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야 할 이름 '정인이'" 지하철광고 누가 냈나 찾아봤더니...
"잊지 말아야 할 이름 '정인이'" 지하철광고 누가 냈나 찾아봤더니...
  • 권현경 기자
  • 승인 2021.05.03 16:07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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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엄마들, 2300만원 모아서 광고 진행..."해외에서도 지켜보고 있어요"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역 전자 광고판에 게재된 정인이 광고.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역 전자 광고판에 게재된 정인이 광고.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나는 천사가 되어 이 세상의 나 같은 아이들을 지키고 싶어요.” (Jung-in, Voice from the World Justice for Jungin)

지하철역 3호선 남부터미널역 내 전자 광고판에는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의 환한 얼굴과 함께 이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지난 1월 초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을 통해 ‘정인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전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온라인을 통해 #정인아미안해 챌린지가 정치인과 연예인, 시민들 사이로 퍼졌다. 

지난 1월 13일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을 시작으로 3개월만인 지난달 14일 1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양모 장 씨에게 사형을, 양부 안 씨는 7년 6개월 구형했다. 정인이 사건 양부모 혐의에 대한 재판부 최종 선고일은 5월 14일로 예정된 상황. 

앞서 열린 다섯 차례 공판 날,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는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과 시민들 그리고 외국인 엄마들까지 양부모의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가 이어졌다. 그런데 지하철역 이 광고는 누가, 언제, 왜 하게 된 것일까. 

광고판에 적힌 광고문의 전화번호로 연락해 광고주를 찾아 나섰다. 연락한 지 3~4일이 지나 한 남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지난달 23일 오후 3시 서울 서초동의 한 식당에서 광고를 의뢰한 배문상 씨를 만났다. 식당을 운영하는 배 씨는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으로 정인이 관련 동영상 만들어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 게재, 시위 참석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 “정인이 광고…한 달 이상 400여 개 2300만 원”

서울남부지방법원 앞 버스정류장 광고판에 게재된 정인이 광고.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서울남부지방법원 앞 버스정류장 광고판에 게재된 정인이 광고.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정인이와 관련해 지하철역에 광고를 의뢰하신 것으로 압니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정인이 사건이 지난 1월 방송을 통해 알려진 직후 인스타그램을 통해 관련 사진을 게재하기 시작했어요. 1월 말경 해외엄마로부터 인스타그램 디엠(DM·Direct Message)을 받았습니다. 거의 한 달 가까이 이 엄마들 질문에 답을 해주면서 정보공유를 했죠. 우리나라의 법과 시스템이 다르다 보니 설명하는 게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러다 3월 중순에 이분들이 정인이 광고를 하고 싶다고 알아봐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견적 받아 전달해주고 업체랑 사이에서 조율하는 역할을 했어요. 광고비는 바로 모금해서 보내주셨어요.”

-광고는 어디에, 기간은 얼마 동안 하고, 비용은 얼마나 들었나요? 

“광고가 종류도 다양하고 게재하는데 절차도 복잡하더라고요. 400여 개 광고를 평균 한 달 동안 한다고 보시면 돼요. 장소마다 기간은 조금씩 차이가 있어요. 비용은 총 2300만 원 정도 들었습니다. 

장소는 서울남부지방법원 앞 버스정류장이요. 여긴 4월 6일부터 시작해서 6월 11일까지고요, 지하철역(환승역) 도배광고는 16개역(서울역, 시청역, 종각역, 종로3가역, 구파발역, 압구정역, 신사역, 성신여대역, 고속터미널역, 남부터미널역, 양재역, 한성대역, 혜화역, 명동역, 신용산역, 총신대역) 377개, 4월 7일부터 5월 6일까지예요. 

지하철역 기둥광고는 20개역(목동역, 오목교역, 영등포구청역, 공덕역, 여의도역, 종로3가역, 을지로4가역, 왕십리역 군자역, 천호역, 철산역, 논현역, 고속터미널역, 노원역, 상봉역, 장지역, 연신내역, 어린이대공원역, 합정역 2곳) 40개, 4월 9일부터 5월 8일까집니다.

명동 옥외 광고(명동지하쇼핑센터 18번 출구)는 4월 10일부터 14일까지 5일간 나갔어요. 이곳에는 정인이 생일인 6월 10일과 사망일인 10월 13일에 추가 광고가 예약돼 있어요.”  

-그런데 해외엄마들은 왜 정인이 광고를 하고자 한 건가요?

“해외에서도 방송 이후 유튜브 등을 통해서 정인이 사건을 알게 됐고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고 있었나 봐요. 왜 정인이 관련 뉴스가 안 나오는지, 잊혀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더라고요. 재판이 얼마 안 남았는데 너무 안타깝다면서 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가 광고를 제안하셨어요.” 

◇ “정인이 위해…전 세계가 이 재판을 보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지난달 14일 결심공판 날,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는 캐나다, 미국, 말레이시아, 홍콩 나라 이름을 적힌 피켓을 들고 사형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달 14일 결심공판 날,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는 캐나다, 미국, 말레이시아, 홍콩 나라 이름을 적힌 피켓을 들고 사형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진행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광고 의뢰하시면서 어떤 게 가장 힘드셨는지요?

“해외엄마들이 꼭 광고를 하겠다고 해서 그 돈을 어떤 마음으로 모아서 준 지 아니까 제 입장에서는 광고 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그 부담이 컸어요. 처음에는 효과를 알 수도 없고, 하지 말라고 말리다가 정인이를 어떻게든 알리고자 하는 의지가 너무 강해서 어쩔 수 없더라고요. 

브레이크 타임 이용해서 업체 연락해 견적 받고, 광고회사 직원이랑 역 고르고, 광고판 위치 도면 보면서 위치 정하고 3일 동안 정말 미치는 줄 알았어요. 도배광고는 패키지인데 기둥광고는 위치를 일일이 다 골라야 하더라고요. 국토교통부, 서울시 허가받고 그러고 나서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광고 문구와 디자인은 누가 한 건가요?

“나는 천사가 되어 이 세상의 나 같은 아이들을 지키고 싶어요.” (Jung-in, Voice from the World Justice for Jungin) 해외엄마들이 만들었어요. 디자인까지요.”

-‘Voice from the World’는 단체 이름인가요?

“광고회사에서 단체명을 넣어야 한다고 해서 중국엄마들이 많아서 ‘Voice from China’를 제안했더니 중국은 안 써도 된다고 정인이를 위해서 전 세계가 이 재판을 보고 있다는 걸 전하고 싶다고 했어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고요. 보통 돈을 쓰면 자기네들 이름을 알리려고 하는데,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아야 정인이에게도 도움이 되고 다른 아이들도 살릴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인 거죠. 실제 외국은 우리나라보다 아동학대 처벌도 강하고 아이에 대한 생각도 달라서 이번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지켜보고 있어요. BTS 얼굴에 먹칠하고 있는 거죠. 문화콘텐츠 보고 좋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은 왜 이 모양이야?’ 정인이 이후에도 자꾸 아동이 사망하니까요.”   

-해외엄마들과는 어떻게 소통하고 계신가요?

“위챗(Wechat·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인 텐센트가 서비스하는 모바일 메신저)이라고 우리나라 카카오톡 같은 게 있어요. 오픈대화방 같은 건데 한 그룹에 500명이 들어갈 수 있어요. 처음에는 1000명 정도로 두 그룹 있었는데, 최근엔 6000명으로 늘었어요.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캐나다 등 거주하는 지역별로 독립해서 그룹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각 그룹 대표엄마들이 모여 있는 방에 제가 초대됐죠. 저까지 포함해서 그 방엔 지금 15명이 있어요.
 
위챗에서 메시지를 보내면 각자 자기네 말로 번역이 되니까 대화에 큰 무리가 없어요. 바로 해석이 되고 번역된 내용이 대화방에 남아있어요. 제가 정인이 관련해 게시물 만들어 파일을 올리면 이분들이 영어로, 중국으로 번역해서 만들고 인스타그램에 게시하고 퍼 나르세요. 이 게시물을 보고 관심 가지고 대화방에 들어오려고 대기하고 있는 분도 계신다고 하더라고요.” 

◇ “남의 나라 아이 하나 죽었다고 이럴 수가 있나?”

배문상 씨는 해외엄마들의 바람에 대해 "‘정인이’가 잊혀지는 걸 제일 두려워해요. ‘정인이의 죽음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가 가장 크고요, 엄마 아빠가 처벌받고 감형받지 않길 바라고 있어요"라고 전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배문상 씨는 해외엄마들의 바람에 대해 "‘정인이’가 잊혀지는 걸 제일 두려워해요. ‘정인이의 죽음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가 가장 크고요, 엄마 아빠가 처벌받고 감형받지 않길 바라고 있어요"라고 전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해외엄마들 반응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남의 나라 아이 하나 죽었다고 이럴 수가 있나? 그랬어요. 그런데 중국엄마들의 경우 산아제한 때문에 낳고 싶은 아이도 못 낳고 아이가 귀한데 멀쩡한 아이를 죽였다고 하니까 충격을 받은 것 같아요.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것 같아요. 실제 정인이 사건 접하고 중국인 중에 임산부가 유산하기도 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어요.

이분들은 광고 외에도 우리 법원에 양부모 사형처벌 진정서를 4444건 제출했어요. 그다음에는 8666건을 제출했고요. 8은 좋은 의미, 6은 악마의 숫자라는 의미래요. 꼭 그렇게 처리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은 거죠. 진정서도 처음에는 워드로 친 게 많았는데 두 번째는 한글로 자필로 써서 보낸 분도 있어요. 손으로 쓴 걸 스캔하거나 사진으로 찍은 파일을 이메일로 저한테 보내주시면 제가 인쇄해서 법원에 제출했어요. 그날 하루 가게 장사 안 하고 저희 직원하고 인쇄한 걸 펼쳐놓고 사인 없는 것 등 선별해서 빼고 정리해보니까 딱 8666건 나오더라고요. 진짜 고생했어요(웃음).”

-해외엄마들의 바람은 뭔가요?

“해외엄마들은 ‘정인이’가 잊혀지는 걸 제일 두려워해요. 많은 분들이 정인이 광고 보면서 사진도 같이 찍고 내국인의 참여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고요, 더 이상 죽는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사회적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이 엄마들의 활동에는 ‘정인이의 죽음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가 가장 큽니다. 그 때문에 양부모 재판 결과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거죠. 양모 장 씨에게는 사형을 구형했지만 반성문 쓰고 하면서 감형되고 나중에 특별사면이라도 되면 안 되잖아요. 양부 안 씨의 경우 학대치사로 됐는데, 장 씨가 살인죄가 됐으면 안 씨는 살인방조죄가 돼야 맞죠. 엄마·아빠가 같이 처벌받고 감형되지 않길 바라고 있어요.”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양부모들은 시간을 끌면서 관심이 줄고 잊혀지기를 기다리겠지만 저는 정인이 사건이 종결될 때까지는 이분들과 관계가 이어질 것 같아요. 이후에는 크게 논의된 바는 없지만 전 세계 아이들을 살리는 것에 대해 일해보자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구체적으로는 아니고요, 같이 유엔아동권리협약 내용 등 같이 살펴보면 어떨까 합니다.”

배 씨는 2019년 3월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에 가입했다. 한 달 정도 협회 온라인 카페에 게재된 글만 읽다가 너무 화가 나서 댓글을 달기 시작하면서 활동을 하게 됐다. 지난 2년 동안 아동학대예방상담사, 아동심리상담사, 아동복지상담, 독서지도사 등 자격증도 두루 땄다. 배 씨는 정인이 관련 시위에 한 번도 빠진 적 없이 다 나갔다. 오는 14일 1심선고까지 인스타그램을 통해 게시물을 게재하고 지속적인 국내외의 관심을 촉구할 계획이다.

끝으로 배 씨는 해외엄마가 어설픈 한국어로 ‘천개의 바람이 되어’ 노래를 부른 동영상을 보여줬다. 정인이를 위한 해외엄마들의 간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개에 바람 천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천개의 바람이 되어’ 노래 가사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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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so**** 2021-05-09 22:42:24
정말 슬픈 일을 누구보다 훨씬 슬퍼해 주시는 외국의 엄마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하네요. 앞으론 이런일 없게 저희도 열심히 행동하겠습니다.

mhjung**** 2021-05-08 00:00:06
여론이 들끓을 때는 뭔가 할 것 같다가
여론이 잠잠해지니 싹 다 잊어버리는 힘있는 분들,
잘난 그 분들보다 외국의 엄마들이 훨씬 낫네요
감사하고 부끄럽습니다

jihyeo**** 2021-05-07 15:18:49
그러게요 점점 잊혀져가고있는것같아 마음이 안좋긴하더라고요
셋째를 낳은 지금 해외에 있는 엄마들께 감사하네요
이런부분은 배워야하지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iruka_92**** 2021-05-05 03:22:36
정말 정인이사건이 장씨 안씨 바램데로 사람들에게 잊혀져
관심이 소홀해진건가요.!!저또한 외국 살아서 기사를 찿아보는데
별로없어서 걱정도 되지만 정인이를 위해 힘써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꼭 장씨 사형 안씨 무기징역 대법원 판결될꺼라 믿습니다.

timeytim**** 2021-05-04 11:54:37
아동학대방지협회에서 정인이 사진에 저작권을 얘기하며
다른 사람들이 잘 쓰지 못하게 하고, 수천만원의 후원금을
어디에 어떻게 쓰고 있는지 제대로 알리지않는다고
여러 유튜버들이 말하고 있는데, 이러한 논란에 대해
아동학대방지협회에서는 투명하게 공개적으로 소명해주시고
기자분께서도 이와 관련하여 취재하여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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