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제2의 정인이 사건 막으려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제2의 정인이 사건 막으려면?
  • 권현경 기자
  • 승인 2021.01.0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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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일반회계로 편성 조차 안 된 아동학대 예산과 인력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지난 10월 태어난 지 16개월 밖에 되지 않은 아동(정인)이 학대로 세상을 떠났다. 최근 언론을 통해 해당 사건이 자세히 알려지면서 '정인이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수많은 시민들이 아동학대방지 캠페인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에 동참하고 있다.

정인이 사건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세 차례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있었지만 끝내 아이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것. 어떻게 하면 이 같은 비극적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까.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지난 12월 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앞에 ‘16개월 영아 학대 사망사건’과 관련해 숨진 아이를 추모하는 근조화환이 쉰일곱 개 늘어서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12월 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앞에 ‘16개월 영아 학대 사망사건’과 관련해 숨진 아이를 추모하는 근조화환이 쉰일곱 개 늘어서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아동학대전담공무원 배치 등 공적 체계 강화할 것”

류경희 아동권리보장원 아동학대예방본부 본부장은 4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난해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세 차례나 신고돼 살릴 수 있었던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법을 강화해주세요’ 청원(20만 7861명 동의)에 대한 보건복지부 답변을 실행해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청원의 주요 내용은 “여러 차례 신고에도 아동이 보호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피해아동을 즉시 분리해 보호할 수 있는 법을 마련해 달라”는 것.

양성일 보건복지부 차관은 지난해 12월 16일 해당 청원에 대해 답했다. 재발을 막기 위해 전국 118개 시·군·구에 아동학대전담공무원 배치와 경찰, 학교 등 지역사회 유관 기관들과 긴밀한 협조 등을 약속했다. 특히 두 번 이상 아동학대 신고되는 등 학대가 강하게 의심될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아동을 즉시 분리해 ‘학대피해아동쉼터’ 등에 보호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정책은 아동학대에 대한 정부의 공적 책임 강화를 반영한 것이다. 류경희 본부장은 “그동안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아동학대 지역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긴 했지만 공적 권한이 없었다”면서 “이제 아동학대전담공무원 배치 등 공적 체계를 강화하면서 지자체 중심으로 촘촘하게 채워나가고 나온 대책을 잘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 “끝까지 전담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 필요” 한목소리

양성일 보건복지부 차관은 지난 12월 16일 해당 청원에 대해 답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양성일 보건복지부 차관은 지난 12월 16일 해당 청원에 대해 답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재학대 방지 등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에는 어떤 게 있을까.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인력과 예산 확보’를 강조했다. 정 교수는 “항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고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예산이 같이 수반되지 않으면 똑같은 일은 또 일어난다”고 경고했다.

아동학대예방 관련 예산은 법무부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이나 기획재정부 복권기금에서 편성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일반회계로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매번 나오고 있지만 2021년도 예산안에도 반영되지 않았다.

정 교수는 “(아동학대로 인한 사망사고는) 매달 두세 건씩 발생한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것도 있고 이번처럼 보도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건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러려면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면서 “누구를 처벌하기 위한 진상조사가 아니라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한 시스템 개선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슈가 되는 사건마다 여러 번 종합대책을 내놨다. 대책이 안 나온 건 없다. 인력 전문성 확보는 무슨 수가 있더라도 해야 할 것이고, 현장조사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하게 됐는데 경력이 있는 분을 민간경력 채용하든 일할 수 있는 분으로 채용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특히 인력 전문성 확보와 관련해, 정 교수는 “아동학대 조사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이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은 열악한 처우 때문에 이직률이 높고, 경찰관도 전문 또는 전담 경찰관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분이 오면 업무를 익히다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면서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선, 류경희 본부장과 공혜정 (사)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도 한목소리를 냈다. 류 본부장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이직률이 높고, 맡은 사례가 많으니 한 사례에 집중하기 어렵다. 경력이 쌓여야 보이는 게 있는데 열악한 환경이다 보니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인프라도 확대되고 상담원 처우 개선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국정감사에서 권칠승 더불어민주당(경기 화성병) 국회의원은 아동보호전문기관 내 학대 아동을 담당하는 사례관리자 한 명이 맡은 아동 수가 최대 94명, 평균 41명이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유럽의 경우 사례관리 담당자 1인당 12~17명 정도의 아동을 관리한다.

공혜정 대표도 현장조사 상담원의 전문성과 관련해, “현장조사 하러 나갔다가 죽이는 일이 많다. 천안 아동사건도 마찬가지다. 현장조사원, 아동학대전담공무원, 경찰도 순환 보직”이라면서 “전문가를 키워내야 한다. 체계적인 교육, 제대로 된 교육이 돼야 한다. 순환 보직으로는 안 된다. 끝까지 전담할 수 있는 전문가 양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부모체벌 금지법·지자체 조례 마련 등 적극적인 대응해야”

공혜정 대표는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으로 “가해자가 학대 행위를 하지 않도록 교육을 통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공 대표는 인식 전환을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공 대표는 “때리지 않고 하는 훈육, 폭력이 아이 인격 형성에 미치는 영향, 내 자식이라도 마음대로 때리면 안 된다는 것 등을 교육해야 한다”면서 “어떤 경우라도 때리면 안 된다는 ‘부모체벌 금지법’이 마련돼야 한다. 그래도 아동학대가 발생한다면 국가가 개입해 아동과 부모를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 대표는 지자체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했다. “아동복지법, 아동학대처벌법 등 관련  법은 대부분 지자체장에 달려있다. 지자체에서 조례를 만들어서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응해야 한다.”

정익중 교수와 공혜정 대표는 ‘두 번 이상 아동학대 신고 시 즉각 분리하는 것’과 관련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공 대표는 “한 번 학대한다고 한 번 신고 되는 게 아니다. 수없이 많은 학대 속에 한 번 학대신고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식으로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아동을 부모와 분리해서 얻는 상처는 어떻게 할 것이고, 분리할 곳도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인데, 이런 대책은 이 분야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 “국가 시스템의 사망선고…무능한 정부가 아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정치하는엄마들 등 관련 단체 열 곳은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합정동 홀트아동복지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실한 입양절차에 책임지고 사과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정치하는엄마들 등 관련 단체 열 곳은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합정동 홀트아동복지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실한 입양절차에 책임지고 사과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해 천안 아동학대 사망사건과 관련해 경찰, 지자체,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직무유기와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의 입장은 어떨까.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이번 정인이 사건은 천안 재학대 사망사건과 판박이”라면서 “아동학대 최초 신고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학대피해아동보호시스템이 왜 이 죽음을 막을 수 없었는지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이들에 대한 진정한 애도이자, 더 이상의 죽음을 막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김 공동대표는 “아이를 둘러싼 양육자, 지자체, 경찰, 아동보호전문기관 모두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아이는 부모만 잘 못 만난 게 아니라, 나라를 잘 못 만난 것이다. 무책임하고 파렴치한 경찰과 아이 하나 구해 내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가 아이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담당 경찰관들의 경징계는 비판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아이의 이름이 국가 학대피해아동시스템에 등록된 이전과 이후는 분명 달라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사례관리 중이던 아이가 사망했다. 국가 시스템의 사망선고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정인이는 입양아동이었다. 미혼모 단체에서는 입양기관의 역할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나섰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정치하는엄마들 등 관련 단체 열 곳은 지난해 12월 23일 서울 합정동 홀트아동복지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실한 입양절차에 책임지고 사과하라”고 촉구 한 바 있다.

최형숙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 대표는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입양을 보낸 엄마들 가운데는 아이가 잘 지내는지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최 대표는 “어떤 엄마는 매일 아침 아이 사진을 펼쳐놓고 아침마다 잘 지내기를 기도한다”면서 “가장 좋은 건 아이를 낳은 엄마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회여야 하고, 그럴 수 없어서 입양을 보내게 된다면 엄마의 의견을 반영한 가정으로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입양 문화도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익중 교수도 입양부모 심사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입양부모 심사 강화를 이야기 한다. 더 강화하는 건 불가능하고, (아동학대와 같은) 문제의 가능성을 줄이려면 입양기관과 법원의 가사조사관이 각각 따로 판단하고, 최종 결정은 가정법원 판사가 하도록 해야 한다. 세 차례 독립적 판단이 중요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한편,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정치하는엄마들 등 관련 단체 열 곳은 오는 8일 두 번째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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