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를 당하던 아이들은 구출 후에 어떻게 살까. ‘내 이름은 꾸제트’는 그 질문에 답을 해주는 영화다. 꾸제트는 아빠가 없고, 엄마는 늘 맥주를 입에 달고 살며 아들을 방치한다. 어느날, 엄마는 술에 취해 꾸제트를 때리려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죽는다. 엄마가 죽은 후에야 학대 상황에서 벗어나게 된 꾸제트. 경찰 레이몽은 오갈 데 없어진 꾸제트를 보육원에 보낸다.
보육원에는 다양한 이유로 부모와 떨어져 살게 된 아이들이 모여 산다. 학교에 간 사이 엄마가 아프리카로 추방된 베아, 온종일 냉장고 문을 여닫는 강박증을 보이는 엄마와 분리된 주주베, 강도짓을 하는 아빠를 둔 아메드, 딸에게 알 수 없는 짓을 저지르고 감옥에 간 아빠를 둔 알리스.
보육원에 모인 아이들은 모두 무책임한 부모 혹은 아이를 돌보지 않는 사회 제도의 희생양인데, 이 영화에는 특이하게도 나쁜 어른들은 얼굴이 안 나온다. 아이들이 학대를 당했던 정황은 화면으로 보여주지 않고, 보육원 친구 시몽이 꾸제트에게 설명하는 화면으로 간단히 끝난다. 유일하게 화면에 등장하는 꾸제트의 엄마도 술 마시는 뒷모습과 화를 내는 목소리만 나올 뿐이다.
그러나 이 정도만 제시해도 아이들이 얼마나 외롭고 슬프고 괴로운지는 충분히 설명이 된다. 베아는 보육원 마당에 차 소리만 들려도 “엄마!”하고 소리치며 뛰어나오고, 알리스는 머리카락으로 늘 한쪽 얼굴을 가리고 다니며, 주주베는 어딘지 늘 불안해 보이니까. 폭력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어른들의 폭력이 아이들에게 드리운 그림자만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폭력에 대해 폭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폭력적이지는 않지만 침울한 영화인가. 아니다. 아이들의 보육원 생활은 우울함 속에 반짝이는 즐거움과 행복이 있다. 이들은 스키장에 놀러가서 춤을 추고, 눈싸움을 하고, 보육원 마당에서 함께 뛰어논다. 엄마의 편지를 애타게 기다리는 시몽을 친구들이 위로하고, 함께 살기 싫은 고모에게 끌려가는 위기에 처한 까미유를 시몽이 도와준다.
가정에서 고통 받았던 아이들은 가정을 벗어나서야 자유로워진다. 그놈의 가족이 없어도, 혹은 그놈의 가족이 없는 덕분에, 아이들은 또래 집단 속에서 서로 부딪치고 부대끼고 안아주며 성장한다. 꾸제트는 까미유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가끔 내가 커서도 엄마와 사는 꿈을 꿔. 엄마는 맥주 마시며 혼잣말을 하고 나도 술을 많이 마셔. 그런 일이 안 생기게 돼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물론 아직 어린 이 아이들이 단순히 가족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부재하는 대신, 이 아이들에게는 안전한 울타리가 돼 주는 어른들이 버티고 있다. 나쁜 어른들은 얼굴이 나오지 않는 반면, 얼굴이 나오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사려깊다.
둘만 있으면 늘 소리를 지른다는 까미유의 고모는 고아가 된 까미유를 데려가려고 애쓴다. 까미유는 고모와 함께 살기를 거부한다. 이 정도 상황쯤 되면 보육원보다는 친척이 낫다며 아이를 고모에게 보낼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보육원 원장의 태도는 단호하다. “까미유의 의견을 존중해 주세요.” 까미유의 거취를 결정하는 판사도 아이라고 까미유를 무시하는 법이 없다.
경찰 레이몽은 꾸제트를 보러 자주 오겠다는 약속을 성실하게 지킨다. 그리고 꾸제트와 까미유를 입양하기로 한다. 그러나 레이몽의 태도는 시혜적이지 않다. 그는 아이들이 마냥 기뻐하며 자신을 받아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는 아이들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거라며 꾸제트와 까미유에게 결정권을 넘겨준다.
내일 모레는 어린이날이다. 벌써부터 우리집에는 쌍둥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는 친척들, 양가 조부모님들의 연락이 왔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어린이날’이라고 하면 ‘가족들’에게 선물 받고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만 상상했다. 거기까지가 어린이에 대한 내 상상력의 한계였다.
「내 이름은 꾸제트」가 내게 말해줬다. 세상에는 다양한 상황에 처한 다양한 어린이들이 있다고. 부모와 함께든, 양부모와 함께든, 한부모와 함께든, 혹은 다른 양육자와 함께든, 가정에 있든 보육원에 있든,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어린이날이 됐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아이들 곁에, 꾸제트 옆을 지켜준 것과 같은 든든한 어른들이 함께 있어야 할 것이다.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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