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는 눈치껏 빠지는 발표회… '통합교육'이 아닙니다
장애아는 눈치껏 빠지는 발표회… '통합교육'이 아닙니다
  • 칼럼니스트 박현주
  • 승인 2020.12.07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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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꿈을 꾸는 아이] 장애아이와 비장애아이가 '함께' 커간다는 것

장애아이와 비장애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아이들은 통합교육 환경에서 무엇을 배울까요, 우리는 또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요? 통합교육 현장에서 장애아이들이 비장애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고민해봅시다. 

며칠 전 어느 팟캐스트 프로그램에 출연해 나눴던 이야기 중 한 대목입니다. 진행자가 제게 코로나19로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등원을 못 하게 되면서 어떤 점이 제일 아쉽냐고 물었습니다. 

어린이집 운영자로서 저는 일주일 뒤 열릴 예정이었던 발표회를 못 하게 된 것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지난 칼럼에서 ‘발표회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유익한 시간’이라는 글도 썼는데요, 발표회를 통해 성장한 아이들과 그 부모의 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우리의 첫 발표회 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이럴 거면 왜, 장애통합어린이집에 보내시나요?"

"아이가 중증 장애라 분명히 아무것도 못 할 텐데 뭐하러 발표회에..." ⓒ베이비뉴스
"아이가 중증 장애라 분명히 아무것도 못 할 텐데 뭐하러 발표회에..." ⓒ베이비뉴스

우리 어린이집에는 중증 중복 장애아이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특수학교에서 근무하다 나와서 어린이집을 차린다고 하니, 특수학교에 다니던 몇몇 중증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딱딱한 느낌의 학교보다 어린이집의 푸근한 느낌이 좋아 왔던 모양입니다. 물론, 보육 시간이나 차량 운행 시간 등의 이유에서도 어쩌면 우리 어린이집에 다니는 것이 조금 더 나은 선택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어린이집 개원 후 첫 번째 발표회. 엄청난 고민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중증 중복 장애아이들과, 비장애아이들이 한무대에서 공연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수학교에서 근무할 때, 발표회가 슬펐던 이유는, 이런 중증 중복 장애아이들이 무대에서 스스로 참여할 수가 없다 보니, 교사들이 검은색 옷을 입고 아이 뒤에서 아이의 팔을 잡아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나름, 아이들을 위한 배려였지만, 그리고 그렇게라도 참여를 끌어내려던 교사의 열정 또한 두말할 것 없이 감사한 일이었지만 아이의 무표정한 얼굴과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다른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그 모습이 제 눈엔 한없이 슬퍼 보였습니다.

어쨌든, 발표회 당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18명의 장애아이 중 단 한 가족만 참여하는 ‘대참사’가 일어났습니다. 비장애아이들은 100% 참여했는데, 장애아이들은 단 한 가족만 참여했습니다. 아이들 의상이며 무대며 다 준비했는데…발표회가 끝나고 교사들의 속상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바로 그다음 날부터 부모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부모님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가 중증 장애라 분명히 무대에서 아무것도 못 할 텐데, 뭐 하러 그런 무대에 올리세요?”

“아이의 장애를 뻔히 알면서, 잘하지 못하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 동물원 원숭이처럼 무대에 올리는 발표회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네요.”

그런 부모님들에게 저는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그럼 왜 전담으로 하는 기관에 보내지 않고 통합교육기관에 보내세요?”

“통합기관이 좋잖아요. 아이도 친구들이 노는 거 보는걸 더 좋아하고, 또 친구들에게서 배우는 것도 있잖아요.”

“그러면 비장애아이들은 왜 통합기관에 다니나요?”

“인성교육이지 않을까요? 장애가 있는 친구들을 도와주면서 바른 인성을 배우잖아요.”

◇ 장애아이들이 세상에 꼭 가르쳐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비장애아이들은 장애아이를 보며 세상의 다양성을 배웁니다. 어른들의 고착화된 편견관 다른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비장애아이들은 장애아이를 보며 세상의 다양성을 배웁니다. 어른들의 고착화된 편견관 다른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정말 그럴까요? 고작 유아기 아이들이 장애아이를 도와줄 수 있을까요?

유아기는 누구나 도움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런데도 장애가 없는 아이들에게 장애아이들을 ‘도와줘야 하는 존재’, ‘같이 놀아줘야 하는 존재’로 기억하게 하면 될까요? 그냥, ‘잘은 못해도, 잘 웃는 친구’, ‘못 걷지만, 소리 나는 악기를 좋아하는 친구’로 기억하면 안 될까요?

아이들은 고작 ‘바른 인성’을 배우려고 통합교육기관에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장애아이들을 통해 비장애아이들은 ‘다양성’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양한’ 사람들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존중’을 배우려면 일단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봐야 하지요. 다양한 성격의 친구들, 다양한 장애를 가진,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봐야 합니다.

장애아이들을 잘하는 것으로 포장하지 않고, 장애가 나을 것이라고 간절한 바람을 담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네가 말 걸어주면 말을 배울 수 있다는 희망고문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장애를 보여줘야 합니다.

때로는 힘들게 할 일도 있을 것이고, 무대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까만 옷을 입은 교사 손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교실을 헤집어 놓는 개구쟁이가 되어 있을 수도 있고, 때로는 누구보다 환하게 수업을 즐기는 그저 비슷한 내 친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장애의 이미지, 이미 대상화되어버린 고정관념을 아이에게 설명해주기보다, 아이 스스로 친구의 모습을 충분히 관찰하게 하고, 관심 갖게 하고 스스로의 눈으로 친구의 느림을, 때로는 못함을 알게 하면 됩니다.

마음이 아프겠지만, 발표회는 그런 시간 중 하나입니다. 내 아이가 못하는 것을 비장애아이들과 그 부모에게 보여주는 시간.

때론, 어쩔 수 없는 비교의 시선으로 아이를 보다 상처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래도 아이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며, 작은 성장을 발견할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이기에. 저는 힘들어하는 부모님들께 매몰차더라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더 많이 상처받고, 더 여물어지고, 더 단단해지라고.

저는 이 일을 겪은 후, 그다음 해 새 학기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며 부모님들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발표회를 포함해서 어린이집의 중대한 행사에 아이의 ‘장애’를 이유로 참석하지 않는다면, 통합어린이집에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행사를 불참하시려거든 퇴소하세요. 장애를 있는 모습 그대로 비장애아이들에게 보여줄, 비장애아이들도 ‘다양성’을 충분히 배울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친구가 우리는 필요합니다. 그러니, 자리를 양보해 주세요.”

그해 이후 장애아이들도 거의 대부분 결석 없이 행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못한다’는 말은 즐기지 못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부끄럽다의 다른 뜻도 아니지요. 결국 그건 장애에 대한 어른들의 프레임에 불과한 것 아닐까요?

*칼럼니스트 박현주는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해 특수학교에서 근무했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내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어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됐다. 화성시에서 장애통합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모님들과 함께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동참해, 현재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에서 장애영유아 발달상담도 함께 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 육아에서 시작해 아이들의 삶까지, 긴 호흡으로 함께 걸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풀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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