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긴 장마, 며칠째 내린 비로 온 집안이 눅눅하다. 햇빛을 통 못 봐서 그런가? 마음조차 축축하니, 이러다 집 안에도 장맛비가 내릴 것 같다. 덥고 습한 날씨에 입맛까지 잃은 요즘, 가지각색 가지 요리로 기력을 보충해보자.
가지는 여름철 대표적인 보양 채소다. 오이처럼 수분이 많아 땀이 많은 사람, 특히 기초체온이 높은 아이에게 좋다. 비타민 C와 칼륨 역시 풍부해 더위를 이기는 데 도움이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보라색의 안토시아닌 색소는 여느 색보다 강력한 항산화 물질로 면역력 강화에 탁월하다. 더위와 장마에 지쳤다면 가지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채소다.
제아무리 좋은 가지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고, 어릴 때 내가 그랬다. 하얀 접시를 잿빛으로 물들인 가지나물은 비주얼부터 비호감이었다. 게다가 어금니 사이로 물컹거리는 식감과 코끝으로 전해지는 시큼한 향이라니! 상한 음식을 씹는 기분이 들어, 가지는 절대 먹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가지를 안 먹는 아이에게 “가지는 맛있어!”, “가지를 먹으면 말이야”라고 한다면 잘 먹을까? 물론 어떻게든 먹이고 싶은 부모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좋은 방법은 아니다. 아이가 부모 마음처럼 선뜻 먹지도 않을뿐더러, 먹는다 한들 기대한 맛이 아니라면…. 엄마는 거짓말쟁이가 될지도 모른다. 예고편에 속아서 본 영화처럼 말이다.
그동안 식탁에서 먹이기 위한 수단으로 아이와 대화를 시도했다면, 이제는 진짜 ‘이야기가 있는 밥상’을 차려보자. 우선 동화책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로렌 차일드 지음, 조은수 옮김, 국민서관, 2001년)에 나오는 롤라의 오빠 찰리처럼 꾀를 내어보는 거다.
“난 가지 먹기 싫은데….”
아직 가지를 먹을 자신이 없는 아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한다.
“이건 가지가 아니야. 가지일 리가 없지.”
“도깨비 마을에는 가지가 없거든. 만져볼래?”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야기는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호기심은 상상력을 낳는다.
“안녕? 나는 몰캉몰캉 도깨비방망이야.”
먹지 않아도 된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신이 났다.
“도깨비방망이 안에는 뭐가 들었을까? 무슨 색일까?”
똑같은 가지인데, ‘몰캉몰캉 도깨비방망이’로 개명하니 아이가 웃는다. 평범한 것도 특별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이야기가 갖는 힘이다.
◇ 가지 하나만으로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다면, 당장 먹지 않아도 괜찮아
가지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었다면, 이제는 가지와 친해질 차례다. 물컹거렸던 가지가 부드럽게, 바삭하게, 그리고 쫄깃하게 변신을 한다. 우리 아이는 어떤 식감의 가지를 좋아할까?
“몰캉몰캉 도깨비방망이가 변신할 거야.”
“우리 도깨비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보자!”
가지의 첫 번째 변신은 A와 B를 섞는 ‘A+B’ 요리, 우선 가지밥이다. 볶은 가지를 쌀과 함께 밥솥에 넣으면 끝. 양념장을 넣고 쓱쓱 비비면 가지와 밥이 제법 잘 어우러진다. 달걀밥처럼 부드러운 식감이라 아이가 먹기에도 좋다.
두 번째 변신은 A에 B를 녹인 ‘AB’ 요리, 가지고기튀김이다. 먼저 어슷하게 썬 가지에 칼집을 넣고 다진 고기를 꼭꼭 끼워 넣는다. 그다음 튀김가루, 달걀, 빵가루 순으로 옷을 입혀 튀기면, 그야말로 ‘겉바속촉!’ 가지의 바삭함 뒤에 느껴지는 고기의 촉촉함이 일품이다.
가지의 마지막 변신은 A와 B가 만나 새롭게 태어난 ‘C’ 요리, 이름도 생소한 라따뚜이다. 라따뚜이는 본래 프랑스 가정식으로 소박한 채소 스튜다. 영화 ‘라따뚜이’에서는 절대 미각인 생쥐 레미가 고급요리로 재해석한다. 둥글게 썬 가지, 호박, 토마토가 켜켜이 쌓여 그럴싸한 요리로 탄생 되니, 무표정한 음식 평론가가 활짝 웃는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그럼 온 가족의 입맛을 사로잡을 ‘라따뚜이’를 영화 버전으로 만들어보자.
◇ 재료 : 가지 1개, 애호박 1개, 토마토 2개, 시판용 스파게티 소스 200ml, 양파 1/2개, 소금, 후추, 올리브유, (파마산 치즈)
하나, 잘게 다진 양파를 기름에 볶는다. 양파가 투명해지면 시판용 스파게티 소스를 넣고 끓인다.
둘, 오븐용 그릇(지름 20cm 이상) 바닥에 소스를 깔고 둥글게 썬 가지, 애호박, 토마토를 번갈아 가며 쌓는다.
셋, 소금 한 꼬집과 후추를 뿌린 후 올리브 오일을 두어 바퀴 두른다. 파마산 치즈를 얹으면 깊은 맛이 더해진다.
넷, 200℃ 예열한 오븐에 30분 구워 완성한다.
맛있는 ‘작품’을 위한 가족의 콜라보레이션. 엄마는 채소를 ‘탁탁탁’, 아빠는 소스를 ‘지글지글’, 아이는 빨간색 토마토, 초록색 애호박, 보라색 가지로 패턴을 만든다. 오븐이 가동되면 비 때문에 꿉꿉했던 집안이 피자 냄새로 가득 찬다.
“도깨비방망이가 어떻게 변신했을까?”
“어떤 맛일까?”
구운 채소의 달큰함과 토마토소스의 감칠맛, 여기에 쫄깃한 식감까지 더해져 제법 맛있다. 물론 아이는 여전히 먹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늘 말하듯 지금 먹지 않아도 괜찮다. 하하호호깔깔 가족이 함께한 ‘이야기가 있는 밥상’은 분명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테니 말이다. 영화 ‘라따뚜이’에 나오는 음식 평론가처럼 말이다.
*칼럼니스트 신혜원은 다양한 현장에서 20여 년간 영양사로 일했으며, 현재는 수원여자대학교 식품영양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영양 전문가로 편식하는 아이와 부모를 만나면 나름의 고충이 보인다. 먹는 것보다 스마트폰이 재미있는 아이, 스마트폰을 보여주면서라도 먹이고 싶은 부모, 밥 먹는 것이 그야말로 전쟁이다. 당장 한 입 먹이기 위한 노력보다는 먹는 것이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자. ‘열두 가지 채소 이야기’와 함께 가랑비에 옷 젖듯이 조금씩, 서서히, 그리고 즐겁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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