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준이법' 시행 한 달, 고임목은 분실되거나 파손되거나...
'하준이법' 시행 한 달, 고임목은 분실되거나 파손되거나...
  • 김민주·권현경 기자
  • 승인 2021.01.2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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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경사진 주차장 고임목 설치 의무화, 잘 지켜지나 봤더니...

【베이비뉴스 김민주·권현경 기자】

경사진주차장의 고임목함과 벽돌형 고임목.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경사진주차장의 고임목함과 벽돌형 고임목.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솔직히 주차하는 차량마다 고임목을 사용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요즘 승용차는 사이드브레이크가 잘 돼 있어 괜찮아요.”

서울 동작구의 한 경사진 주차장을 돌며 고임목 이용을 확인하고 있는 기자에게 주차관리인 A 씨가 다가와 한 말이다. 

지난해 6월 25일 개정 주차장법(일명 ‘하준이법’)이 시행됨에 따라 경사진 곳에 주차장을 설치하려면 고임목 등 주차된 차량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는 시설과 미끄럼 주의 안내표지를 갖춰야 한다. 

‘하준이법’은 2017년 10월 한 놀이공원 주차장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차량에 치어 숨진 아이의 이름을 딴 주차장법으로 2019년 12월 국회를 통과했고, 지난해 6월 25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신규로 주차장을 설치할 때는 즉각 적용하고, 기존 주차장은 지난해 12월 26일까지 준비할 수 있도록 유예 기간을 뒀다.

하준이법이 본격 시행된 지 한 달 째, 현실에선 잘 적용되고 어떨까? 베이비뉴스가 서울시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서울시 25개 자치구의 경사진 주차장 총 295개 중 98%(292개)가 설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3일에 걸쳐 경사진 주차장 여섯 곳을 직접 취재해봤더니, 하준이법은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었다. 

◇ 벌써부터 분실된 고임목... 고임목 함을 열어봤더니 하나도 없어

동작갯마을 노상 공영주차장의 고임목함을 열어봤더니 텅 비어 있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동작갯마을 노상 공영주차장의 고임목함을 열어봤더니 텅 비어 있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고임목은 고정형과 이동형 두 종류가 있다. 고정형 고임목(카스토퍼) 설치가 원칙이나 주차가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경우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현지 교통 여건 등을 고려해 필요한 경우 이동형 고임목 등 비치가 가능하다.

먼저 이동형 고임목이 비치된 곳을 찾았다. 지난 20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동작구 동작대로 213에 위치한 ‘동작갯마을 노상 공영주차장’에는 ‘경사진 주차장 주의사항 안내판’이 잘 설치돼 있었고, 노란색 고인목 함도 눈에 들어왔다. 안내판에는 ▲반드시 주차브레이크 잠금장치 설정 ▲고임목으로 차량 고정(사용 후 원위치) ▲조향장치(핸들) 벽 방향으로 돌려놓기 등의 사용지침이 잘 적시돼 있었다.

고임목으로 차량을 고정하라는 안내문에도 불구하고, 경사진 곳에 주차 중인 여섯 대 차량 중 고임목을 사용한 차량은 1대뿐이었다. 아직까지 운전자들이 하준이법의 내용에 대해 숙지를 하지 못해서일까.

안내판 바로 옆에 설치된 노란색 고임목 함을 열어봤더니 고임목 함은 텅 비어 있었다. 고임목이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서울시 담당부서 측에 확인해봤더니, 고임목은 잘 분배했는데 분실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경사진 주차장 주의사항 안내판.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경사진 주차장 주의사항 안내판.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낮 12시께 도착한 서울 용산구 효창동 255-1에 위치한 ‘효창공원2 노상 공영주차장’. 맞은편에는 거주자전용주차장도 함께 있었다. 두 주차장에는 모두 133대의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그중 8대의 차량에 고임목이 잘 받쳐져 있었다. 승용차 1대, 대형트럭 7대. 대형트럭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리고 27대의 차량은 바퀴를 틀어 둔 채 주차돼 있었다.  

효창공원2 노상 공영주차장은 약 20분 정도 쉬지 않고 걸어야 주차장 끝까지 갈 수 있을 만큼 넓었다. 중간에 고임목 안내판이 설치돼 있지만 고임목함은 보이지 않았다. 주차관리인에게 물었더니, 고임목이 요금정산소 안에 있다고 했다. 요금정산소 문을 열어보니 한쪽 벽면에 고임목에 쌓여 있었다.

요금정산소 안에 있는 이 고임목을 이용하는 운전자는 얼마나 있을까. 주차관리인 B 씨는 “화물차는 운전자가 고임목을 가지고 다니면서 사용하는데 승용차 운전자는 거의 고임목에 대한 문의가 없다”면서 “운전자들에게 고임목을 설치하거나 바퀴를 돌려놓으라고 알리는 것 외엔 강제할 수 없다. 과태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개개인의 의식이 깨어나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주차장 이용자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으나 주차 중인 차량은 발견할 수 없었다. 효창공원2 노상 공영주차장 맞은편 거주자우선주차장에서 승용차에 고임목을 받쳐둔 차량을 발견하고, 차량에 적힌 전화번호로 기자가 전화해 고임목 사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무재(37) 씨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난해 용산구청에서 거주자우선주차장 이용자가 주차 시 고임목을 사용하지 않으면 차량을 뺀다고 해 사용하고 있는데 공용주차장에 고임목이 설치된 건 몰랐다”면서 “나 빼고 아무도 고임목을 사용하지 않는 것 같은데 사용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어떤 조치도 이뤄지지 않는 거 같다”고 말했다. 

용산구 관계자는 “지역주민에게 고임목 사용 안내문자를 보냈고, 공영주차장은 외부인이 주로 사용하므로 현수막과 안내표지판으로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초구의 경우, 거주자우선주차장에 등록된 이용자에게 직접 고임목을 배부하는 조치를 했다. 이처럼 각 자치구별로 운영 방법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공통된 규정은 없을까?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 26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국토교통부 메뉴얼상 거주자우선주차장의 경우처럼 주차장 이용자가 한정된 곳의 이용자를 대상으로 고임목 대여 등을 통해 보관·활용하도록 하는 방법도 가능하다”면서 “세부 규정이 정해진 건 없고 자치구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해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고정형 고임목… 51개 중에 14개는 이미 파손

고정형 고임목은 콘크리트 바닥에 쇠로 고정해서 설치한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고정형 고임목은 콘크리트 바닥에 쇠로 고정해서 설치한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고정형 고임목은 어떻게 설치돼 있을까. 고정형은 주차단위 구획당 2개의 고임목 설치하게 돼 있으나 주차구획에 차량 진·출입, 지형 여건 등으로 불가피한 경우에는 주차단위 구획당 1개를 설치하는 것도 가능하다. 

고정형 고임목 설치 운영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26일 오후 서울시 양천구 목동 520, 양천구 ‘거주자우선주차장’을 찾았다. 총 주차구획 51면에 차량 미끄럼방지를 위한 고정형 고임목이 설치했다고 했으나 빈 곳도 보였다. 고정형 고임목은 이동식 고임목보다 긴 형태로 콘크리트 바닥에 쇠로 고정된 채 도로 측면에 설치돼 있었다. 

이날 취재에는 양천구청 관계자도 함께했다. 양천구가 이동형이 아닌 고정형 고임목을 설치한 이유가 뭘까? 이 관계자는 “고임목을 설치할 때 편리성과 안정성, 분실 위험이 적은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고정형 고임목은 평행주차를 할 때 반경이 안 나와서 힘들 수 있어 고임목의 모양을 이동식처럼 직각 모양이 아닌 차량바퀴가 넘어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양천구 거주자우선주차장의 51구획에 설치된 고정형 고임목은 14개가 파손돼 있었다. 기자가 고임목을 손으로 들어보니 양쪽 나사가 모두 파손돼 쉽게 들어 올려졌고, 어떤 건 한쪽 나사가 파손돼 고임목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파손된 고임목 중에는 도로 밖 화단에 버려져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취재 도중 해당 주차장을 이용하던 이동철(64) 씨는 “고임목이 고정으로 설치된 곳에 주차하다 보면 차량바퀴가 고임목을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엔진 부화가 많이 돼 주차하는 게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 서울시 “고임목 이용법 홍보하고 각 자치구에 공문 보내 철저히 관리하겠다”

파손된 고정형 고임목.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파손된 고정형 고임목.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사흘 간 여섯 곳의 주차장을 돌아본 결과, 고임목이 분실돼 함이 비어있는 곳도 있었고, 고임목 수량이 주차공간 수보다 적게 들어 있는 곳도 있었다. 고정형 고임목이 설치된 곳은 벌써부터 고임목이 이미 떨어져 나갔거나 파손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점검 관리 매뉴얼은 있을까. 서울시 관계자는 “분실과 파손 등과 관련해선 통합된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고 자치구에서 관리하는 것”이라면서 “경사진 주차장 내 안전조치 완료 시점이 지난해 12월 26일로 일부 자치구에서는 아직 완료되지 않은 곳도 있고 홍보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아 이용률이 낮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경사진 주차장의 안전조치 이행 상태 확인 및 조치 요청하고 이동형 고임목의 경우, 이용자가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곳에 고임목함이 위치해 있는지, 고임목함 내 고임목이 충분히 구비 돼 있는지 관리 상태를 점검할 예정”이라면서 “이용자 대상 고임목 이용방법에 대해 충분히 홍보하고 각 자치구에 공문을 발송해 철저한 관리를 당부하겠다”고 전했다. 

◇ 전문가 “사이드브레이크 채우면 안 미끄러진다? 거짓말이다”

고임목을 잘 사용하면 주차된 차량이 미끄러지지 않을까. 그리고 요즘 차 기능이 좋아서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우면 미끄러지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일까.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26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사이드브레이크만 채우면 된다는 이야기에 대해 “말도 안 되는 말이다. 거짓말”이라고 잘라 말했다. 김 교수는 “사이드브레이크는 완벽하지 못하다. 풀릴 수 있으니 사이드브레이크 믿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어 “운전자의 운전습관이 바뀌어야 한다. 먼저 버스나 트럭과 같은 큰 차는 관성이 커 미끄러지면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쉬우므로 반드시 사이드브레이크를 채우고, 앞바퀴를 틀어서 연석(도로와 차도 경계)에 향하게 해 바퀴가 연석에 걸리게끔 해야 하고, 마지막으로 고임목까지 설치하는 게 완벽하다. 이 3단계를 다해주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로 적용되고 있는 주차장법(하준이법)과 관련해, 김 교수는 “고임목 의무 설치가 의미는 있지만 과태료 부과 등의 법제화를 진행하는 건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경사 각도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없고, 고임목의 종류, 형태, 개수 등에 대해 엄격하게 적용할 규정이 모호해 실효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법으로 만들어졌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두고 고임목 설치 필요성을 강조해 운전자들에게 주지시키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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