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잘 먹으니 훌륭한 사람 되겠다”… 난 그냥 잘 먹는 사람으로 컸다 
“밥 잘 먹으니 훌륭한 사람 되겠다”… 난 그냥 잘 먹는 사람으로 컸다 
  • 전아름 기자
  • 승인 2020.08.05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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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동의 쌍둥이들] 칭찬의 역효과에 대하여

【베이비뉴스 전아름 기자】

나는 잘 먹는 아이였다. 잘 먹는 만큼 뚱뚱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42kg이었다. 왜 이 정확한 숫자를 기억하고 있냐면, 신체검사 하던 날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내 몸무게가 공개됐고, 누구보다 월등히 무거운 내 몸무게에 담임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기 때문이다. 

◇ 나를 소아비만으로 만든 것의 8할은 어른들의 칭찬이다

내가 왜 어렸을 때 그토록 뚱뚱했는가 생각해보니 이게 다 밥 잘 먹어 예쁘다는 어른들의 칭찬 때문이다. ⓒ베이비뉴스
내가 왜 어렸을 때 그토록 뚱뚱했는가 생각해보니 이게 다 밥 잘 먹어 예쁘다는 어른들의 칭찬 때문이다. ⓒ베이비뉴스

소아비만은 성인비만으로도 이어졌다. 살과 전아름과의 전쟁은 끝날 듯 끝나지 않았다. 하여튼 그랬다. 나는 왜 뚱뚱했는가. 내가 거대 우량아로 태어나 그랬는가. 그것은 아니다. 태어났을 때의 나는 3kg이 채 안 되는 작은 아기였다.

부모가 뚱뚱했는가. 그것도 아니었다. 엄마는 오히려 마른 체형으로 그것에 평생 스트레스를 받아온 사람이다. 아빠는 사업과 스트레스의 반복에 거듭된 음주로 배가 나왔을 뿐 뚱뚱한 사람은 결코 아니다. 유전도 아니고, 타고난 기질도 아니라면 그냥 어렸을 때의 전아름이 많이 먹어서 살이 쪘다는 이야기인데, 왜 그렇게 많이 먹었을까.

우리 집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모셨다는 말이 이상하다. 할머니가 우리 삼 남매를 키우고 맞벌이 부모를 대신해 많은 살림을 도맡았고, 아파트 입주할 때 모자란 계약금까지 보탰으니, 모시는 사람이 아니라 중요한 가족의 일원이었다. 그런데 시모와 함께 사는 집이 평화롭기 쉽지 않다. 고부갈등이 잦았다. 분위기가 좋을 리가 없었는데, 식사 시간만큼이면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내가 잘 먹었기 때문이다. 토실토실하고 하얀 여자애가 어른 밥공기에 밥을 가득 담아서 한 숟갈 그득 떠먹는 모습을 보고 어떤 어른이 안 반하는가. 엄마도 밥할 맛이 났을 거고, 먹이는 할머니도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어쩜 이렇게 어린애가 밥을 잘 먹냐며 오가는 칭찬 속에 살벌하던 고부관계도 잠시 온화해졌다. 

그에 반해 두 살 어린 여동생은 밥 시간만 되면 어른들 애를 태웠다. 밥상에만 앉으면 배가 아프다고 칭얼댔다. 밥 안 먹는 어린이를 제일 싫어했던 할머니는 여동생을 더욱 몰아세웠고, 여동생이 밥을 안 먹겠다고 할 때마다 밥상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그럴 때마다 내가 더 열심히 먹었다. 그때 동생은 아주 많이 마른 편이었고, 나는 소아비만이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동생 밥까지 아름이가 다 빼앗아 먹었구나?” 나 놀린다고 한 말이었고,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발끈했지만, 틀린 말이 아니었다. 

어느 해 김장철, 집에서 김치를 잔뜩 담갔다. 배추김치, 총각김치, 깍두기까지 종일 집이 김치공장처럼 돌아갔다. 어른들이 고생해서 만든 김치를 아직 열 살도 안 된 어린이가 우걱우걱 집어 먹으며 맛있다고 손뼉을 치고 온갖 오바와 아양을 떨었다. 

“어쩜 애가 이렇게 김치를 잘 먹니?”

“우리 아름이는 커서 훌륭한 사람 되겠다. 김치도 이렇게 잘 먹고.” 

‘김치를 잘 먹으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도식이 잘 이해되지 않으나, 하여튼 김치만 먹으면 이렇게들 칭찬을 해주시니 신이 난 어린이는 더욱 열심히 김치를 먹어댔다. 마지막 깍두기가 정말 목 끝까지 차올랐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말았다. 

마그마를 쏟아내는 활화산처럼 나는 그간 열심히 먹어온 김치를 모두 토해냈다. 애초에 어린이가 먹기에 너무 강력한 맛이었고, 나는 그것을 너무 많이 먹었다. 왜 그렇게 많이 먹었냐. 어른들이 좋아하니까. 칭찬을 받으니까. 김치를 먹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까.

◇ 칭찬받을 때마다 다음엔 칭찬 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칭찬 받으면 기뻤지만, 다음에는 칭찬 못 받을까봐 늘 두려웠다. 정말 잠시 기뻤고, 오래 두려웠다. 나를 진실되게 기쁘게 했던 것은 나였다. 내가 나를 칭찬할 때. 그때 가장 오래오래 좋았다. ⓒ베이비뉴스
칭찬 받으면 기뻤지만, 다음에는 칭찬 못 받을까봐 늘 두려웠다. 정말 잠시 기뻤고, 오래 두려웠다. 나를 진실되게 기쁘게 했던 것은 나였다. 내가 나를 칭찬할 때. 그때 가장 오래오래 좋았다. ⓒ베이비뉴스

아이들 밥 먹일 때 그 시절 밥상이 자주 떠오른다. 두 녀석 밥 먹일 때 워낙 전쟁이라 그렇다. 잘 먹어주면 참 좋은데, 그렇지 않은 날이 많으니 나도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칭찬이랍시고 한다.

“우와 갈치를 이렇게 잘 먹다니! 정말 대단한걸!"

“이야, 밥을 이렇게 잘 먹다니 정말 멋진걸!”

“우와 이렇게 매운 김치도 먹을 수 있어? 정말 짱이야!”

그 시절, 왜 어른들이 김치 잘 먹고 밥 잘 먹는 나더러 훌륭한 사람 될 수 있다고 했는지 이제 좀 이해가 간다. 

어느 날, 숟가락에 밥과 반찬을 얹어 첫째 삐삐에게 “얼른 먹어~”하며 애원하고 있었다. 삐삐는 입을 꾹 다물고 도리질을 해대며, 엄마와 ‘밀당’이라도 하려는 듯이 실실 웃으며 식탁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었다. 내가 슬슬 화가 올라 “이놈!” 하려던 순간, 둘째 찌찌가 삐삐의 밥숟가락을 제 입에 갖다 넣으며 “엄마 내가 먹어요”라고 했다.

찌찌는 이미 제 몫의 밥을 다 먹은 후였는데, 밥상에서 밥 안 먹고 장난치면 화내는 엄마 모습이 무서웠던 것인지, 아니면 밥을 먹을 때마다 대단한 칭찬을 해주는 엄마 모습이 보고 싶었던 것인지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칭찬도, 역정도 내지 못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즈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유행이었다. 칭찬이야말로 인간을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주문같은 것이라고. 사람들이 아주 오랜 시간 칭찬의 효과를 믿었다. 그런데 요즘 육아 칼럼이나 육아서를 보면 칭찬 함부로 하지 말라고 쓰여있다. 칭찬을 남발하면 칭찬할 때만 움직이는 아이가 되어 버린다고. 

그래, 나는 어떤 칭찬에 움직였던가. 내가 움직일 때 어떤 칭찬을 받았던가. 칭찬을 받았을 때 정말 강한 흥분을 느꼈지만, 그게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진 것 같지는 않다. 도리어 칭찬을 받으려고 위에 서술한 김치 사건처럼 오바를 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다음에 칭찬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 늘 도사렸다.

그렇다면 나를 춤추게 했던, 내게 동기부여가 됐던 것들은 어떤 것들이었나. 공부도, 목표도, 관계도 내가 정한 것을 내가 해냈을 때 진실하게 짜릿했다. 나를 정말 기쁘게 춤추게 했던 것은 다른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오로지 나였다. 그걸 아기 낳고 키우며 새삼스레 느끼고 깨달았다. 

인생은 아직 현재형이니, 깨달은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나를 위해 스스로 춤춘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엄마 칭찬에 하루의 기분과 인생의 목표가 좌지우지되는 아이들이 아닌, 스스로 춤추고 싶을 때 추고, 실컷 춤추고 난 자신에게 열정과 애정을 담은 환호를 마음껏 보낼 수 있는 사람으로 클 수 있도록. 내가 서른다섯이나 되어서야 깨닫게 된 것을, 아이들은 나보다는 좀 더 빨리 알 수 있도록. 그런 사람으로 키우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어쩌나. 우리 둘째 찌찌는 이미 칭찬의 맛을 알아 버린 것 같은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쉬 마려울 때 알아서 바지 내리고, 팬티 내리고, 변기 커버 올리고, 휴지로 꼬치 한 번 닦고, 변기 물 내리고, 비누로 손 닦고, 수건에 손 말리는 일련의 과정을 마치고 나면 내게 다가와 쌍엄지를 쳐들고 “치고 치고(최고 최고)”라며 엄마의 열정적인 칭찬을 기다린다. 그럼 또 그게 귀여워서 나도 같이 “치고 치고”를 하는데…. 칭찬의 균형을 잡는 일도 참 어렵다. 행복하게 곤란해진다. 

*전아름 기자는 36개월 남자 쌍둥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육아와 일상과 엄마와 아빠의 고민을 함께 풀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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