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하지만 어떤 어른들은 그 사실을 깜빡하는 것 같다.”
김소영 작가의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에 나오는 문장이다. 나는 그 사실을 깜빡하는 것을 넘어서 아예 모르고 있었다. 아니, 내가 그 사실을 모른다는 것조차 영화 ‘우리집’을 보고 깨달았다.
‘우리집’에는 “우리집은 진짜 왜 이럴까” 한숨 짓는 어린이들이 나온다. 하나는 부모님이 늘상 싸워서 고민이고, 유미와 유진 자매는 넉넉치 못한 가정 형편 때문에 자주 이사를 다녀야 해서 고민이다. 우연한 기회에 동네에서 만나 가까워진 셋은 ‘우리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기투합한다.
하나는 부모님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가족 여행을 제안한다. 일전에 가족 여행을 다녀온 후에 부모님의 사이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이미 이 가족에겐 별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오빠를 붙잡고 부모님께 가족 여행을 가자고 이야기하라고 설득한다. 가족끼리 같이 밥 먹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직접 요리도 한다.
유미는 늘 이사를 다녀서 친구 한 명 사귈 수 없는 생활에 지쳐있다. 이번 집에는 좀 오래 살려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집주인이 집을 내놓았다. 부모님이 지방으로 일을 하러 가셔서 빈집에서 동생 유진까지 보살펴야 하는 유미는 하나와 함께 이사 방지 계획을 짠다.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고, 집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이 집의 단점을 늘어놓고, 집을 한껏 어지럽혀 놓는다.
세 어린이는 자신들을 막는 벽 앞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어른들이 쌓아놓은 벽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하나가 가족 식사를 꿈꾸며 가스불을 당겨도, 집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고성이 끊이지 않는다. 유미가 필사적으로 집주인과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훼방을 놓아도, 유미네 집을 마음에 들어하는 세입자가 등장한다.
영화에는 하나와 유미, 유진이 종이 상자를 쌓아서 집을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그 종이집이 내게는 아이들이 꿈꾸는 ‘우리집’에 대한 비유로 다가왔다. 아이들이 공들여 만들어도 어른이 툭 건드리면 무너지는 게 종이집이니까. 실제로 아이들은 나중에 모종의 이유로 종이집을 걷어차면서 말한다. “이런 건 왜 만들어 가지고!” 내게는 그 대사가 “있지도 않은 우리집 같은 건 왜 꿈꿔 가지고!”로 들렸다. 어른들의 세계는 견고하고, 아이들이 그 세계에 균열을 내는 건 요원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 어린이들의 고군분투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불과한 걸까. 어린이들은 바위를 치다가 형체도 없이 부서지는 계란이 아니다. 어린이들은 불가능 속에서 기어코 가능을 만들어낸다. 그건 하나의 부모가 극적으로 화해한다거나, 유미가 자기 집을 지켜내는 결말로 나타나지 않는다. 하나와 유미의 집이 어떻게 되는지는 끝까지 모호하다.
다만, 어린이들은 바위를 치면서 스스로 바위처럼 단단해진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환경 안에서 어떻게든 자신이 원하는 가족의 그림을 그려보려고 몸부림치면서, 어린이는 성장한다.
영화는 어린이를 마냥 귀엽다며 대상화하지도 않고, 덮어놓고 약한 존재라고 치부하지도 않는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어린이들의 고민을 뒤따라가는 영화를 보면서 뒤늦게 깨달았다. ‘쟤네들도 어른이랑 똑같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하나의 가족은 처음으로 한 식탁에 모여앉는다. 하나는 가족들을 위해 갓 지은 밥에 따끈한 달걀 프라이를 올려 계란밥을 만든다. 그리고 말한다. “우리, 밥 먹자.” 12살 하나가 그토록 원했던 가족 식사가 성사되는 장면이다.
이 대단찮은 식사를 갈망해왔던 하나의 모습이 슬퍼보일 수도 있다. 아니면 어린 나이에 밥상을 차리는 하나가 대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슬퍼하지도 대견해하지도 않기로 했다. 하나의 삶도 내 삶과 똑같으니까. 삶의 난관을 통과하며 성장하는 것이 어린이와 어른에게 똑같이 주어진 삶이기에.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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