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둘과 아이 하나, 이렇게 셋도 가족
엄마 둘과 아이 하나, 이렇게 셋도 가족
  • 칼럼니스트 최가을
  • 승인 2021.06.01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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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엄마의 방구석 심야 영화관] ‘아이’(2021)

육아와 직장 일을 병행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보면 생활 반경이 좁아지고, 자연스럽게 내 시야도 좁아진다. 집, 어린이집, 직장 이 세 군데를 쳇바퀴 돌 듯 도는 내 일상에 매몰되어 소위 ‘다른 세상’에 대해 상상할 여지가 사라진다. 세상의 모든 양육이 나의 양육과 비슷할 거라는 착각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나의 양육은 다양한 양육의 형태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법적인 결혼을 통해 이룬 ‘정상 가족’의 테두리 안에 있고, 남편이 양육을 함께 하는 중산층 맞벌이 부부의 육아. 영화 ‘아이(2021)’는 내가 어린이집에 드나들며 알게 된 엄마들, 직장에서 만나는 기혼 유자녀 동료들만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줬다.

엄마가 백 명이라면, 모성의 모습도 백 가지. ⓒ롯데엔터테인먼트
엄마가 백 명이라면, 모성의 모습도 백 가지. ⓒ롯데엔터테인먼트

영채는 유흥업소에서 일하며 혼자 생후 6개월 된 아기를 키우는 싱글맘이다. 영채는 젖이 마르지 않아 옷에 줄줄 흐르는 채로 ‘초이스’를 받기 위해 룸에 들어가고, 유흥업소를 벗어나 공부를 하거나 다른 직업을 가져 보려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지만 당장 갚아야 하는 빚이 있어 이도 요원하다.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고, 육아를 지원해주는 인력이 최대한 많이 동원돼도 힘든 것이 신생아 및 영유아기 육아인데 영채는 얼마나 고될까. 관객인 나까지 발을 동동 구르게 됐다.

영채가 혁이 이유식을 먹이다가 폭발하는 장면에선 나까지 안타까웠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영채가 혁이 이유식을 먹이다가 폭발하는 장면에선 나까지 안타까웠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생계 유지, 대출 상환, 독박 육아까지 삼중의 짐을 짊어진 영채에게는 탈출구가 없어 보인다. 몇 백 만원에 아이를 (불법) 입양시키라는 유혹까지 영채를 괴롭게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기 손으로 혁이를 키우고 싶은 영채는 밤 시간에 일할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는데 그 베이비시터가 아영이다. 아영은 보육원에서 자란 보호 종료 청년이자 현재 아동학과 대학생이다. 아영은 합법적인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 수입 때문에 지원금이 끊겨 버린다. 그래서 일당을 즉석에서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구하다가 영채 집에 들어가게 된다.

보호 종료 청년으로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아영. ​ⓒ롯데엔터테인먼트
보호 종료 청년으로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아영. ​ⓒ롯데엔터테인먼트

아영은 훌륭하게 혁이를 돌본다. 아동학과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하고, 진심으로 혁이를 아끼며 키운다. 육체적으로 쇠약하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영채가 혁이를 돌볼 때는 내 마음까지 조마조마하다가 아영이 밤 시간에 육아 요정처럼 짠하고 나타나 혁이를 돌보면 내 마음이 덩달아 편안해졌다. 불법 입양 갈 위기에 처한 혁이를 구해내는 것도 아영이다. 영채가 견디지 못하고 포기한 아기를, 그야말로 온몸을 던져 구출해온다. 그리고 영채에게 말한다.

“내가 도울게요. 언니 나쁜 사람 아니잖아요. 그냥 같이 키워요.”

혁이를 누구보다 훌륭하게 돌보는 아영. ⓒ롯데엔터테인먼트
혁이를 누구보다 훌륭하게 돌보는 아영. ⓒ롯데엔터테인먼트

아영의 대사를 듣고 생각했다. 아영의 이 용감한 마음도 모성 아닌가. 꼭 배 아파 낳아야 엄마인가. 피가 섞여야 엄마인가. 아무것도 모르고 세상에 던져진 한없이 연약한 생명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그 생명이 위험해지니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호하는 아영도 혁이의 엄마라고 할 수 있지 않나.

그렇다면 배 아파 낳았지만 아기를 다른 사람 손에 넘길 수밖에 없었던 영채는 진정한 엄마가 아닌가. ‘네가 그러고도 엄마냐’라고 비난할 수 있나. 혁이를 보내고 네일 아트 일을 배우기 시작한 영채는 실습 중 노란색 매니큐어를 보고 울음을 터뜨린다. 혁이가 좋아한 색깔이었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엉엉 우는 영채의 얼굴은 보여주지 않고, 어깨를 들썩이는 뒷모습만 보여준다.

혁이를 보내고 괴로워하는 싱글맘 영채. ⓒ롯데엔터테인먼트
혁이를 보내고 괴로워하는 싱글맘 영채. ⓒ롯데엔터테인먼트

돌도 안 된 아기가 얼마나 작고 말랑말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인데, 그 핏덩이를 떼어내고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 저 찢어지는 마음이 모성 아닌가. 우리가 비난해야 할 것은 영채를 절벽 끝까지 내몬 사회가 아닌가. 아기를 낳으라고, 낳아 달라고 목청껏 외치지만 그 후 어떻게 키울지에 대해서는 슬그머니 입을 닫아버리는 사회.

엄마 둘, 아이 하나. 이렇게 세 명도 가족. ⓒ롯데엔터테인먼트
엄마 둘, 아이 하나. 이렇게 세 명도 가족. ⓒ롯데엔터테인먼트

‘정상 가족’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는 아영과 영채에게 세상은 가혹하다. 그러나 이들은 세상에 지지 않는다. 아영은 보호 종료 청년으로 자기 한 몸 간수하기도 힘든데, 영채는 혁이를 보내면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데, 둘은 혁이를 놓지 않는다. 험난한 길이 뻔히 예상되지만, 작디작은 생명을 온전히 책임지겠다는 마음. 이 마음이 모성이 아니라면 무엇이 모성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 단단한 마음 앞에서 법이 허용하는 ‘정상 가족’이라는 테두리는 얼마나 편협한 것인지.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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