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아이와 추억 만들기... '이게 행복이지'
코로나 시대에 아이와 추억 만들기... '이게 행복이지'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0.11.23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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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아이와 함께 준비했던 글쓰기 공모

이번 주 들어 코로나19가 다시 무섭게 기승이다. 10월 추석 민족의 대이동도, 핼러윈도 무사히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일주일 전, 후배들과 모처럼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한 회사에 다니면서 올해 처음 밥을 먹은 후배도 그 자리에 있었다.

밥도 먹고 술도 한잔 하다 보니,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결혼 전부터 가끔씩 모이던 후배들이라 그런지 소중하고 애틋한 시간이었다. 모임이 끝날 무렵 내가 물었다.

“그래도 올해 가장 잘했다고 생각한 일이 뭐야?”

후배 하나는 와이프에게 최근 갤OO 워치를 사줬던 일을 꼽았고, 또 다른 후배는 집수리했던 일을 꼽았다. 나는 뭐였을까. 이런저런 일을 떠올려 보았지만, 역시 이사를 한 일이 제일 기억에 남고,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아이가 좋아해서 더 좋았다.

나는 이 마음을 얼마 전, 아이 학교에서 하는 ‘이게 행복이지’ 글쓰기 공모에 응모하며 글로 썼다. 아이들도, 학부모들도, 교직원들도 참여할 수 있는 학교 행사였다(정확히는 학교 상담실에서 마련한). 둘째 아이가 처음 이런 글쓰기 행사가 있다는 걸 알렸을 때 “우리 같이 해보자”라고 내가 말했다. 나중에 코로나 시대를 기억할 수 있는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마감까지는 날짜가 많이 남았고, 우리는 틈틈이 ‘뭐가 행복이었지? 뭘 쓰지?’ 고민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런데, 이런! 마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역시 원고는 마감이 쓰는 거였다. 그런데 아이는 포기했다. 시간이 없다면서!(왜 없는데!)

그렇다고 억지로 글쓰기를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도 같이 포기할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라도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마감일 자정이 될 무렵 겨우겨우 완성한 원고를 넘겼다.

나도 같이 포기할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라도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베이비뉴스
나도 같이 포기할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나라도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베이비뉴스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온라인 수업이 끝난 뒤 유튜브만 보는 아이를 지켜보는 일도 쉽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일을 접고 아이랑 시간을 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동네 친구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절실했다’라고 쓰면서 급기야 지역 카페에 열 살 아이 친구를 찾는다는 글을 올린 사연을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소개했다.

“집에서 혼자 노는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혹시 동갑내기 친구가 있으면 연락 바란다는 마음을 간절히 담아 카페에 글을 올렸다. 그런데 세상에나… 같은 아파트, 같은 동, 같은 반 친구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그렇게 아이에게 처음으로 ‘동네 친구’가 생겼다.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함은 어디로 갔는지 아이들은 ‘절친’이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완화되면서 주 3회 등교하는 아이들은 아침이면 시간 약속을 하고 1층 현관에서 만나 같이 등교를 한다.

코로나19 이전 회사에 가려면 늘 새벽에 집을 나선 나였기 때문에 아이들 등교하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다. 특히 동네 친구가 없었으니 친구랑 등교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친구와 등교하는 아이 모습을 베란다 위에서 오랫동안 천천히 지켜보았다. 아이들은 마스크를 쓰고도 무슨 이야길 하는지, 뭐가 그리 좋은지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니 행복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이렇게라도 일상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절로 생겼다. 코로나19는 아직 현재 진행형이지만 나와 남편이 아직 일할 수 있고, 아이들이 건강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게 기적 같은 행복이지 싶다."

정말 운 좋게도 내 글이 수상작 가운데 하나로 뽑혔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형도 기념품으로 받게 되었다. 학교에서 엄마의 수상(?) 소식을 들은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물었다.

“엄마 상 받는 거 알아? 선생님이 그러시던데… 엄마 글 썼어?”

“썼지!”

“언제? 근데 왜 말 안 했어?”

“너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으하하. 깜짝 놀랐지?”

“응! 정말 놀랐어. 난 엄마가 쓴 줄도 몰랐잖아. 나도 좀 보여줘.”

내 예상과 달리 아이는 조금 아쉬워하는 듯했다. 엄마가 상을 받는 것보다 자신은 기한 내에 글을 못 쓴 것이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다. 그런 아이에게 “다음엔 꼭 같이 해보자!”라고 말했다. 상품보다 더 듣기 좋은 대답이 돌아왔다. “응!”

상품을 받고 더 신난 아이 ⓒ최은경
상품을 받고 더 신난 아이 ⓒ최은경

그날 오후, 아이의 담임선생님에게 축하 전화도 받았다(아니, 이게 뭐라고… 하지만 대단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선생님은, 코로나19로 지치고 힘든 아이들에게 엄마의 글과 수상 소식이 큰 힘과 격려가 되었을 거라고 말해주셨다. 내가 공모에 도전한 취지를 정확히 알고 계셔서 반갑고 고마웠다.

그리고 아이에 대해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었다. 글쓰기 공모 용지를 원래 학생용 하나만 나눠 주는데, 아이가 엄마도 쓸 거라면서 한 장을 더 받아갔다는 거였다. 그때만 해도 선생님은 아이가 엄마랑 같이 쓸 계획인 줄은 전혀 몰랐다며, 괜히 학부모님에게 글쓰기 부담을 주는 것 같아 걱정했다면서 웃으셨다.

그제야 알았다. 아이도 내심 나와 함께 글쓰기 공모를 한다는 사실을 즐기고 있었다는 걸(이때 살짝 '억지로라도 쓰게 했어야 했나?' 싶은 마음이 조금 들었다).  

한편, 그즈음 아이는 한 출판사에서 하는 그림 공모전도 준비하고 있었다. 글쓰기는 제때 마감을 하지 못해서인지, 그림은 꾸준히 그리면서 정확히 마감일에 접수했다. 결과는 아쉽게도 탈락이었지만, 상품권(!)을 받지 못해 아쉬워하면서도 아이는 자신이 완성한 그림에 대해 꽤 만족하는 눈치였다. 상을 떠나서 재밌는 아이디어를 낸 자신과 자신의 그림 실력을 자랑하기 바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거면 된 거 아닌가? 코로나로 많이 불안했던 이 시기에 아이와 나는 추억이 될 만한 일을 하나라도 했으니까. 그 과정을 충분히 잘 즐겼으니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림을 완성한 아이에게 예쁜 말을 잔뜩 해주고 박수도 쳐주었다. 그리고 나에게도!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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