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운이 좋게 국공립 단설 유치원에 선발돼 즐거운 유치원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비록 코로나19로 등원했던 날보다 그렇지 못한 날이 더 많았지만 가정어린이집을 벗어나 태어나 처음 만난 사회 기관으로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유치원에 가지 않는 날도 종일 유치원 이야기를 하며 등원하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를 보며, 부모로서 (다른 사교육에 욕심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이렇게 좋아하니 가능하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잘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생겨났다. 이전까지는 간간이 강의를 나가며 재택근무를 통해 원고를 쓰던 프리랜서 작가라 상대적으로 아이를 돌볼 시간적 여유가 많은 편이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유치원에서 맞벌이 부부, 즉 엄마도 일을 한다는 증빙 서류로 제출할 만한 자료가 없었다. 유치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긴 하지만 아이가 방과 후, 즉 부모가 하원을 시킬 수 있을 때까지 돌봄이 가능하려면 필수로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있는데 대부분 재직증명서나 근로계약서(혹은 위촉계약서)는 기본이고 추가로 국민연금 가입자 증명서나 직장건강보험 자격득실 확인서, 소득금액 증명원 등이 필요하다.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단기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의 경우도 주 16시간 이상 근무한다는 것을 증빙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필요한 서류 제출로 정말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꼼꼼하고 철저하게 검토를 하는 것이라고 하니 나도 이 부분에서는 전적으로 수긍한다. 그러나 단순히 서면으로 보고되는 서류들로 업무의 질과 양을 평하다 보니 나 같은 경우는 조금 억울한 상황이기도 했다. 1시간 강의를 한다 해도 준비하는 기간은 일주일이 걸릴 수도 있고, 원고 한 페이지를 작성한다 해도 고민과 노력의 대가가 주 16시간 근무에 뒤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딱히 이렇다 할 소속과 그만한 대가를 밝힐 방법이 없어 이제까지는 아이를 정규반에 보내며 부업 아닌 부업처럼 일을 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내달부터는 일정 기간과 시간에 출근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유치원에 아이를 정규반 이상 추가 돌봄을 맡길 수 있는지 여부를 물었지만 결과는 예상과 같았다. 위와 같이 맞벌이 부부임을 증빙할 수 있어야 하며 근로 소득으로 증빙할 경우 지난 3개월간의 급여 내역이 기록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다음 달부터 시작인 나에게는 당장 아무런 방법이 없는 셈이었다. 게다가 유치원에서 필요로 하는 서류가 준비된다 해도 현재 종일반 인원이 마감인 상태라 자리가 날 때까지 무기한 대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듣는 내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정말 엄마가 일을 하는 것이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일인 걸까?
나라에서 워킹맘과 경력단절 여성의 재취업을 도와주고 응원하는 분위기라고 생각했는데 국공립 유치원의 현실이 이렇다니, 실제로 겪어보니 뼈저리게 느껴진다. 일하는 엄마는 일해서 번만큼 사교육비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 대한민국 육아의 현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결국 아이는 그렇게 좋아하던 유치원을 떠나 늦은 시간까지 돌봄이 가능한 사립 유치원으로 옮기게 됐다. 교육비는 이전보다 몇 배는 늘었는데 어쩐지 걱정은 더 늘어만 간다.
2021년도 ‘처음학교로’ 유아 모집이 시작됐다. 작년 이맘때 떨리는 손으로 지원을 하고 기다리다 원하는 곳에 선발이 되고 함께 즐거워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부디 다른 부모들은 나와 같은 결정으로 아이에게 혼란을 주는 일이 없기를! 소속이 뚜렷하지 않은 직업을 가진 것이 처음으로 후회가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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