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를 빼앗긴 대한민국 아이들. 놀이라는 ‘권리’를 되찾아주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서울시 아동 놀이권 조례 제정을 위한 시민연대’의 연속 특별기고로 놀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 편집자 말
제가 처음 놀이터를 갔을 때 그네를 탔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그네를 탔을 때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아서 배꼽이 간질간질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생각하는 놀이터는 배꼽이 간질간질하는 재밌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입학 후 놀이터는 재미있는 곳이 아닌, 유치원생들이 주로 노는 곳이라고 생각했고, 늘 똑같은 놀이기구는 식상해져서 우리가 놀기에는 너무 유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점점 놀이터와 멀어지던 중, 저희 엄마가 마을 활동을 시작하시면서 다시 놀이터와 가까워지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뭘 하고 놀아야 할지 알 수 없고 어떻게 놀아야 할지도 몰라서 그저 하늘과 땅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색한 놀이와의 첫 만남이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점점 놀이와 친해지면서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놀이를 어른들께 배우며,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스마트폰 게임 말고도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달팽이놀이, 사방치기, 줄넘기를 열심히 배웠습니다.
특히 저는 고무줄놀이를 배울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음악학원 좀 다녀봤다는 저와 친구들이 박자를 못 맞춰 줄에 걸리고, 앞 친구와 부딪히고, 결국은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시는 부모님들의 허탈한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학원비가 꽤 아까우셨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실패함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습니다. 같은 신체활동인 학교 체육 수업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체육과 놀이는 정말 다른 것 같습니다. 체육은 평가의, 평가를 위한, 평가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상당합니다. 하지만 놀이는 다릅니다. 놀이는 누가 평가를 하지도 않고, 오직 즐거움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스트레스가 해소됩니다.
◇ 놀이터와 놀이를 통해 몸도 마음도 성장했습니다
놀이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특히 다른 학교 친구들이나 동생들, 언니 오빠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어렸던 저는 중랑구엔 면목동밖에 없는 줄 알고 있었는데, 놀이를 하면서 중화동, 묵동, 신내동, 상봉동 등 여러 동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돼 더 큰 세상을 만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외동이었던 저는 동생들을 대하는 게 많이 서툴렀기 때문에, 처음에는 저보다 어린 동생들과 어떻게 놀이를 해야 할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놀이를 통해 많은 동생들을 알게 되고 같이 놀이를 하면서 동생들을 어떻게 대해줘야 하는지, 어느 부분을 배려해줘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게 됐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 초등학교 1학년까지도 충분히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내공이 생겼습니다.
저는 이렇게 놀이터와 놀이를 통해 몸도 마음도 많이 성장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제가 중학생이 된 이후, 중학생이 놀이터를 간다는 것에 대한 안 좋은 시선이 부담스러워 놀이터에 가는 것을 꺼리게 됐습니다. 놀이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친구들도 학원에 가느라 놀이터에 올 시간이 없었고, 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여의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놀이터는 우리에게 또 다른 학교였고, 놀이는 보이지 않는 교과서였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 학교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인성교육들을 놀이터와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배운 것들이 학교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평가를 위한 또 다른 과목이 돼버렸습니다. 예를 들어 놀이에서 한발뛰기는 누가 놀래(술래가 아닌 사람)인지에 따라 거리를 가늠해 얼마나 뛸 것인지를 예측해보고, 또 돌아오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일부러 잡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하는 한발뛰기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무조건 잘 해야 하는 과목일 뿐입니다. 놀이는 놀이로만 보존돼야지, 학습의 목적으로 사용되면 원래의 기능이 없어져버리는 것이 아닐까요?
◇ 배꼽이 간질간질한 즐거움을 가진 어른으로 자라길
저희 엄마가 어렸을 때는 놀이는 동네 언니 오빠가 알려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놀이를 하고 있으면 다 같이 모여서 즐기고, 그러다보면 새로운 친구가 생기고, 요즘 말로 ‘크루’가 생겼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저는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에는 왜 이런 모습을 볼 수 없을까?’
‘이런 모습을 다시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처럼 놀이문화가 끊기지 않고 청소년 때까지 지속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어떻게 보면 어렸을 때부터 놀이를 해왔고, 놀이를 하면서 서로 작전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서 하나로 정리하고, 또 의견에 대한 결과를 피드백하는 과정들을 겪어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가 아동인권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이유도 놀이 덕분입니다. 놀이를 하면서 알 수 있는 아동인권이 정말 많기 때문이죠. 놀이는 그냥 노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정말 무한합니다.
어른들한테 ‘노는 애’라고 하면 나쁜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노는 애는 신나게 잘 놀며 자라서 나중에 더 큰 생각을 하고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는 아이입니다. 바로 저처럼요! 그래서 그냥 노는 것이 아니라 잘 놀아야 하고, 잘 놀기 위해서 교육환경이나 사회적인 환경을 어른들께서 잘 조성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 한동안 가지 못했던 놀이터를 최근에 다시 가게 됐습니다. 마을의 놀이선생님들이 놀이터에서 놀이를 진행해주시는 시간에 참여하게 됐는데, 오랜만에 한발뛰기, 진치기 등을 하다보니 어느새 어렸을 때 느꼈던 배꼽이 간질간질한 놀이터의 느낌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놀 권리가 보장되고, 그것에 이어서 청소년에게도 놀 권리가 보장돼서 늘 배꼽이 간질간질한 즐거움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시민참여 플랫폼 ‘민주주의 서울’에서는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는 조례를 만들면 어떨까요?”라는 주제로 온라인 토론이 진행 중입니다. 9월 12일까지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시민토론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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