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모르는 이웃들의 삶에도 소리가 있구나.’
소리의 부재에서 성장한 농인 부부는 ‘층간소음’이란 것을 몰랐다. 그러나 소리를 알아가는 아이, 예준이가 태어난 후에야 비로소 층간소음을 알게 됐다. 층간소음은 우리에게 아주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느꼈다.
조리원에서 퇴소하던 날, 집에 들어서자마자 예준이가 우렁차게 울기 시작했다. 아이를 안고 쩔쩔매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웃집에서 민원을 넣으면 어쩌지?'
이런 생각도 옛날엔 해본 적 없는데…. 이 아이가 우리에게 소리를 알려주며 큰 변화를 안겨다 주었다.
아이 울음소리 때문에 이웃집에서 불편해할까 매일같이 마음 졸이며 살았다. 그런데 그 어떤 집에서도 민원을 제기하지 않았다. 아기 울음소리가 밤낮으로 들려왔을 텐데, 갓난아기가 집에 적응하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이해해 주신 이웃들께 무척 감사했다.
그런데, 아이가 크고 나니 집에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소음방지 매트는 이미 여러 곳에 깔아놓았는데, 매트만으론 소음을 막을 수가 없었던 모양인지, 결국 아랫집에서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퇴근길 돌봄 선생님께 들었다.
난감해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그동안 우리가 너무 마음 놓고 살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 고민한 끝에 작은 선물을 하나 샀다. 그때 밤낮으로 일교차가 컸던 때라 따뜻한 찻잎 티백 세트를 준비하고, 죄송한 마음을 담은 쪽지도 써서 아랫집에 내려갔다.
차마 벨은 못 누르고, 퇴근하고 돌아오실 시간에 맞춰 선물을 현관문 손잡이에 걸어두었다. 몇 시간 후에 살짝 보니 문고리에 걸어놨던 선물세트가 사라졌다. 잘 받으신 모양이다. 그 후 집에 매트를 더 깔아놓고, 아이에겐 너무 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살다 보니 뉴스에서만 보던 ‘층간소음’을 나도 경험하다니. 남에게 피해 주는 일은 웬만하면 하고 싶지 않았는데…. 무척 조심스러웠다. 살다 보면 소소한 생활소음은 날 수 있지만, 층간소음은 서로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라는 것을 이 일을 통해 깨달았다.
소리를 모르는 나와 남편이 아들 예준이 덕에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새롭게 또 배운다. 배려의 또 다른 방법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지켜야 하는 태도로 공동체를 이해하는 것임을.
*칼럼니스트 이샛별은 경기도농아인협회 미디어접근지원센터에서 농인(=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이는 뉴스를 제작하며, 틈날 때마다 글을 쓴다. 유튜브 ‘달콤살벌 농인부부’ 채널 운영, 다수 매체 인터뷰 출연 등 농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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