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너무 속상해.”
“왜?”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했는데, 열 개 중에 두 개만 맞았어.”
“!”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 딸아이가 다급하게 전화를 해왔다. 학교에서 받아쓰기를 했는데 열 문제 중에서 두 문제만 맞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100점 만점에 20점을 맞은 것이다.
그럴 리가 없었다. 아이는 6살 때 이미 한글을 깨쳤고 평소에 좋아하는 웹툰도 무리 없이 읽는다. 유치원에 다닐 때도 받아쓰기를 몇 번 했었는데 모두 100점을 맞았다고 자랑을 하곤 했다.
받아쓰기를 한 단어가 무엇인지 다급하게 물었다. ‘익꼬’, ‘일코’, ‘막꼬’, ‘실코’…. 속이 상한 아이가 울먹이며 단어를 하나하나 불러주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퇴근 후 아이를 만나 물어보니 수업시간에 ‘ㄺ’, ‘ㅀ’ 받침에 대해 배웠고, 이와 관련한 단어에 대해 받아쓰기를 한 거였다. 전화로 물었던 단어들은 ‘읽고’, ‘잃고’, ‘맑고’, ‘싫고’ 였다. 생각보다 어려운 단어들이었다. 성인인 나도 신경 써서 듣지 않는다면 헷갈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이한테도 괜찮다고 얘기해 주었다. 너무 어려운 단어들이어서 네가 헷갈릴 수 있었을 거라고, 그리고 받아쓰기 결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앞으로 안 틀리면 된다고 말이다.
거기까지만 해야 했다. 아이한테는 괜찮다고 이야기했지만 나 스스로가 괜찮지 않았다. 20점이라는 점수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때부터 잔소리를 이어갔다.
“‘ㄺ’ 받침을 읽을 땐 앞글자 받침은 ‘ㄱ’으로 발음하고, 그 뒤에 따라오는 글자는 ‘ㄲ’으로 발음하는 거야.”
무조건 외우는 게 아니라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며 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나 이어갔다. 아이는 그만하라며 짜증을 냈다. 거기까지만 해야 했다. 알겠다고 그만하고 자자는 말 뒤에 한 마디를 더 붙였다.
“그만 자자. 근데 책을 ‘읽고’ 잘 거야? 그냥 잘 거야? 여기에선 ‘읽고’는 ‘익꼬’로 발음할까? ‘일코’로 발음할까?”
아이는 대답도 하지 않고 자기 방에 들어가 버렸고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됐다.
◇ 사랑해서 한 말에 상처받는다는데, 그 사랑이 무슨 소용
휴, 거기까지만 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 자리에서도 나의 잔소리는 이어졌다.
“너 웹툰 작가가 꿈인데, 네가 그린 웹툰에 맞춤법이 틀렸다고 생각해봐. 사람들이 그 웹툰을 이해할 수 있겠어? 매일 그림 연습을 하는 것도 좋지만 맞춤법 공부도 함께 하는 것이 어떨까?”
잔소리 모터를 달았는지 한번 시작된 잔소리는 멈출 줄 몰랐고, 아이의 표정은 점점 더 일그러졌다. 아이는 ‘뼈 때리는’ 한 마디를 남긴 채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제부터 내 꿈은 웹툰 작가가 아니야. 이제부터 내 꿈은 화가야”
아빠의 무자비한 잔소리에 아이는 글쓰기도, 맞춤법도 필요 없는 ‘화가’로 꿈을 바꿔버렸다. 아무리 아이를 위해 하는 말이라도 그것이 과하면 잔소리가 되는 법이다. 잔소리가 과하면 본질은 잊은 채 감정을 상하게 하는 법이다. 아이의 ‘꿈’까지 바꿀 정도로 말이다.
결국, 맞춤법을 잘 알았으면 하는 바람은 아빠의 욕심이었다. 아이를 위한 말이라고 포장하지만 결국 아이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큰 상처를 줬다. 아이에게 다시 말해야겠다. 맞춤법을 틀려도 웹툰 작가가 될 수 있다고, 그리고 요즘은 컴퓨터가 맞춤법 검사를 다 해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이다.
*칼럼니스트 고완석은 여덟 살 딸, 네 살 아들을 둔 지극히 평범한 아빠이다. 국제구호개발 NGO인 굿네이버스에서 14년째 근무하고 있으며, 현재는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옹호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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