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 놀 권리 조례 후 3년… 우린 이렇게 놀아요
‘전국 최초’ 놀 권리 조례 후 3년… 우린 이렇게 놀아요
  • 기고=오래은
  • 승인 2020.09.0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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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놀아요?⑫] 오래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남아동옹호센터 과장

놀이를 빼앗긴 대한민국 아이들. 놀이라는 ‘권리’를 되찾아주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서울시 아동 놀이권 조례 제정을 위한 시민연대’의 연속 특별기고로 놀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 편집자 말

전남도의회 놀 권리 보장 호소 ⓒ오래은
전남도의회 놀 권리 보장 호소 ⓒ오래은

2016년 전남 작은 마을에서 ‘아동이 행복한 마을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라는 질문을 시작했을 때는 놀 권리에 대해 지금까지 이야기하고 다닐 줄은 꿈에도 몰랐다. 권리라는 용어도 생소한 분위기에서 아이들의 놀 권리를 이야기했을 때, 필자를 바라보던 다양한 의심의 시선들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학교 끝나고 마땅히 놀 장소가 없어 시소 하나 달랑 있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다가 ‘문제아’ 취급을 받아 쫓겨난 아이들, 없는 용돈 아껴 놀아보겠다고 버스까지 타고 나가 결국에는 갈 곳이 없어 하염없이 길거리를 걷다 지쳐 돌아오는 아이들, 없는 시간 만들어 힘들게 놀러간 놀이터에서 취객과 흡연자 등 낯선 이들을 만나 숨 한번 크게 못 쉬고 울상이 된 아이들을 생각하며 없던 용기도 끌어낼 수 있었다. 

2016년 12월 ‘전남 나주 영산포 어린이, 놀 권리 보장을 위한 호소문’을 시작으로, 이듬해 전남 아동 4000명의 의견을 조사해 “지방에 살아도 재미있게 놀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전남도의회에서 발표했다.

교직원, 학부모들의 응원과 함께, 도의원, 놀이활동가, 공간디자이너 등 힘이 되는 분들과 연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특히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국회에서 열린 ‘아동공약발표회’에 대표 아동이 참여한 것은 매우 특별한 기억이다. 아이들의 당당함과 힘찬 목소리를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처럼 지역 아동들의 적극적인 목소리 내기는 많은 관심 속에서 여러 가지 성과들로 연결됐다. 전라남도 나주교육지원청 특색과제로 놀이문화 활성화가 채택되는 것을 시작으로, 전남도지사ㆍ전남도교육감 후보자 공약에 반영돼, 전남도의회에서 전국 최초로 놀 권리 조례가 제정되는 기반이 됐다.

2017년 6월 15일은 ‘전라남도교육청 어린이 놀 권리 보장에 관한 조례’가 전국 최초로 제정된 의미 있는 날이다. 조례 제정 3년 만에 전국으로 확산돼, 현재까지 아동 놀 권리를 용어로 사용하는 조례만 전국에 32개가 되니 엄청난 사건(?)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 “국회도 다녀왔는데…” 아이들의 목소리로 만든 최초의 ‘사건’

아동참여로 탄생한 ‘어디든 놀이터’ 놀이키트 ⓒ오래은
아동참여로 탄생한 ‘어디든 놀이터’ 놀이키트 ⓒ오래은

아이들의 목소리에 응답해 조례가 만들어졌으니 기쁜 일인데, 약간의 허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여전히 지역의 아이들은 마음 편히 놀지 못했고, 힘들게 만들어진 조례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만든다는 것에 충분한 의미를 부여하더라도, 그 조례 하나 가지고는 아이들의 놀 권리를 되찾아주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같은 시기에 어린이가 있는 곳 어디든 놀이터를 만들자는 의미의 ‘어디든 놀이터’ 캠페인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시작했다. 전남에서는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진 초등학교의 유휴공간을 사용자 중심의 아동참여 디자인을 통해 환경을 바꾸는 일에 참여했다.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고 문제해결을 위한 파트너로서 함께했기 때문에, 조례의 의미가 퇴색하지 않고 조금씩 숨 쉬고 자라나는 정책이 되지 않았나 싶다.

예컨대 교실에 빈 책상 하나 위치만 바꾸어놓고 눈치 보지 않고 놀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면 아이들이 원하는 재미있는 놀이가 일어날 수 있음을 알게 됐고, 제도와 동시에 그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환경과 인식개선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특히 제정된 조례가 의미 그대로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아이들의 삶과 가까운 삶의 터전에서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아동을 놀이의 주체자로 인식하고 유기적으로 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동시에 기울였다.

전국 최초의 조례가 마련되고 기뻐하는 마음도 잠시, 전라남도의 22개 시·군 전 지역을 대상으로 지난 3년 동안 이행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일반 시민, 전문가들과 함께 전남 전 지역의 초등학교 전수조사는 물론 교육행정가, 초등학생들까지 약 2000여 명의 의견을 묻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오고 있다.

◇ 코로나19로 단절된 세상과 아이들의 삶을 놀이로 ‘온택트’ 하자

2019년 전남도의회 아동권리포럼 ⓒ오래은
2019년 전남도의회 아동권리포럼 ⓒ오래은

조례 시행 직후 현장에서 잠시 혼란은 있었지만, 이 조례를 ‘의미 있는 조례’로 교사, 학부모, 학생이 모두 인식하고 있었다. 입법 취지에 대해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긍정적인 공감대와 함께 ‘놀이의 본질’을 찾기 위한 다양한 이행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군가 ‘놀 권리 조례가 정말 필요할까?’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필요하고, 지금 즉시 마련돼야 한다’고 답하고 싶다. 아이들의 삶은 중앙정부보다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이나 제도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된다. 지자체 조례를 통해 매일 걷는 길거리, 매일 가는 놀이터부터 아이들이 정책을 느끼고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조례 제정에서 그치지 않고 정책이 잘 이행되고 있는지, 지역 특성은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권리주체자인 아동 입장에서 무엇이 어떻게 개선돼야 할지 지속적인 감시와 의견제시를 통해 살아 숨 쉬는 조례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 아이들의 놀 권리는 오히려 후퇴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갑작스런 ‘집콕’ 생활과 온라인 학습에, 하루 종일 쓰고 있어야 하는 마스크. 코로나19 시대의 아이들에게 놀 권리 보장은 왜 중요할까?

지역 아동들과 직접 개발한 ‘어디든 놀이터’ 놀이키트를 아이들에게 전달했을 때, 놀이에 대한 아이들의 갈망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꼼짝 없이 아무것도 못했던 아이들이, 몇 번이나 손을 소독하고 마스크를 고쳐 쓰면서까지 행복한 마음으로 노는 모습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다.

이제, 서울에서도 시작된 놀 권리 조례 제정 움직임을 응원하며, 아동이 있는 곳, 어디든 놀이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시민참여 플랫폼 ‘민주주의 서울’에서는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는 조례를 만들면 어떨까요?”라는 주제로 온라인 토론이 진행 중입니다. 9월 12일까지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시민토론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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