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면 사랑스러울 때가 대부분이지만, 화가 치솟는 순간도 많다.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거나, 밥을 먹지 않고 딴청을 피우거나, 터무니없는 것을 해달라고 고집을 피우거나 할 때 등 정말 많은 순간이 있다.
그 순간마다 버럭 화를 낸 뒤,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를 보며 ‘이렇게까지 화낼 일이 아니었는데…’라고 생각하면서 후회한 적도 있을 것이다. 화가 나려는 순간, 아이의 말이나 행동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포즈(pause)를 적절히 활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포즈(pause)란, 말을 하다가 잠시 멈추는 것을 의미한다. 대화할 때 포즈는 정보 처리 과정에서 여유 시간으로 작용하여 정보의 과부하를 완화한다. 무엇보다 잠깐의 멈춤은 흩어졌던 주의를 한 곳으로 모으는 효과가 있어서, 자연스럽거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스스로 점검해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간과했던 문제를 발견하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것에 대비할 수 있다. 일종의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왜 이런 감정이 생겼는지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답변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메시지와 만나게 된다.
버럭 화가 났을 때, 아이에게 말을 내뱉기 전 자신의 감정이 지금 격앙된 상태인지, 이 말이 지금 꼭 해야 하는 말인지 생각하기 위해 잠깐 숨을 고르고 한 박자 쉬었다가 말하자. 부모 스스로 포즈를 통해 참을성과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의 행동을 존중해주는 것이다. 아이의 말과 행동을 부모가 원하는 방향대로 이끌기 위한 목적이거나 조급한 마음에 독촉하기 위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 잠깐 멈추고 깊게 호흡하며 감정을 가라앉힐 것
포즈의 시간 동안 심호흡 즉, 깊은 호흡을 하는 것도 추천한다. 호흡은 우리의 감정과 연결되어 반응한다. 캐나다 퀘벡대학교와 벨기에 루벤대학교가 공동으로 감정 변화와 호흡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본 결과, 감정에 따라 호흡은 변하지만, 호흡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도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렇게 볼 때, 버럭 하는 순간 의식적으로 호흡을 조절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순간적 감정을 가라앉힐 수도 있다. 우리는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호흡이 짧아진다. 화가 나면 호흡은 거칠어지고 빨라진다. 거칠고 짧은 호흡일 때 말을 하면 말이 빨라져 생각은 깊고 넓어질 수 없다. 말하기에 필요한 기본 호흡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호흡이 깊어지고 안정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고 생각이 깊어진다. 그러니 앞으로 버럭 하는 순간, 입은 다문 채 코로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숫자 4까지 세면서 코로 숨을 내쉬자. 숨을 내쉴 때 ‘차분하게’, ‘차분하게’와 같은 말을 조용히 반복한다. 그런 후에 말을 꺼내자.
이렇게 화가 났을 때 깊은 호흡을 하면 감정이 폭주하거나 그 감정에 내가 휩쓸리지 않도록 제어할 수 있다. 이때 한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숨은 얕은 숨을 쉬다가 일시적으로 깊은숨을 쉬는 현상이다. 만약 화가 난 순간에 아이에게 ‘에휴’, ‘휴우’라는 한숨을 내뱉으면, ‘힘들어’, ‘귀찮아’와 같은 말을 대체하는 부정적인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에 심호흡이 한숨이 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합주곡이나 합창곡에서도 악곡의 흐름을 멈추고 모든 악기가 일제히 쉴 때가 있다. 음악 용어로는 ‘게네랄파우제(General pause)’라고 한다. 음악이 재생되는 과정에서 잠깐의 멈춤은 듣는 이의 주의를 끄는 효과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도 포즈는 필요한 법이다. 포즈를 통한 자신만의 감정 완급 조절을 통해 아이와 건강한 관계를 맺어보면 어떨까?
*칼럼니스트 정효진은 KBS, MBC 등 방송국에서 10여 년 동안 MC 및 리포터로 활동하다 현재는 대구가톨릭대학교 글쓰기말하기센터 연구교수로 일하고 있다. 서로 소통하며 함께 성장하는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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