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놀이가 ‘진짜 놀이’ 아닐까
자연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놀이가 ‘진짜 놀이’ 아닐까
  • 기고=김정유원
  • 승인 2020.09.1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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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놀아요? 16] 김정유원 거원중학교 2학년

놀이를 빼앗긴 대한민국 아이들. 놀이라는 ‘권리’를 되찾아주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서울시 아동 놀이권 조례 제정을 위한 시민연대’의 연속 특별기고로 놀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 편집자 말

공동육아 초등방과후 겨울 들살이에서 ⓒ김정유원
공동육아 초등방과후 겨울 들살이에서 ⓒ김정유원

어느 날 엄마의 책상에서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가 선정한 아이가 12살이 되기 전에 해봐야 할 50가지’라는 목록을 보게 됐다. 바람 속에서 나는 느낌 느껴보기, 성냥 없이 불 피우기, 개울에 둑 쌓기 등으로 구성돼 있었고, 대부분이 자연과 관련된 놀이들이었다.

이중 내가 해본 놀이들은 50가지 중 5개 정도를 제외한 45개였다. 특정한 도구가 없어도 웬만하면 즐길 수 있겠으나, 실제로 경험한 아이들은 많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이런 놀이들을 해본 것은 자연친화적이고 자유로운 곳인 파란하늘어린이집과 공동육아 초등방과후를 다니면서였다. 그리고 공동육아에서 만난 다른 가족들과 캠핑을 많이 다녔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2학년 즈음, 여러 친구들 가족과 캠핑을 갔다. 물수제비를 뜬 것은 물론, 솔방울을 주워서 잣을 발굴하기도 하고, 직접 소 등에 타보기도 했다.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약간의 불안감과 함께 탑승했으나 무섭기는커녕 계속 타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러던 중 뒤돌아보니 한 동생이 울고 있었다. 왜인지 물었더니 소꼬리에 뺨을 맞았다 했다. 소꼬리가 강력한 힘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물수제비를 떠보자! 처음 0개에서 1개 정도는 몇 번 하다 보니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2개부터가 무척 어려웠다.

같이 간 친구들이랑 피드백 해가며 실험해본 결과, 납작한 돌과 비스듬한 자세에서 잘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간신히 2~3개를 성공한 후 아마(공동육아에서는 아빠, 엄마를 합쳐 아마라고 부른다)들에게 보여 주려고 부르면 이상하게 안 됐다. 유감. 아깐 분명히 성공했는데. 물론 내 말을 믿어줬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경험은 ‘해 뜨는 모습 보기’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 다른 가족들과 캠핑을 갔을 때였다.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5시경 일어나야 한다는 것은 끔찍했지만 나름 의미 있는 경험이 되겠거니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 4학년의 나에게 5시 기상은 생각보다 훨씬 끔찍하고 짜증나는 일이었다. 해 뜨는 모습은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그 장소까지 시간에 쫓기며 가는 일은 피곤하기 그지없었다. 당시 졸음에 절어 있는 사진 한 장이, 일출 보며 기지개 켜는 사진 한 장이 아빠의 카메라에 담겨 있다.

◇ 내가 해본 ‘진짜 놀이’들… 그리고 놀 권리

공동육아 가족들과 여름휴가 가서 ⓒ김정유원
공동육아 가족들과 여름휴가 가서 ⓒ김정유원

이 외에도 캠핑은 수십 번 갔으므로 기억나는 에피소드도 넘쳐난다. 바다에서 조개를 잡거나 계곡에서 다슬기를 잡기도 했다. 다슬기는 너무 깊은 물에는 그다지 많이 살지 않았고, 그때의 내 키를 기준으로 대략 무릎이나 허벅지 정도의 높이에서 여러 마리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바다에서 조개를 잡은 것은 여러 번인데, 가장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북분리에 갔을 때이다. 그저 모래를 파기만 하면 될 정도로 조개가 정말 많았다. 직접 파서 발로 잡아 올리기도 하고, 누군가 모래를 파주면 잠수해 들어가 손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우리는 바다가 깊을수록 조개가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안전선 부표 부근에 조개가 가장 많았다. 그걸 알아낸 우리는 해가 지기 전 대량의 조개를 들고 씻으러 갈 수 있었다. 다음 날의 맛있는 식사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는 ‘아이가 12살이 되기 전에 해봐야 할 50가지’가 대부분 자연과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갇혀 있는 신세가 아닌 이상 누구나 경험이 가능한 놀이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발견은 곧 ‘50가지의 놀이들을 자연과 관련지은 이유는 무엇일까, 숨겨진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아이들의 흥미를 고려한 것은 아닐까?

자본의 유무와 관련이 덜한 것을 택함으로써 많은 아이들이 최대한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경험을 선정한 것 같기도 하고, 이런 놀이를 하려면 놀 시간이 많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또 한 가지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놀이를 하는 기회와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한국 청소년의 일주일 평균 공부 시간이 49.43시간(2009년 보건복지가족부 조사, OECD 평균은 33.92시간)이라는 통계도 있다.

학원은 함께 놀 친구들을 빼앗아 갔다. 어른들에게 청소년들의 놀 권리를 존중해달라는 말을 하고 싶다. 우리들이 놀기 위해서는 놀 시간이 필요하고 함께 놀 친구가 필요하다.

*시민참여 플랫폼 ‘민주주의 서울’에서는 “아이들의 놀 권리를 보장하는 조례를 만들면 어떨까요?”라는 주제로 온라인 토론이 진행 중입니다. 9월 12일까지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시민토론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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