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즈존이 어른의 ‘권리’라 생각하는 당신에게
노키즈존이 어른의 ‘권리’라 생각하는 당신에게
  • 기고=이선영
  • 승인 2020.09.1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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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0주년 특별기고 ‘육아의 미래’③] 이선영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서울아동옹호센터 팀장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창간한 베이비뉴스가 올해로 창간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아동과 양육자의 권리를 더 폭넓게 보장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설계해야 할까요. 각계의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베이비뉴스 창간 10주년 기념 연속 특별기고를 통해 ‘육아의 미래’를 전망합니다. - 편집자 말

누군가를 열등하다고 생각하며 배제하는 것, 나와의 경계를 확실히 하는 것, 그게 혐오의 정의라면 한국은 아동을 미워하는 사회가 맞다. 노키즈존이 대표적이다. ⓒ베이비뉴스
누군가를 열등하다고 생각하며 배제하는 것, 나와의 경계를 확실히 하는 것, 그게 혐오의 정의라면 한국은 아동을 미워하는 사회가 맞다. 노키즈존이 대표적이다. ⓒ베이비뉴스

“한국은 아동을 혐오하는 국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지난해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대한민국의 아동권리협약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자리에서 나온 말이다.

아동권리위원이 한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우리나라가 아동이 살기 좋은 나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동을 미워하는 나라가 아니길 바라왔기 때문이다. 한국은 정말 아이들을 혐오하는 나라인가? 

◇ 나와 아이가 같은 존재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혐오’가 맞다 

누군가를 열등하다고 생각하며 배제하는 것, 나와의 경계를 확실하게 하는 것을 혐오라고 정의한다면 우리나라는 아동을 미워하는 것이 맞다.

‘노키즈존’ 카페나 식당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고, 숙제하며 오래 앉아 있는다는 이유로 중·고등학생의 출입을 제한하는 곳도 많이 있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을 상영하는 극장에서조차 아동과 함께 영화를 보고 싶지 않다는 성인들의 불만이 터져 나온다. 

개별적 특성을 존중하기보다 동질한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규정하는 것을 혐오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는 아동을 혐오하는 것이 맞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항상’ 귀엽고 예쁜 아이들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지만, 항상 귀엽지도 않고 항상 예쁜 짓만 할 수 없는 현실 속 아이들은 시끄럽고 귀찮은 존재가 된다.

누군가를 나와 똑같이 존엄한 존재로 보지 않고 더 낮은 위치로 끌어내리는 것이 혐오라면 우리는 아이들을 혐오하고 있는 것이 맞다.

부모의 징계권에 대한 논란이 있을 때마다 정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왔다. 누군가를 때려도 된다고 오인되는 법을 바꾸기 위해서 사회적 합의까지 필요한 존재가 아이들 말고 또 있을까? 

유엔 심의과정에서 한국 아동이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우려한 배경은 사실 더 참혹하다.

가습기살균제 피해 아동, 세월호 사건, 학생들의 제보로 터져 나온 스쿨 미투,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과 우울증 증가, 어린이 보호 구역 내 교통사고 사망률,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동, 일상적 폭력과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있는 아이들의 현실이 우리나라를 아동을 혐오하는 나라로 보이게 한 것이다. 

그리고 유엔에서 발견한 혐오와 우리의 일상 속 혐오는 연결돼 있다.

골목마다 있던 놀이터가 사라지고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소음이 될 때, TV 프로그램 편성표에서도, 정치인의 선거 공약집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 때, 깨끗하게 포장된 자동차 도로 옆길로 아이들이 아슬아슬하게 걸으며 학교에 갈 때, 그 속에서 아이들의 존재는 점점 보이지 않게 되거나 보고 싶지 않은 존재가 된다. 

◇ 우리도 한때 아이였음을, 좋은 어른들 덕에 무사히 어른이 됐음을

'왜 아이를 사랑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필요한 사회, 그 사회는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는 사회일 것이다. ⓒ베이비뉴스
'왜 아이를 사랑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필요한 사회, 그 사회는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는 사회일 것이다. ⓒ베이비뉴스

우리는 어쩌다가 아이들을 혐오하는 나라가 된 것일까?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기 전에 아이들을 왜 사랑해야 하는지부터 이야기해야 하는 걸까? 누구나 어린이였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는 ‘어린 왕자’의 문구처럼 어른은 누구나 어린이였다. 

인간은 동물 중에서 가장 성장이 더디고 의존도가 높아서 타인의 보살핌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그리고 아이들은 누구나 그 취약한 시기를 지나 어른이 된다.

제 목도 못 가눌 때 먹여주고 재워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서 ‘위험해!’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있었기 때문에, 시끄럽게 놀아도 적당히 봐주던 동네 어른들이 있었기 때문에, 손을 들어 올려 내가 여기 있다고 표시를 하면 자동차를 멈추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어른이 될 수 있었다. 

왜 아이들을 사랑해야 할까? 이 질문이 필요한 사회라면 누구도 안전하지 못한 사회, 누구도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일 것이다. 가장 약하고 작은 자, 이 사회에 대한 책임이 가장 적은 자에게조차 인색한 세상이라면 이곳에서 환대받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른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많은 순간에 아동을 혐오하지 않는 어른들이 함께였던 것처럼, 지금의 어린이들에게 아동을 미워하지 않는 어른, 아동을 혐오하지 않는 사회가 돼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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