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애들은 성격이 무던하잖아. 엄청나게 맞았거든. 내성이 생겨서 어지간한 일에는 눈도 끔쩍 안 해.”
20년 전 대학 후배가 내 성격에 대해 '매 없이 곱게(?) 커서 작은 일에도 예민하다’라며 한 말이다. 솔직히 그땐 이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을까?
세이브더칠드런을 포함한 몇몇 아동 단체들은 친권자가 자녀를 징계할 수 있다는 민법 제915조,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라는, 일명 '징계권'의 규정이 체벌을 합법화하는 근거로 활용되지 않도록 징계권 조항 삭제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최근 이슈가 된 극단적인 아동학대 사건들이 가정 내에서 훈육의 이름으로 행해진 신체적, 정신적 체벌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국제 아동구호 기관에 10년째 몸담은 나로서는 여러 아동학대 사건들을 볼 때마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살 수 있을지 고민이 더욱 깊어진다. 그렇기에 징계권 삭제를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하지만 일부 부모들 사이에서는 징계권이 사라지면, 아이가 올바르게 잘 자라도록 훈육할 부모의 권리 또는 의무가 침해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다 너 잘되라고 때린 거야”라는, 아이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때린다는, 하도 많이 들어서 의심조차 않고 믿었던 그 말에서 나는, 재미있는 오류를 발견했다.
◇ 아이 가르친다고 때리면, 교육은 간데없고 공포만 남는다
첫 번째 오류는 ‘체벌을 자녀에 대한 양육자의 권리’라고 인지한다는 것이다. 사실 체벌은 서로 존중하는 관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실수했다고 해서 옆집 아이를, 혹은 직장 동료나 후배, 친한 친구를 때리지 않는다. 이렇게 타인에게조차 감히 옳고 정당한 권리라고 적용할 수 없는 체벌을 내가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자녀에게 행한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두 번째 오류는 체벌이 자녀가 올바르게 자라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아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다가 지나가는 오토바이에 부딪힐 뻔했다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때 예상할 수 있는 부모의 반응은 무엇일까?
하나. 아이의 등을 힘껏 때리며 “조심하라고 그랬지!”라고 잔소리하며, 아이가 오늘 일을 잊지 않고 다음번에는 조심성을 갖길 바란다.
둘. 우선 놀란 아이를 다독인다. 그리고 오토바이와 자동차 등 길에서 조심해야 할 것을 이야기해주며 조심성 있게 걷는 방법을 가르친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는 첫 번째 반응을 보일 것이다. 한편 우리의 자녀들은 어떨까? 멀리 찾지 않아도 내 딸이라면, 평소 할 말은 할 줄 아는 씩씩한 이 아이는 대놓고 내게 “엄마, 도대체 언제 조심하라고 말했는데? 엄마한테 맞느니 차라리 오토바이에 부딪히는 게 훨씬 덜 아프겠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준수하다. 마음이 여린 아이라면, 본인의 실수가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친 것 같아 놀랐음에도 놀랐다는 표현을 못 하거나 오히려 주눅이 들어 혼자 끙끙 앓기도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놀랐다는 것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인데, 아이를 때리면 길 조심 등의 교훈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체벌만 남는다. 이러면 아이는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부모의 눈치를 보는, 그야말로 '삼천포 미궁' 속으로 빠지고 만다.
◇ 부모-자녀 신뢰 깨지는데 어떻게 아이가 잘 자라나
징계권 삭제를 반대하는 사람 중 일부는 엉덩이나 등을 살짝 내려치는 것, 딱밤이나 아이와 합의한 매 등 어느 정도의 적정선을 지킨 체벌은 허용해도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 얄팍한 기준에 대한 논의는 다음으로 넘기더라도 결론적으로 체벌은 안 하는 것이 맞다. 의도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체벌은 자녀의 몸과 감정을 상하게 하고, 상한 감정은 부정적 행동(아이의 반항적 행동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겠다)으로 드러날 수 있다.
자녀가 반항적 행동을 보이면 부모는 이를 바로잡아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발동해 ‘기선제압’이라는 기술에 들어가게 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된다면 결국 부모와 자녀는 회복할 수 없는 최악의 관계에 놓이게 되고 신뢰가 깨질 수밖에 없다. 부모와 자녀 간의 신뢰 관계가 깨졌는데 자녀가 올바르게 자라길 바란다는 것은 너무 큰 비약과 욕심이 아닐까.
이 시대를 사는 어른들이 체벌에 대한 잘못된 기대를 버리고 아동 체벌 근절에 동참해 준다면 우리의 자녀는 더 안전하고 평안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잘 가르치려고, 훈육하려고 때렸다”는 부모로부터 학대받는 아이들, 사망의 위험에 놓인 아이들도 보호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보고 싶다.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대학 후배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맞아서 잘 자란 게 아니다. 그때 맞지 않고 자랐더라면 지금 우리는 좀 더 따뜻하고 좋은 관계를 맺는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자녀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때린다는 명제 사이에 나 자신을 스스로 가두지 말자. 아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만큼 아이를 사랑해주고, 나 자신이 아이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고민하고 배우는 것에 열정과 에너지를 쏟을 때라고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칼럼니스트 이수경은 두 자녀를 둔 워킹맘이다. 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한 후 복지관에서 근무했고 2010년부터 국제 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아동의 권리를 위해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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