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으로 아이와 함께 지하철을 타봤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아이와 함께 지하철을 타봤습니다
  • 칼럼니스트 이샛별
  • 승인 2021.05.2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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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듣는 엄마가 아닌 더 '잘' 보는 엄마로 성장하기] 언제쯤 불편이 사라질까요?
버스 안에서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샛별
버스 안에서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샛별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늘 신경을 쓰는 필자는 중증 청각장애로,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소리를 들어보지 않아서, 지하철의 목적지 알림음과 버스 도착 안내 음성도 잘 모르기 때문에 내려야 할 곳을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창문을 수시로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버스와 지하철의 전광판은 도착지를 안내하고, 광고도 짧게 나오고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아예 꺼져 있는 곳도 있어, 청각장애인에게 무용지물이다. 그렇게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많은 신경을 써야 하는데 내 아이와 함께 하는 길은 몇 배 더 힘들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도전했다.

어버이날을 맞이해 고속버스를 타고 친정 부모님 댁으로 갔다. 자가용을 타고 아이는 카시트를 태우고 안전하게, 편안하게 오갔던 이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차원이 달랐다. 한창 호기심이 많은 시기인 4살 아이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바람에 기진맥진할 정도였다. 나의 찰나로 아이가 다칠까 싶어, 아이의 손을 꼭 잡으며 당부했다. 첫 번째 난관인 지하철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코로나19의 감염 위험이 높았지만 아이의 마스크를 제대로 확인하고 손을 꼭 잡았다. “지하철을 타고 갈거야”라고 몸짓으로, 손가락으로 지나가는 지하철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처음 보는 지하철을 향한 아이의 시선은 빛났다. 지하철을 타는데 빈 좌석이 없었는데 다행히 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신 어르신 덕분에 아이는 앉아서 갈 수 있었다. 보통 사람들의 인식은 그렇다. 요즘 들어 ‘노키즈존’이 늘어나는 추세인 만큼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공공의 시설에서 아이가 어떤 인식을 주는가를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불편했다. 더욱 청각장애인 엄마는 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불편을 주는가에 대해 알기가 어려워 조심스러웠다. 목적지인 ‘고속터미널역’에 거의 도착하려던 지점에 아이는 오래 앉기가 불편한지 자꾸 열리는 문 앞으로 가고 싶어했다. 잘못하면 문 틈에 끼일까 싶어 아이를 붙잡으며 최후의 수단인 휴대폰으로 만화 보기 찬스를 사용했는데 그것도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빠르게 지나가는 바깥 풍경이 아이의 눈길을 사로잡은 이유일까.

고속터미널역에 내려서 미리 예약해둔 버스 승차장을 확인하려던 찰나, 아이는 내 손을 뿌리치고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불과 출발 시각 2분전이었다. 발버둥치는 아이를 억지로 안아들어 발바닥에 불날 정도로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나와 아이가 버스로 올라타자마자 버스 문이 닫혔다. 모바일 티켓을 기계에 대보니까 소리는 나는데, 잘 인식이 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싶어 재차 해보려는데 아이가 문제였다. 출발하려는 버스 안에서 넘어질까 싶었다. 조급해지는 마음을 누르고 다시 해보니 이제야 티켓이 인식되고, 비로소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모두가 이용하는 대중교통 안에서 아이가 민폐가 되지 않게 예의와 질서를 가르쳐야 하는 건, 일이었다. 오랫동안 한 자리에 앉기 어려운 어린 아이는 더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에 난관이 많았다. 몇 분동안 숨을 고르고 나서 남들에게 들릴세라 조용히 목소리를 낮춰 아이에게 속삭이며 간식을 건넸다.

“예준아, 사람들은 코 자고 있어. 그러니까 젤리를 먹으며 만화 보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모님이 계시는 곳에 도착하기 10분 전까지 얌전하게 있어 줬다. 여유있게 안락한 좌석에서 만화를 보고 있는 아이의 모습과 다르게 엄마의 마음은 애탔다. 출발할 때부터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이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시선은 다른 데로 가 있었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과 어르신, 그리고 아이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것이 변화해야 할까 하며.

소리의 부재 가운데 성장한 엄마와 소리를 알아가는 아이의 사이에서, 불편을 느끼는 데에 같은 마음이었던 날이었다.

*칼럼니스트 이샛별은 경기도농아인협회 미디어접근지원센터에서 농인(=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이는 뉴스를 제작하며, 틈날 때마다 글을 쓴다. 유튜브 ‘달콤살벌 농인부부’ 채널 운영, 다수 매체 인터뷰 출연 등 농인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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