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함께 살아가기, 정말 많이 어려울까요?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기, 정말 많이 어려울까요?
  • 칼럼니스트 박현주
  • 승인 2021.07.23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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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꿈을 꾸는 아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나는 특수교사였지만 사실 장애아이들에게 숫자와 사칙연산을 가르치는 데는 소질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은 출석부 통계를 내다가 순간 구구단이 생각나지 않아 황당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교무실 선생님들에게 “특수학교 5년 일하니 구구단을 외울 일이 없어 구구단을 잊겠어요”며 우스갯소리를 하자, 옆에 계시던 10년 차 선생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선생님, 10년 지나면 이제 숫자 5까지 밖에 못 세요.” 농담이었지만 정말 중증 중복장애아이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에 있으면서 사칙연산을 가르칠 수 있는 아이들을 만나지 못하는 현실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데리고 ‘경제’교육이라니.

그 당시 교장선생님은 아침 교직원 회의시간에 특수교육의 존재 이유를 ‘혜택을 받는 아이들이라는 인식에서 세금을 내는 사회구성원으로 한사람’으로 성장시켜보자고 말씀하시곤 했지만 햇병아리 교사였던 스스로 밥 삼키기도 어려운 내 아이들이 과연 어른이 되어서 스스로 일하고 얼마가 되었든 납세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을지 늘 의문이었습니다. 생각의 전환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YWCA에서 실시하는 경제교육 프로그램 공모전에 도전은 도대체 어떻게 장애아이들에게 ‘경제’를 가르칠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물이기도 했습니다.

◇ 사람들이 정직해진다면?

사장님들이 정직해서 굳이 발달장애아이들이 머리 싸매고 고민해 거스름돈 ‘얼마’ 거슬러 주세요라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정직하게 거슬러 주면 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는 게 별것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사람들이 정직하다면 발달장애를 가졌어도 뭐 어려울 것이 있겠나 하는 생각들입니다. 발달장애인이 물건을 고를 때도 기다려주고 발달장애인이 물건을 선택할 수 있게 정보를 제공해주고, 발달장애인이 물건을 고르면 정직한 값을 받고 거슬러 주면 되는 일입니다. 그러면 사지 못할 장애인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은 조금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 어느 날은 세상이 바뀌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벌써 15년 가까이 지난 일이니 그때는 더 했을 테지요. 세상에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이 딱 두 가지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거저 줘야 하는 시혜의 대상’이 돼있거나,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 불편한 ‘차별의 대상’이 돼있는 것 딱 두 가지로 나눠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 내 아이들에게 사칙연산을 가르쳐 물건을 스스로 구입하는 훌륭한 선생님은 못되겠지만, 우리 동네 사장님들을 가르쳐 발달장애인에게 정직한 물건을 팔고, 또 장애를 가졌어도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게 가르칠 수 있을 것 만 같은 의욕이 불타오르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사장님들을 대상으로 ‘장애’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위에 앞서 이야기한 물건사기의 요구들은 비장애인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히 지켜줘야 할 소비자의 권리였을 뿐이었습니다. 특별하게도, 혹은 너무 나쁘게도 대하지 말고 딱, 그저 ‘사람처럼’ 대해달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꿈을 파는 가게’ 프로그램은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사업을 하시는 사장님들을 모아놓고, 장애인들 역시 ‘사람처럼’ 대해달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내쫒거나 거저 주지 않고, 물건을 고를 수 있게 기다려주고, 무엇인지 쓰임을 잘 몰라 잘못 선택하는 일이 없도록 당사자가 궁금해 한다면 그 물건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알려주고, 또 정직한 비용을 받는 것. 그 세 가지였습니다. 비장애인들이 누리는 소비선택권. 그것  뿐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한 번의 교육으로 익숙하지 않아 거저 끼워주는 일이 일상다반사여서 그러지 못하도록 부탁드리는 일이 많았는데 차츰 차츰 자리 잡기 시작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장애’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하셨던 세차장 사장님도, 불러도 대꾸도 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개구쟁이가 사장님이 부르는 목소리에 뒤돌아보는 것을 보고는 나중에 우리 세차장에 취업하자고 농담처럼 제안하시기도 했고 아이들과 찾은 빵집에서는 그전에는 장애 아이들이 오면 빨리 고르고 갔으면 좋겠다고 빵을 찌르나 안 찌르나 눈치 보는 게 일이었는데 지금은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해도 된다고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씀해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노출된 횟수만큼 아이들은 지역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작스러운 퇴직으로 마무리를 하지 못한 게 늘 아쉬움으로 남아있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버스타기. ⓒ베이비뉴스
버스타기. ⓒ베이비뉴스

◇ 버스타기의 시작

어린이집을 시작하고 그때의 경험이 씨앗이 되어 시작했던 일이 있습니다.

초등 방과후 반을 운영할 때였습니다. 초등방과후는 초등학교가 끝난 다음 초등학생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시 등원해 오후를 보내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초등 방과후반은 4시간 이상 보육해야 보육료 결제가 가능한 구조였기 때문에 중학년부터는 재원이 조금 어려웠고, 1,2학년들이나 특수학교에서 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아이들은 1시나 2시쯤 등원해 5시 이후 하원을 하게 됐습니다.

주된 아이들이 어린이집 아이들이기 때문에 방과후 아이들의 오후 차량은 운영이 어려웠습니다. 보통3시나 4시쯤 차량이 출발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방과후반 아이들의 차량을 고민하다가 앞서 이야기한 경제교육 프로그램 공모전이 생각났습니다.

우리 어릴 때 만해도 초등학생이면 집 앞에 학교가 없으면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이 생활이었습니다. 요즘이야 도시화 되어 집 앞 근거리에 걸어서 다닐 수 있는 학교가 생겨나 초등학생들은 버스를 스스로 타는 경험이 점점 없어지기도 했습니다.

장애의 유무를 떠나 초등학생에게 버스타기를 가르치는 일, 괜찮은 일인지 선생님들과 꽤 오래 고민을 했었습니다. 경험으로 버스타기는 괜찮다는 결론을 내리고 처음에는 가까운 거리 버스를 타고 이동해 지역사회를 경험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했습니다. 한 명의 교사가 초등 3명, 그것도 각기 다른 특성을 지난 장애아이들을 인솔해 지역사회 시설을 이용하고 돌아오는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매일 매일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다닐 곳을 정하고, 버스를 타고 이동합니다.

부모님들에게 미리 받은 교통카드를 아이들의 목에 걸어주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교통카드를 찍고 버스를 타는 별 것 아닌 나들이를 시작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소소한 나들이를 싫어하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교실에서 말썽을 부리다가도 "그렇게 하면 오늘은 못 나가겠다" 선생님의 한마디면 마법처럼 바른 아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장애와 비장애를 떠나 사람은 모두 다 지역사회에서 재미있는 삶을 ‘함께’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감사하게도 방과후 선생님은 아이들과 나들이는 힘들지만 재미있다고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고, 문구점에서 잡다한 학용품을 사기도 하고, 어느 날은 큰 맘 먹고 영화를 보고 오기도 했습니다.

방과후 아이들에게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어린이집 노란 셔틀을 태우지 않은 일을 꼽습니다.

어찌보면 어린이집 재원생으로서 당연한 권리였을지도 모를 일을, 지역사회 적응이 더 중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을 노란차에 태우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 떨어진 곳에 아이스크림을 사러 다녀와야 했고 집에 갈 때도 버스를 이용해 집으로 가야 하는 날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은 선생님과 함께였지만 나중에는 적절한 시기에 지원해준 자원봉사자들이 있어서 아이들이 얼굴을 알지 못하는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선생님과는 익숙한 하원길에서 선생님이 없을 때는 어떻게 행동하는지 점검하기 위해 미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 우리 아이들은 생각보다 참 잘합니다

선생님과 함께 가는 날에는 늘, 놓치기 일쑤였습니다. 버스정류장을 놓치고 버스 안에서는 떠들어 댔습니다. 승객들의 항의를 받기도 하고 욕을 얻어먹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은 아이의 지연반항어가 늦게 터져 "때리지 마!" 소리를 해대는 통에 선생님을 곤란하게하기도 했습니다.

(*이 아이는 불안할 때마다 선생님을 톡툭 치고 선생님이 "때리지 마세요" 하는 소리를 듣고 멈추는 것이 패턴화돼 있는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보고 빨리 "때리지 마"를 말 하라는 의미로 툭툭 쳤을 겁니다.)

선생님이 같이 가지 않고 아이들이 모르는 자원봉사자와 함께 버스를 탔을 때 그의 보고는 놀라웠습니다. 반향어를 그렇게 중얼대던 것도 하지 않았고, 두 아이가 손을 꼭 잡고 이끌어 내려야할 곳에 정확하게 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딴짓도 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가지도 않고 곧장 집으로 갔다는 말에 우리 모두 환호성을 질렀답니다.

아이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많이 알고 있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의 틀에 갇혀 있는 것은 어쩌면 지나치게 생각이 많은 우리들이 아닐까요?

그 해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더 시도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연령이 점점 어려져 초등 4, 5학년이 없고 1, 2학년으로만 늘 이뤄져 선생님들 역시 불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 장애영아반을 개설하면서 초등방과후반은 문을 닫고 말았답니다. 어린이집에는 총정원 대비 20%만 장애아동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지역사회로 내보내기 위해 버스회사 사장님들을 가르치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버스 회사 사장님들에게 "발달장애란 이렇습니다"라고 알려드리고 그들의 당연한 권리 더하기 "약간의 관심"이면 아이들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루틴이 있는 삶은 성공한 삶이라고들 합니다. 발달장애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도 건강한 루틴을 만들어 주는 것이기도 하지요. 지역사회를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루틴이 될 수 있습니다.

노선과 시간이 정해져 있는 버스는 루틴이 있는 발달장애인들이 이용하기 좋은 지역사회 자원이 되어줍니다.

버스기사가 낯익은 지역주민들을 기억하는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타는 곳과 내리는 곳 반복적인 이들의 루틴은 버스 이용에 크게 제약이 없습니다. 다만 초기의 행동이 자리 잡기까지 도움이 필요합니다. 내리는 곳을 알려주는 것. 매너를 가르쳐 주는 것.

특수교사가 하는 일만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 아이들을 키우는 선생님이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다양한 유형으로 가르치는 이가 많아질수록 아이들은 좀 더 사회에 그 어려운 일반화를 해낼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늘 같은 방법으로 대해주는 선생님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같은 사건을 대하는 다양한 자세를 경험하면서 아이들은 삶의 방법을 습득해 나갑니다. 일반화가 어렵다는 것은 더 많은 경험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만 있으면 얼마나 세상이 살기 좋을까 만은 우리 사는 세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모두 다 경험을 통해 알 것입니다.

때로는 이놈 아저씨도 있을 테고 때로는 천사 같은 아저씨도 있을 것이며, 때로는 세상 무관심한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한 번의 교육으로 그들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지만, 또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지속적인 노출, '만남'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겁내지 말고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지역사회를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버스회사 등에 실질적인 장애인식개선교육, 그것도 어떻게 보면 외관으로 표가 잘 나지 않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해교육이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속으로 한 걸음 더,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가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고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칼럼니스트 박현주는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해 특수학교에서 근무했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내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어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됐다. 화성시에서 장애통합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모님들과 함께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동참해, 현재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에서 장애영유아 발달상담도 함께 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 육아에서 시작해 아이들의 삶까지, 긴 호흡으로 함께 걸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풀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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