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에 손님이 없어서 가능한 상상들
책방에 손님이 없어서 가능한 상상들
  • 칼럼니스트 오윤희
  • 승인 2020.08.2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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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지기 엄마의 그림책 이야기] 그림책에서 코로나19 이겨낼 지혜를 얻어보자

지난 20일 저녁,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 소식을 들었다.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재확산되던 때, 조바심을 안고 조심스레 책방 행사를 운영해왔지만, 이제 그마저도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고야 말았다. 21일 북 토크 행사에 쓸 음향 설비를 대여하고 온 직후라 그 허탈함이 더 컸다.

정직원을 두 명이나 둔 대표이기에 어깨가 더 무거워진 요즘, 앞으로 매출은 어떻게 되려나 고민이 깊어졌다. 이 와중에 어린이집 휴원 소식까지 왔다. 열대야로 잠 못 드는 밤, 나의 고민은 보름달만큼이나 부풀어 이내 터지기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다행히도 나는 MBTI 중 INFP형! 몽상가 기질이 다분하고, 매사 긍정적인 스타일이다. 이 위기는 나만 겪는 게 아닐 테니, 슬기롭고 현명하게 코로나19 시대를 이겨낼 나만의 특단 조치를 취해보자. 이름하여, 코로나19를 이겨내는 책방 엄마의 지혜!

◇ 과연 누가 코로나19 상황을 만든, 가장 큰 죄인인가?

"누가 가장 큰 죄를 지었나? 힘센 사자인가, 보잘것없는 당나귀인가?" ⓒ한울림어린이
"누가 가장 큰 죄를 지었나? 힘센 사자인가, 보잘것없는 당나귀인가?" ⓒ한울림어린이

우선, 혼란과 위기가 가득한 이 사회의 문제를 짚어줄 만한 그림책을 꺼낸다. 이 전 지구적 위기를 대체 누가 시작한 거지? 가장 큰 죄를 지은 사람은 누구지? 사회를 들썩이게 만든 종교 지도자? 광복절 집회 주도자가 가장 큰 죄를 지었나? 먼저 나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했다는 이 바이러스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도 불분명하다. 

‘죄지은 자’를 명확히 짚어내기 어려운 시대, 이럴 때일수록 옛 지혜와 도움이 절실하다. 동물을 주인공 삼아 세상의 모순을 날카롭게 꼬집은 우화 「누가 가장 큰 죄를 지었나?」(장 드 라 퐁텐 글, 올리비에 모렐 그림, 김현아 옮김, 한울림어린이, 2018)를 함께 읽어보자.

독일 국제아동청소년도서관에서 예술성과 문학성이 뛰어난 책에 선사하는 ‘화이트 레이븐스’ 2014년 선정작 「누가 가장 큰 죄를 지었나?」는 흑사병으로 마비됐던 세상의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이다. 하루아침에 지옥이 된 세상에서 많은 동물이 목숨을 잃고, 하늘의 노여움을 달래려 가장 큰 죄를 지은 동물을 제물로 바치기로 한다.

저자인 장 드 라 퐁텐(Jean de la Fontaine)은 17세기 프랑스 출신 동화 작가로, 동물을 사람처럼 표현하며 세상의 모순을 풍자하고 비판한 작가로 유명하다. 많은 지성인들에게 영향을 주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분노한 하늘이 죄 많은 세상을 벌주려고 무시무시한 흑사병을 퍼뜨렸다.

가장 큰 죄를 지은 자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 그렇다면 누가 가장 큰 죄를 지었나?

힘센 사자인가, 보잘것없는 당나귀인가? -책 소개 중에서

흑사병이 도사린 혼란스러운 세상. 과연 누가 하늘의 노여움을 풀 제물이 됐을까? 이 책은 쉽사리 공감하고 편히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처럼 동물들이 살아가는 사회도 부조리하고 불공정함이 만연하다. 강자가 목소리를 내면 권력이 되고, 제 목소리를 못 내는 약자는 정의를 구현하지 못하고 현실에 순응하며 사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앞서 얘기했듯 코로나19는 정확한 원인도 알 수 없고, 이 사태에 누가 가장 큰 죄를 지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누가 가장 큰 죄를 지었나?」를 권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아이들에게 옳고 그른 것을 가릴 줄 아는 판단력과 현실에 맞서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 올바른 사고를 일깨우는 책 「누가 가장 큰 죄를 지었나?」 이 책을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추천한다. 

◇ 코로나19로 줄줄이 폐업하는 동네 책방 소식에 꺼내든 책

"책방이 사라졌는데, 안경이 무슨 소용이에요!" ⓒ찰리북
"책방이 사라졌는데, 안경이 무슨 소용이에요!" ⓒ찰리북

코로나19를 이겨낼 수 있는 그림책을 소개했으니, 이제 코로나19 때문에 어린이 친구들의 발길이 끊긴 쓸쓸한 책방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최근 서적 도매 업체 2위 송인서적이 법원 회생절차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이어 줄줄이 동네 책방 폐업 소식이 들려온다. 문 연 지 이제 130일 지난 우리 책방에도 어린이 친구들의 발길이 드물어졌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하는 게 맞겠다.

불과 2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친구들과 인사하기 바빴는데, 이제는 폐업까지 고민해야 하나 싶으니…. 전국에 있는 책방지기의 고민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다. 이러다 책방이 사라지는 건 아닌지, 못된 상상까지 하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책방이 사라졌다!」(케이티 클랩햄 글, 커스티 뷰티맨 그림, 박원영 옮김, 찰리북, 2019)를 꺼내 들었다.

「책방이 사라졌다!」를 쓴 케이티 클랩햄은 실제 책방을 운영하는 책방지기다. 2010년부터 영국에서 어머니와 함께 독립 책방 ‘스토리텔러스(Storytellers, Inc.)’를 운영 중이다. 이 책은 그녀의 첫 번째 그림책으로 2019년 영국 북 트러스트(Book Trust, 영국의 유력 독서 단체. 영국문화예술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좋은 어린이 문학을 선정해 보급한다-편집자 주)가 선정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읽을 책이 없는데, 안경은 무슨 소용일까요? 민티 책방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소중한 책방을 잃지 않으려는 한 소녀의 눈물겨운 분투기 – 책 소개 중에서

「책방이 사라졌다!」는 책방이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소녀와 책방지기 할머니의 사랑스러운 일상을 가득 담은 책이다. 책을 사랑하는 소녀 밀리와, ‘민티 책방’의 주인 민티 할머니의 우정을 그렸다. 

어느 날, 밀리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진 민티 할머니와 민티 책방. 과연 밀리는 민티 할머니와 책방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결론만 살짝 얘기하자면, 밀리와 민티 할머니는 다시 만나 책방을 연다. 자세한 이야기는 「책방이 사라졌다!」에서 직접 만나보자.

◇ 마스크 없이 책방에서 웃으며 다시 만날 날 기다리며 

서점이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곳. ⓒ온다
서점이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곳. ⓒ온다

책방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해피엔딩의 그림책도 좋지만, 요즘 나는 혼자 책방에 나와 ‘이런 책방은 어떨까?’라는 몽상과 상상을 하곤 한다. 이게 다 손님이 없어서겠지만…. 바꿔 생각해 본다면, 모처럼 여유가 생겼으니 가능한 일이다.

나는 찬찬히 책방에서 하고 싶은 것들, 이루고 싶은 꿈들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이런 나의 꿈을 응원하는 책 「있으려나 서점」(요시타케 신스케 글과 그림, 고향옥 옮김, 온다, 2019)을 다시 꺼내 들었다. 이 책은 2013년, 2015년, 2017년 일본 모에(MOE) 그림책 대상 3관왕이자, 2017년 볼로냐 라가치상 특별상을 수상한 작가 요시타케 신스케가 그리고 쓴 책이다. 개인적으로 책방을 열고자 마음을 먹은 이후에 줄곧 꺼내든 책이기도 하다.

‘작가의 나무’ 키우는 법, 달빛 아래에서만 볼 수 있는 책, 독서 이력 수사관, 서점 결혼식, 책이 내리는 마을, 수중 도서관 등 오직 상상에서만 만날 법한 이야기들을 요시타케 신스케 특유의 재치로 풀어낸 유쾌한 책. 수많은 에피소드 중 '서점이란 어떤 곳?'은 코로나19 시대 책방지기인 내게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요시타케 신스케에 따르면, 서점은 이런 곳이다.

1. 서점이란 좋은 책을 전해주기 위해, 좋은 책을 미래에 남기기 위해, 좋은 책이 계속 나오도록, 매일매일 전문가가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곳

2. 희망과 실망과 욕망, 타인의 인생과 본 적이 없는 풍경, 세계의 비밀과 또 하나의 자신 등,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돈으로 살 수 있는 곳

3. 검색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안내해주는 곳

4. 장차 탄생할 명작을 위해 투자하는 곳

5. 새 책이 세상에 처음 자리 잡을 장소를 마련해 주는 곳

6. 책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책에 은혜를 갚기 위해 계속 책에 매달려 있는 곳 - '서점이란 어떤 곳?', 「있으려나 서점」 중에서

서점 그리고 책방. 두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책을 갖추어 놓고 팔거나 사는 가게다. 단순히 ‘책’을 갖추어 놓고 손님을 맞이하는 가게가 아닌, 몸과 마음에 바탕이 되는 씨앗을 심는, 튼튼하고도 탄탄한 마당, ‘책 마당’인 셈이다. 책 마당이 잘 다져지려면, 책도 필요하지만, 책과 같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요시타케 신스케는 ‘책과 같은 사람’이란 무엇인지 이렇게 설명했다.

1. 우리는 책과 같은 존재입니다.

2. 사람은 저마다 스토리가 있지만, 언뜻 봐서는 그 속내를 알 수 없습니다.

3. 늘 누군가가 발견해 주기를 기다리고, 늘 누군가가 안을 들여다봐 주기를 바랍니다.

4. 인기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지만 좋은 만남이 있으면 누군가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줍니다.

5. 좋은 만남이 있으면 누군가와 빛나는 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습니다.

6. 부피가 늘어나고 무거워집니다. 불에 약하고 물에도 약합니다. 금세 빛바래고 구깃구깃해집니다.

7. 물체로서의 한계 수명은 있지만, 그 정신은 이어질 수 있습니다.

8. 그리고 아직은 보이지 않는, 앞으로 나올 새로운 책이 세계를 두껍게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9. 그래서 우리는 책을 좋아하는 겁니다. - '책과 같은 존재', 「있으려나 서점」 중에서

‘코로나19’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책, 사람, 책방이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나날들이 어서 오길. 책방에서 책과 같은 사람들과, 마스크 없이도 정겹게 웃으며 만날 나날들을 기다려 본다. 

*칼럼니스트 오윤희는 생일이 같은 2020년생 아들의 엄마입니다. 서울 도화동에서, 어른과 어린이 모두가 커피와 빵, 책방과 정원에서 행복한 삶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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