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낳으면 모성애가 저절로 생기는 걸까?
아기를 낳으면 모성애가 저절로 생기는 걸까?
  • 칼럼니스트 이하연
  • 승인 2020.11.1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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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과 분만 사이, 이게 가장 궁금했어!] 모성애라는 프레임에 갇힌 엄마들

직장 다니는 워킹맘들은 임신을 아는 순간, 희비가 엇갈린다. 자신의 배 속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신비감과 고마움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경단녀'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함께 밀려온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을 하루하루 살다보면 어느덧 임신 막달이 되고 출산휴가를 낼 즈음이 돼서야 비로소 출산을 실감하게 된다. 엄마가 되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고,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오기도 한다.

“직장 다니다보니 벌써 임신 9개월이 됐어요. 회사 일이 바빠서 태교도 잘 못하고, 임신 기간 동안 대충 먹고 외식도 자주 하고 그랬어요. 지금까지 아기한테 신경을 못 쓴 거 같아서 너무 미안해요.“

내게 막달코칭을 신청하는 산모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일하느라 배 속의 아기도 제대로 못 챙겼고 출산 준비도 못해서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하려고 한다고. 다른 산모들은 임신 초기부터 태교에 신경 쓰며 음식도 가려 먹고 순산 운동도 꾸준히 하며 출산용품을 준비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겐 ‘모성애’가 없는 것 같다며, 자신을 ‘나쁜 엄마’라 여기면서 괜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산모들이 의외로 많다.

남들은 다 태교도 열심히 하고 아기에 대한 사랑이 지극할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특히, 계획임신이 아니거나 입덧이 너무 심한 경우 배 속에 있는 아기를 미워하기도 하고, 출산할 때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인 소모가 너무 크면 임신 자체가 후회스럽기도 하다.

◇ 모성애, 너는 대체 정체가 뭐냐?

자신에겐 ‘모성애’가 없는 것 같다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산모들이 의외로 많다 ⓒ베이비뉴스
자신에겐 ‘모성애’가 없는 것 같다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산모들이 의외로 많다 ⓒ베이비뉴스

그런데 이즈음에서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임신하면, 엄마가 되면 모성애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걸까? 아직 얼굴도 못 본 아기가 정말 사랑스러운 게 당연한 걸까? 아기를 만날 생각에 설레는 마음보다 출산이 너무 무서운 마음이 크다면 모성애가 부족한 걸까?

모성애가 어떤 의미인지는 아무도 정의 내리지 않지만, 모성애가 있으면 좋은 엄마, 모성애가 없으면 나쁜 엄마라는 이분법적 논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은 없다. 아기를 임신하고 출산하면서 엄마가 되고, 아기를 키우면서 모성애도 자라나는 것이다.

모성애는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할 때 첫눈에 반하는 경우보다, 보면 볼수록 그 사람을 알아가면서 빠져드는 것과 비슷하다. 연애하며 다투기도 하고, 서로를 배워가면서, 전혀 몰랐던 상대방의 숨은 장단점을 알아가듯 엄마가 되는 것도 그렇다.

물론 설레는 마음으로 출산을 기다리며 배 속의 아기와 남다른 유대감을 보이는 경우 또한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와 더불어 아기가 태어난 이후에야 비로소 조금씩 친밀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자기 중심적인 성향이나 일 중심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라면, 자기 배 아파서 낳았다 하더라도 아기와 깊은 유대감을 갖기가 꽤 어려울 수 있다. 제왕절개로 출산한 엄마는 자신이 낳은 아기가 낯설고, 심지어 남의 자식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출산이 너무 힘들었다면 아기를 예뻐할 마음의 여유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반면 모성애가 풍부해 보이는 다른 임산부의 경우는 관계 중심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 우린 언제부터 ‘모성애’ 때문에 자책하기 시작했을까?

뮌헨대학교에서 사회학, 심리학, 철학을 전공한 엘리자베트 벡 게른스하임은 「모성애의 발명」이란 책에서 충분히 납득할 만한 객관적인 사실을 내놓았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대략 1만 년 전부터 농경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한 이후, ‘자녀’는 곧 ‘노동력’의 개념으로 인식돼왔다. 우리 조부모 세대까지만 해도 아이를 낳고 기를 때, 먹이고 입히는 정도에 그치는 아주 최소한의 양육 행위 정도면 충분했다.

즉, ‘모성애’라는 개념은 근대 이후 생겨나기 시작해서 최근 들어서야 엄마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안겨주는 개념이 됐다는 것이다. 「만들어진 모성」의 저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역시, 모성애는 본능이 아니라 근대가 발명한 역사적 산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으론 모성애 문제로 유럽의 엄마들도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면 이런 책들이 나와서 세상의 엄마들을 달래주고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사실 결혼·임신·출산을 오롯이 겪어낸 엄마라면, 굳이 모성의 사회사 같은 어려운 얘기가 아니더라도, 모성애라는 것이 꽤 인위적인 개념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임신 기간 내내 여성의 몸과 마음에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너무 다양한 변화들이 일어난다. 출산이라는 큰 산을 넘고 나면 밤낮 없이 갓 태어난 아기를 챙기느라 잠 한 숨 제대로 못 자고 점점 피폐해져가는 심신에 아무 생각 없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와중에 모성애 운운하는 건 너무 가혹한 처사임을 누구나 뼈저리게 느낄 테지만, 아무도 이런 걸 함부로 입밖에 내뱉지도 못한다. 이런 얘기를 하면 마치 누군가 “다들 그렇게 살아, 너만 애 낳고 사니? 뭘 그리 유별나게 굴어?”라는 핀잔을 줄 것만 같기에, 모두들 그냥 함구하고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자책을 멈추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엄마가 되길

자존감이 높아지는 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아이와 조금 더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베이비뉴스
자존감이 높아지는 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아이와 조금 더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베이비뉴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엄마가 되면 아이에 대한 친밀감과 유대감이 밑도 끝도 없이 자동으로 생길 거라는 사회적 믿음에 세상의 엄마들이 더 이상 주눅 들지 않으면 좋겠다.

자녀를 둘 이상 키우는 집이라면, 더 마음이 가고 더 친한 아이가 있고, 상대적으로 덜한 아이가 있어서 스스로도 당혹스러운 경우가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면 괜한 자책도 좀 줄어들지 않을까?

그리고 자신의 성향이 어떠하든 당당하게 살아가기로 마음먹고 자기 자신을 먼저 챙기며 사랑하게 된다면, 자존감이 좀 더 높아지면서 그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아이와 조금이라도 더 친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차피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는, 새 식구가 된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실천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칼럼니스트 이하연은 대한민국 출산문화와 인식을 바꾸고자 자연주의 출산뿐만 아니라 자연 분만을 원하는 산모들에게 출산을 알리고 있다. 유튜브 채널 ‘로지아’에 다양한 출산 관련 영상을 올리며 많은 산모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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