을 달고 살았고, 감기 증상이 심하게 나타나면 가습기살균제를 조금 더 넣어서 가습기를 튼 뒤 아이 코에 대주기도 했다.
그렇게 병치레를 계속 이어가다 다섯 번째 입원을 했을 때 폐가 터졌다. 그 후 스물 두번 더 입원을 반복했다. 현재는 정상인의 절반도 안되는 폐 기능으로 살아가고 있다."
◇ 부모가 가해자인가…책임은 누가지나요?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클 것 같은데 현재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
"작년 9월, SBS '영재발굴단'에 준석이가 나왔다. 그 방송을 보신 분이라면 준석이의 생활 모습을 기억하고 계실 거다. 1살 때부터 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는 숨쉴 때 시원하다, 답답하다 그런 느낌을 모른다. 체육시간을 가장 힘들어 한다.
그런데, 가장 힘든건 몸이 힘든 것보다 또래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체육 시간에 '네가 왜 우리 조야. 너 때문에 졌잖아' 같은 또래의 시선이 가장 마음이 아프다. 그렇다보니 아이들하고도 같이 노는게 재밌지 않고, 혼자 책을 많이 읽으면서 영재발굴단에도 나가게 됐다."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님도 무척 힘드실 것 같은데…
"얼마전에는 관계 공무원으로부터 '그 정도 해줬으면 되는거 아니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아이들은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일로 피해를 당했다. 그런데, 책임을 져주는 어른이 하나도 없다. 가해기업도 정부도 책임을 져주지 않는다면 부모가 가해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두 아이가 모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인 이광희 씨는 가습기살균제의 유해성을 스스로 입증해보이겠다면서 최근 3개월 째 가습기살균제를 일부러 쓰고 있다.
이렇듯, 정부가 승인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아이를 두고 있는 부모들은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삶이 황폐해졌다. 사회적 약자라는 꼬리표도 붙었다. 우리 아이들이 억울하지 않게 나라가 지켜줘야하지 않나. 아이들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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