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전아름 기자】
아이를 낳은 모든 여성은 우선은 '엄마'가 된다.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지는 그 자격을 사회적으로 거세당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1950~60년대 서구 사회의 여성들이다. 이 당시 결혼하지 않고 아이 낳은 여성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여성이나 범법자처럼 여겨졌다. 미혼모의 아이는 무조건 입양됐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 낳은 여성에겐 아이를 선택할 권리가 없었다. 서구사회의 이런 흐름은 고스란히 국내에 유입됐고 지금껏 이어졌다.
'미혼모성'을 억압의 역사에서 조명한 강연이 열렸다.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는 제3회 한부모가족의날을 기념하며 지난 3일 서울시립대학교에서 '미혼모의 어제와 오늘'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하고, 미혼모 당사자 두 명의 생생한 이야기도 전달했다.
이날 강연에는 권희정 작가가 섰다. 권희정 작가는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박사 논문 '한국의 미혼모성에 관한 연구: 근대 이후 가족과 입양제도의 변화 및 실천을 중심으로'를 완성했다. 현재 1인 출판사 안토니아스를 설립하고, 미혼모의 이야기를 수집한다. 최근 '미혼모의 탄생-추방된 어머니의 역사'를 출간했다.
◇ 서구에서 미혼모는 치료해야 할 환자이자 벌받야 할 범법자였다
권희정 작가는 1950~60년대를 '베이비 스쿱 시대(Baby Scoop era)'라고 명명하며 "이 시대는 성 역할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중산층 핵가족에 대한 지식과 이상이 만들어지던 이면에서 자행된 미혼모성 억압의 역사"라고 설명한다.
권 작가에 따르면, 이 시기 서구에서 임신한 여성은 시설로 소리소문없이 ‘보내지고’, 아이를 낳고 다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사회로 돌려‘보내졌다’. 그들이 출산한 아이는 결혼한 중산층 핵가족으로 입양 ‘보낸다’. 미혼모는 그렇게 다시 결혼에 적합한 여성성을 획득한다.
"이 시기 가족사회학자 윌리암 구드는 미완성 가족의 형태를 여섯 가지로 나누고, 그 중 첫 번째 미완성 가족으로 '미혼모 가족'을 말했다. 합법적 부친의 결여, 합법적 혼인의 결여, 적법성 결여(혼인을 거치지 않은 출산)가 그 이유다."
그렇다면 이 서구사회의 흐름은 어떻게 국내에 유입됐을까. 핵심은 전후사회 복구에 있다. 권희정 작가는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역사는 미혼모에게 비우호적인 시각에서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미국 사회복지학자가 전후 한국사회를 돌아보고, 한국사회가 빨리 전쟁을 극복하려면 빨리 서구의 사회복지학이 들어와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미네소타에서 석사 과정까지 마친 세 명의 학자가 서울대학교에 사회복지학과를 만들었다.
그 전에도 물론 사회복지학과는 있었으나 종교학과 소속이었다. 이제 사회복지를 종교가 아닌 과학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관점으로 전향해 종교학과에서 분리한 후 사회복지학과가 설립됐다. 미혼모 시설을 짓고, 미혼모의 아이는 무조건 입양을 보내던, 미혼모를 병리적으로 바라보고 미혼모는 벌을 받아야 할 존재라는 틀을 갖고 있던 서구사회의 '베이비 스쿱' 모델을 그대로 갖고 들어온 것이다."
◇ 1970년대 정부 미혼모 해결 방법 '여성 친권 포기 전문가' 초빙
이런 흐름에 따라 1970~80년대에는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실제로 '정상적 생애주기'를 배운다. 졸업-취업-약혼-결혼-출산으로 구성된 정상적 생애주기의 흐름이 뒤바뀌거나, 생략하면 불행해진다고 가르친 것이다.
'미혼모'라는 단어도 이 시기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정부가 미혼모 문제 해결을 위해 상담사를 양성하고 기관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정부가 미혼모 문제 해결을 위해 행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금전적 지원? 아니다. 해외에서 '여성 친권 포기 전문가'를 데려오는 일이었다. 1980년대에는 미혼모에 대한 차별이 극심해졌다. 신문에 미혼모 얼굴이 실릴 때면 범죄자처럼 눈을 가린 사진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선 1990년대 후반, 해외로 입양됐던 해외입양인이 국내에 들어와 친부모를 찾았다. 입양인들이 알 권리와 미혼모 친권운동이 태동하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각종 미혼모 단체가 설립된다. 1999년에는 아이를 낳은 후 아이를 선택하려 했으나 억지로 입양을 강요당한 엄마 진현숙 씨가 얼굴을 드러내고 미혼모의 친권을 주장했다. "내 아이 내가 키운다는데 왜 못 키우게 하느냐"가 진현숙 씨의 주장이었다.
권희정 작가는 이젠 "미혼모가 입양이냐 양육이냐를 선택할 때 경제적 문제나 사회적 낙인은 차후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정상가족’에 대한 믿음이 스스로 얼마나 강한가, 이것을 내가 버릴 준비가 돼 있나에 따라 입양과 양육을 선택한다. 주변에 이른바 '정상가족'만이 해답이라면, 양육을 선택하기 어려울 것이나, 많은 지지세력이 있다면 양육할 수 있다"라며 "이젠 다양한 가족에 대한 긍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어떤 가족이 정상가족이냐라는 자문에 권희정 작가는 "변하는 가족이 정상이다. 그 점에 사회적 수용도를 높이는 게 필요하다"라고도 덧붙였다.
◇ 혼자 키우기 두려웠지만, 없는 게 나은 아빠도 있다
권희정 작가의 강연 이후 이어진 2부에서는 두 명의 미혼모 당사자가 연단 앞에 섰다. 스물일곱 살 김하린 씨는 열여덟 살에 엄마가 됐다. 딸은 현재 10살이고, 하린 씨는 간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마흔한 살 김선영 씨의 아이는 열세 살이다.
하린 씨는 같은 반이었던 남자친구와 관계를 맺고 임신을 했다. 남자친구는 하린 씨의 상황을 모른 척했다. 중절수술 시기를 놓치고, 아이가 태동을 시작했다. 하린 씨는 태동을 느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입양을 보내더라도 낳아야겠다고.
아이를 낳고 보니 너무 예쁘더란다. 아이 아빠가 찾아왔다. 다시 받아줬지만, 폭력과 외도가 반복됐다. 이런 사람 밑에서 아이가 자라봤자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 아빠와 연을 끊고 지금껏 혼자 키우고 있다. "없는 게 나은 아빠도 있잖아요"라고 하린 씨는 말했다.
선영 씨는 아이 6개월 때 아이 아빠와 헤어졌다. 책임을 회피하려는 그를 기다려도 보고, 매달려도 보고, 돈도 빌려줬다. 이유는 단순했다. 아이를 혼자 키울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이 사람은 내 아이의 아빠로서 자질이 없다.' 선영 씨는 미혼모의 삶을 선택하고, 이 남자를 버리기로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선영 씨는 경제적 어려움과 마주해야 했다. 그때 선영 씨는 스스로의 상처를 추스르기에도 벅찼다. 근데 갓난아기도 키워야 했고, 돈도 벌어야 했다. 이후 미혼모가족협회에서 조금씩 자립을 준비하고 아이가 5~6세 되던 즈음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친언니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피부관리사 자격증을 땄다.
고등학생이었던 하린 씨는 어땠을까. 학교에선 자퇴를 종용했다. 대학교에 갔는데 학비가 없어서 1학년 마치고 자퇴했다. 취업했는데 고졸 미혼모라는 낙인에 사람들이 얕잡아보기 일쑤였다. 성추행도 당했다.
나한테 왜 그랬냐고, 하린 씨가 사장에게 물었다. 사장은 "딸 같아서 그랬다"라며 "네가 남편이 없으니까"라고도 했다. 어디서부터 편견이 시작된 것일까 하린 씨는 궁금했다. 그래서 대학교에 다시 들어왔고 간호학과 4학년이 됐다.
◇ 미혼모 인식 변화요? 느껴요, 내가 그 변화 만들어가고 있으니까요
두 사람 모두 아이 키운 지 10년이 넘었다. 강산이 변하는 세월. 두 사람의 삶도 변하고, 우리 사회도 많이 변했다. 이들이 체감하는 미혼모 인식은 어떨까. 어떤 보완이 더 필요할까?
"친구들이 이렇게 말해요. 제가 이렇게 열심히 잘 살 줄 몰랐대요. 제가 불행할 줄 알았대요. 옛날에 아이 처음 낳고 아무리 미혼모 제도 지원을 네이버에 검색해봐도 뭐가 안 나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정말 많아졌어요. 제가 지금 수원에 사는데, 서울에서는 미혼모에게 가사지원 서비스를 해준대요. 청소, 빨래, 설거지 같은 것만 도와줘도 큰 도움이 되죠." (김하린)
"아직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곱지는 않더라고요. 세금으로 우리 같은 사람 도와준다고 부정적으로 보는 분들도 계세요. 하지만 저는 이미 변화가 시작됐다고 생각해요.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려면 내가 잘 살아야, 내가 성장해야 한다. 내가 열심히 살다 보면, 주위에서 알아줄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요. 그런데 저만 이렇지 않잖아요. 열심히 살아가는 엄마들이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변화를 끌어내면서 우리 사회를 차근차근 바꿔나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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