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엄마의 태교 같지 않은 태교 이야기
미국 엄마의 태교 같지 않은 태교 이야기
  • 칼럼니스트 이은
  • 승인 2021.07.19 0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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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 인류학] 엄마의 행복이 아가의 행복은 아닐까

둘째 계획을 앞두고 있는 친구와 오랜만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전화 통화를 나누는데 첫째 때 태교를 할 겸 사두었던 아기 인형 만들기 키트가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는 둘째가 생기면 그 키트를 꺼내서 이번에는 꼭 완성해 볼 것이라면서 의지를 다졌다. 첫째 때는 야심차게 준비한 태교 계획이 하나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임신 내내 입덧이 너무 심해서 손바느질은 커녕 손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었었고 입덧이 그나마 조금 가라앉은 임신 후기에 뒤늦게라도 만들어볼까 했을 때는 조금만 한 자세로 앉아있어도 배가 너무 쉬이 뭉치는 바람에 무언가에 집중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한다.

 

첫째 임신 때 이야기를 하던 친구는 나에게 내 태교 경험 이야기를 물었다. 딱히 태교라고 할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아 망설이고 있는데 “아, 너는 한참 수업 듣고 공부할 때 였으니까 저절로 태교가 됐겠다. 일부러 따로 책 읽고 할 필요도 없었겠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시절을 떠올려보니 나에게는 어이없는 추측이었다. 친구에게 당시 상황을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 시절의 나와 큰 아이에게 미안한 웃음만 피어 올랐다. 당시 나는 미국에서 막 박사과정을 시작한 상황이었도 입덧이 좀 있었다. 가난한 유학생 부부를 미국 생활에 필수라는 자동차를 살 형편은 아니었고 한시간에 두대씩 다니는 버스를 이용해서 학교에 다녔다. 당시에 나는 일주일에 세번씩 학부생 강의의 수업을 가르치고 있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연구소 일도 했다. 물론 내 세미나 수업도 들어야했다. 대학원생 서넛이 앉아 교수님 한분과 토론 하는 수업이었다. 일주일치 수업자료가 책 한권 이상인 적도 많았다. 매일 덜컹거리는 버스에서 입덧과 사투를 벌여가며 캠퍼스에 도착하고 연구실에서 얼마간 일하고 또 조교실에서 얼마간 강의 준비도 하고 학부생들이 찾아오면 질문도 받아주고 또 내 세미나 수업도 준비했다.

 

무언가 많이 읽긴 읽었는데 늘 시간에 쫓겼고 기분이 좋은 적도 컨디션이 좋은 적도 거의 없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해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딱히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임신 기간 동안 스트레스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식사를 잘 챙겨먹은 것도 아니었기에 사실 딱히 태교 다운 태교를 했다는 생각은 없다.

 

굳이 한국식으로 말하는 태교 비스므레 한 것을 이야기해보자면 임신 말기가 가까워오면서 남편이란 지역 도서관에서 어린이 그림책을 빌려와서 잠자기 전에 한권씩 읽었던 것이 생각난다. 당시에는 꼭 태교라기 보다는 스트레스에서 좀 벗어나 귀여운 그림들을 보면서 쉬어가는 느낌을 받고 싶은 생각이 더 컸었다. 사실 문학 도서 읽는 걸 참 좋아하는 편이라 학생 때부터 소설과 시를 많이 읽었었는데 그 당시에는 도저히 수업자료가 아닌 책을 볼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 생각한 게 긴 호흡이 아니어도 그 날 짧은 시간에 볼 수 있는 어린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도, 또 적어도 태교 비스므레 한 것을 해보려는 노력을 한다는 자기 위안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것 같다. 그 시절의 나는 스트레스를 받기 싫어서 딱 필요한 일만 하고(그것도 이미 너무 많은 상황이라) 다른 것은 최대한 안하면서 쉴 궁리를 했다. 그게 나만한 태교방식이라면 태교방식이었다.

첫째를 가졌을 때 남편과 함께 읽었던 기차가 주인공인 그림책. 큰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함께 다시 읽었지만 아쉽게도 큰 아이의 취향은 아니었던 걸로 밝혀졌다. ⓒ이은
첫째를 가졌을 때 남편과 함께 읽었던 기차가 주인공인 그림책. 큰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함께 다시 읽었지만 아쉽게도 큰 아이의 취향은 아니었던 걸로 밝혀졌다. ⓒ이은
둘째를 가졌을 때 첫째와 함께 읽었던 오리와 거위가 주인공인 그림책. 둘째의 경우는 이 그림책을 참 좋아하는 다른 책의 경우를 보면 태교의 효과라기보다는 그저 우연히 취향이 겹친 탓인 것 같다. ⓒ이은
둘째를 가졌을 때 첫째와 함께 읽었던 오리와 거위가 주인공인 그림책. 둘째의 경우는 이 그림책을 참 좋아하는 다른 책의 경우를 보면 태교의 효과라기보다는 그저 우연히 취향이 겹친 탓인 것 같다. ⓒ이은

오늘 날 동아시아권의 태교의 기원은 중국 주나라 문왕(文王)을 임신했을 때의 태임(太妊)의 태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태임이 태교의 주된 내용을 잘 지켰기 때문에 문왕이 태어나면서부터 명철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교를 잘 하면서 훌륭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하게 전해졌다. 태교가 동아시아권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유태인들 사이에서도 전통적으로 성관계를 조심하고 몸을 깨끗하게 유지하며 특히 8개월 이후부터는 뱃속 태아에게 꾸준히 책을 읽어 주는 것을 권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도 태교라도 할만한 것이 존재하는데 우선 아빠가 산모에게 더욱 신경을 써주도록 권장하고 임신 중기 이후부터는 태아에게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자주 들려주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충고도 자주 받는다. 문화권에 따라 조금씩 다르고 “태교”라는 용어의 유무 차이도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아이를 가진 임신부에 대한 배려와 아이와 산모의 건강 등을 고려한 금기나 권장사항 등을 바탕으로 이뤄진 문화적인 요소는 어느 나라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나 역시 둘째를 가졌을 때는 그에 따라 새로운 마음으로 흔한 금기를 지켜보려고 했었던 것 같다. 늘 예쁜 것 좋은 것만 먹고 듣고 보라는 어른들의 말씀을… 하지만 결국 첫째 돌보느라 내 학교 공부하느라 박봉에 쪼개서 살림 하느라 또 다른 방식으로 정신이 없어서 태교고 뭐고 살아남는데 집중하는 나날이었다. 첫째때보다도 초기 입덧이 더 심해서 정말 거의 누워 있다 싶이했고 큰 아이 식사 챙겨 줄 때만 겨우 일어나곤 했다. 둘째를 가졌을 때의 나의 유일한 태교란 큰 아이의 종알거리는 이야기들을 듣고 저녁에 퇴근해서 돌아 온 남편이 잔뜩 부은 내 다리를 마사지 해 준 것 정도인 것 같다.

다행히 두 아이는 모두 건강하게 잘 태어났고 잘 자라주고 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각자가 각자의 방식대로 태교를 하고 또 꼭 태교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나름의 방식대로 임신 기간을 지내는 것이 제일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열을 따진다는 것이 우습지만 굳이 최고의 태교 방법을 생각해보면 경험상 역시 산모가 마음이 편하고 산모가 스트레스 덜 받고 산모가 건강한 것이 최상이다. 엄마가 편해야 아이도 편하다는 것이 만고 불변의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흡연이나 음주같은 산모와 태아 모두의 건강을 해치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지만 산모나 태아의 건강상황과 상관없이 여러가지 금기를 강요받는다든지 또 지나치게 정형화된 태교 방식에 스트레스(지인 중에 한명은 시어머니의 충고같은 강요로 평소에 제일 싫어하던 장르의 음악을 깨 있는 시간 대부분 동안 들어야했다. 어느 날 불시에 방문하셔서 음악을 듣고 있는지 확인한 적도 있으셨다는 말에 같이 있던 지인 모두 혀를 내둘렀다. '요즘 세상'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를 받는 다든지 할 필요는 전혀 없다.

태교에 대해 묻는 내 말(영어로는 태교에 해당하는 정확한 영어단어가 따로 없다)에 나의 미국 친구 중 한 명은 “난 아이스크림으로 태교 했어.”하고 말하며 웃었다. 물론 이 친구가 임신 당뇨와 같은 조심해야 될 상황이 없어서 였겠지만, 아이스크림만 먹으면 입덧이 가라앉고 기분도 좋아졌다는 그녀에게 최상에 태교는 매일 알록달록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딸래미도 건강하게 잘 태어나 쑥쑥 잘 자라고 있다. 건강을 해치지 않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산모가 스트레스를 덜 받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임신 기간, 그 노력이 바로 최상의 태교 방법인 것 같다. 이미 임신 그 자체로도 스트레스 받을 요소는 충분하니까. 임신한 엄마들도 자기 자신의 마음을 돌보려고 노력해야겠다. 그게 바로 최고의 태교니까.

*칼럼니스트 이은은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현재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작업을 하고 있다. 스스로가 좋은 엄마인지는 의구심이 들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순간순간마다 성장하는 중이라고 믿는 낙천적인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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