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 천국에서 ‘놀이중심’ 교육이 가능할까
선행학습 천국에서 ‘놀이중심’ 교육이 가능할까
  • 기고=양신영
  • 승인 2020.09.1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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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0주년 특별기고 ‘육아의 미래’⑤] 양신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선임연구원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창간한 베이비뉴스가 올해로 창간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아동과 양육자의 권리를 더 폭넓게 보장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설계해야 할까요. 각계의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베이비뉴스 창간 10주년 기념 연속 특별기고를 통해 ‘육아의 미래’를 전망합니다. - 편집자 말

영유아들에게는 하루 1시간 이상 바깥놀이를 반드시 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럴 공간이 없다 ⓒ베이비뉴스
영유아들에게는 하루 1시간 이상 바깥놀이를 반드시 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럴 공간이 없다 ⓒ베이비뉴스

정부가 2019년 5월 23일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정책’에 따르면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놀 공간의 문제에 있어서 ‘육아종합지원센터 내 놀이체험실 확대’, ‘산림교육센터 및 유아숲체험원 조성 확대’를 방안으로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영유아 시기 특성상 아이들이 ‘집’ 다음으로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인 ‘유보육시설’ 공간에 대한 고민이 제외되어 있습니다.

현재 영유아 1인당 어린이집 면적 기준은 보육실 2.64㎡(0.8평), 실외공간(옥외놀이터) 3.50㎡(1.1평)으로 최소한의 요건에 맞추고는 있으나, 이는 OECD 평균인 3.6㎡(1.1평), 8.9㎡(2.7평)에 못 미치는 낮은 수치입니다.(강은진·도남희·염혜경, 2017, 아동의 창의성 증진을 위한 학교환경 연구, 육아정책연구소).

게다가 보육실 면적에는 아이들이 주로 머무는 공간인 보육실 외에 거실과 공동놀이실이 포함된 수치이기 때문에 실제 아이들의 생활공간은 더 비좁은 것이 현실입니다. 

유아교육과정 지침상 영유아들은 하루 1시간 이상 바깥놀이를 반드시 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의 보육시설 환경은 어떤가요? 봄에는 흩날리는 꽃비를 맞고, 가을엔 낙엽 이불 위에 뒹굴고, 겨울엔 눈썰매를 탈 수 있는 ‘천장이 하늘인 놀이공간’을 가까이에 두고 있나요?

소수의 기관을 제외하고 많은 아이들은 선생님 뒤로 2열 종대로 줄을 지어 차를 조심하며 동네 주변을 한 바퀴 걷고 원으로 돌아오는데 그치거나, 획일화된 정형 놀이터 시설에서 과밀 포화상태로 잠시 놀고 다른 반 아이들과 시간을 교대하고 들어가 식사하기 일쑤입니다.

이마저도 아이들의 놀 공간은 코로나19 이후 점점 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해마다 언론에서 볼 수 있는 ‘80대가 몰던 차, 어린이집 간이풀장 돌진… 어린이 등 5명 다쳐(2019. 8. 6.)’, ‘아파트 놀이터로 승용차 돌진… 4명 다쳐(2020. 6. 8.)’와 같은 뉴스는 더 이상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 바깥놀이 하라는데 현실은 ‘줄줄이 동네 한 바퀴’로 끝

2017년 육아정책연구소는, 안전하면서도 영유아의 놀이를 보장할 수 있는 환경기준이 필요하다고 이미 지적한 바 있습니다.

해외 국가에서는 ‘어린이집의 시설 설비 기준과 규정’에서 유아의 ‘놀이 동선’까지 고려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영유아의 다양한 실내외 놀이와 공간구성에 대한 적정 기준에 대한 정보가 제시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국공립 어린이집 이용률 40%를 목표로 보육시설 확대 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양적 측면뿐만 아니라 질적 개선을 함께 고려해, 어린이집을 포함한 국내 유보육시설의 실내 및 실외놀이터 마련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권고 방침 마련이 필요합니다.

동작구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의 경우 실내공동놀이실이 아예 마련돼 있지 않아 미세먼지, 장마 등 기상악화로 바깥놀이를 하지 못하는 날이 며칠째 이어지면, 아이들이 좁은 보육실에서 장시간 활동해야 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몇 년째 공실로 방치돼 있는, 어린이집과 바로 붙어 있는 경로시설에 할당된 면적을 놀이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게 해달라고 구청 보육여성과에 건의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되돌아왔다고 합니다. 

정부 부처 간 긴밀한 협조하에 기존 여러 시설들을 아동의 놀이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 검토하는 것이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막고 실제적인 현장의 필요를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교사 대 아동 비율도 함께 축소해 놀이·아동중심 교육과정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 유치원ㆍ어린이집 안까지 깊숙이 침투한 사교육 업체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경쟁교육과 과도한 사교육’에 내몰린 대한민국 아동의 현실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베이비뉴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경쟁교육과 과도한 사교육’에 내몰린 대한민국 아동의 현실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베이비뉴스

2018년 11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3개 지역의 사립유치원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교육기관으로서 유치원의 설립 목적을 망각하고 본인이나 가족의 이름으로 사교육 기관인 학원을 불법적으로 동시 운영하면서 유치원을 사교육 기관처럼 운영하는 유치원의 실태가 적발됐습니다.

한 건물 안에 유치원 설립자 및 원장이 속셈학원 등 학원을 세 개까지 동시 운영하거나, 어학원 등을 옆 건물에 같이 운영하면서 원생들의 특성화 프로그램을 불법적으로 위탁하며 사교육 업체의 배를 불리고 있었습니다.

특성화 프로그램을 유아 1인당 1일 1개 1시간 이내, 주 5개 이내로 운영하라는 지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1일 4개까지 학습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유치원, 원어민 영어를 포함해 주 5회 매일 영어교육을 실시하는 유치원, 한글과 수 학습을 만 3세반부터 선행학습 하는 유치원 등의 사례도 확인됐습니다.

유아의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과도한 학습과 사교육 업체의 영업 논리가 유아교육 현장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학부모들이 어린이집의 각종 공지사항들이 전달되고 아이의 일상을 교사와 주고받는 알림장 역할을 하는 어플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야 하는 이 어플에 접속하면, 첫 화면에 “6세 우리 아이, ○○학습으로 한글 다 뗐어요!”라는 문구가 뜨며 부모들을 현혹합니다. 광고를 눌러 들어가 보면 “유아동의 99%가 초등 입학 전 한글, 수학, 영어 등 학습을 하고 있습니다”라며 4세부터 학습지를 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또 연간 행사로 부모참여수업을 반드시 하도록 돼 있는데, 이 프로그램도 사교육 업체에서 기획하고 진행까지 해줍니다. 연말마다 후년도 특별활동 프로그램 선정을 위해 업체 시범수업을 보는 데, 부모참여수업이 활용되기까지 합니다.

◇ 놀 권리 침해 현실 진단에서 시작되는 ‘육아의 새로운 미래’

이런 상황에서 ‘놀이중심 아동중심’을 선언하며 도입된 ‘2019 개정 누리과정’이 얼마나 의미 있게 안착될 수 있을까요? 유치원 특성화 프로그램, 어린이집 특별활동, 심지어 정규 교육과정에까지 사교육 교재교구 업체가 들어와 초등 전 선행학습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부모들의 마음은 들썩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국의 공교육 제도의 최종 목표는 오직 명문대 입학인 것으로 보인다. 아동의 잠재력을 십분 실현할 수 있도록 하고 발달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만이 목표인 것 같다.”

2019년 9월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알도세리 위원이 한 말입니다. 그는 한국 정부에 ‘경쟁교육과 과도한 사교육’에 내몰린 대한민국 아동의 현실을 개선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지금은 공식적인 영유아 사교육비 조사조차 실시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제라도 아이들의 놀 권리 침해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영유아만큼은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는 대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모았으면 합니다.

그렇게 해서 ‘10년 뒤 육아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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