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아 건강검진 이후, 아이들에 대한 지원은?
영유아 건강검진 이후, 아이들에 대한 지원은?
  • 칼럼니스트 박현주
  • 승인 2021.08.17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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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꿈을 꾸는 아이] 후속 조치가 아쉬운 영유아 건강검진

많은 전문가들이 장애아이들의 조기발견과 조기중재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는 아이의 ‘느림’이나 ‘다름’에 대해 부모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영유아건강검진’이라는 제도가 실시돼 조기에 장애위험아동을 선별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받거나 특수교육을 알아보는 등 적극적인 대처는 기대하기 어렵다. 도대체 왜, 그런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2007년에 시작된 영유아건강검진이 벌써 15년째를 맞이한다. 영유아건강검진 역시 조금 더 성장해주기를, 조금 다른 아이를 키우는 부모 마음에 조금 더 가까워지기를 기대해본다. ⓒ베이비뉴스
2007년에 시작된 영유아건강검진이 벌써 15년째를 맞이한다. 영유아건강검진 역시 조금 더 성장해주기를, 조금 다른 아이를 키우는 부모 마음에 조금 더 가까워지기를 기대해본다. ⓒ베이비뉴스

◇ 영유아건강검진의 시작

00학번이었던 나는 유아특수교육과에 재학시절 교수님께서 K-ASQ(Ages and Stages Questionnaire)를 한창 번안하고 표준화과정을 거치던 때를 기억한다. 직접적인 참여는 하지 않았지만 동기 중 몇몇은 문항지와 작은 선물들을 가지고 소아과를 다니며 표준화자료를 수집했었다. 그저 대학에서 배운 선별검사지 중 하나인 줄만 알았던 K-ASQ를 첫 아이를 낳고 소아과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2007년에는 기존의 건강검진에 추가해 ‘영유아 건강검진’이 새로 도입됐기 때문이었다. 수업시간에만 보아왔던 선별검사지로 내 아이를 하나하나 체크하는 동안은 무척 감격스러워 했던 기억이 있다. 이것을 대한민국 모든 아이들에게 사용한다는 자부심과, 첫페이지에 새겨진 열정을 쏟던 교수님의 이름은 말할 수 없이 반가웠다. 2008년에는 본격적으로 의료급여 수급권자인 영유아의 건강검진이 실시됐다. 2009년에는 국가검진위원회 의결에 따라 만 4세(42~48개월)까지 영유아 건강검진이 확대되고, 2010년에 54~60개월, 2012년에는 66~71개월 영유아의 검진이 순차적으로 추가됐다.

2008년생인 내 아이는 거의 영유아건강검진의 첫 수해자이기도 했다. 이후 영유아건강검진은 구강검진이 추가되기도 했고, 검사도구가 바뀌기도 하며 날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물론 이 영유아건강검진에서 발달상의 위험아동은 걸러진다.

2019년 자료에 의하면 총 수검자 210만 3881명 중 ‘추적검사요망’을 요청받은 아동은 21만 1687명, ‘심화평가권고’를 받은 아동은 4만 99명, ‘지속관리필요’를 받은 아동은 1만 465명이다. 이는 총 양호한 발달을 보이는 아동수 대비 12%를 훌쩍 넘는 숫자이다. 이는 조기중재가 필요한 아동의 숫자가 전체 아동의 12%에 이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 12%의 아이들이 모두 치료를 받거나 진단을 받지 않는다. 주변에서는 아직 늦된 아이일 수 있으니 기다려보라는 조언들이 쏟아진다. 맘카페에 달리는 댓글만 봐도, 아직 우리네 정서는 아이가 치료를 받거나 특수교육의 언저리에 기웃거리는 것만으로도 아이를 부모가 장애로 내몬다는 느낌, 가능성이 있는 아이를 낙인씌운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모양이다.

◇ 영유아건강검진 그 이후는...

그렇다면 우리는 왜, 비싼 사회적 자본을 들여 ‘영유아건강검진’을 실시하는 것일까?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조기에 발견하고 조기에 개입해 2차장애를 예방한다는 최초의 목적은 잘 달성되고 있는 것일까? 늘 의문이다. 어린이집에 재원하고 한참 뒤에야 아이의 느림이 보여 혹시나 하고 영유아건강검진 결과 통보서를 확인해보면 '추적검사요망'이라 쓰여져 있다. 부모는 사전에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많은 경우가 그렇다. 어린이집은 오래전부터 영유아건강검진 결과 통보서를 제출해 확인할 수라도 있었지만 유치원에서 영유아건강검진 결과통보서를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은 2020년 7월, 비교적 최근부터 가능해졌다. 

영유아 건강검진이 무익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영유아건강검진은 영유아의 건강검진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해줬고,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부모교육이 되고 있다. 정기적인 검진만으로 아동학대의 예방효과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부모들은 영유아건강검진결과에 나온 아이에게 ‘특별한 도움이 필요합니다’라는 사인을 애써 무시하려고 할까.

‘아이의 느림을 드러냄을 불편해하는’ 사회적인 인식이 ‘내 아이에게 어떤 특별한 지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이성적인 판단을 넘어선 경우라 생각한다. 그만큼 ‘느림’과 ‘다름’을 보는 우리네 인식은 크고도 막강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제 막 내 아이의 느림을 발견한 부모가 아이를 위해 전문가를 찾고, 아이에게 맞는 교육 방법을 고민하게 만들 수 있을까. ‘심화평가권고’ 이상의 진단을 받은 아이들에게는 진단비와 치료비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심화평가권고’는 전체 수검아동 중 1.9%를 차지하는 미미한 숫자이다. 그뿐 아니라 ‘심화평가권고’를 받았다고 해도 모든 아이들이 정밀검사비를 지원받는 것은 아니다. 이중 또 지원 가능한 아이들은 의료급여 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에 속해야만 지원이 가능하다. 또한 정밀검사비를 40만 원으로 책정해 놓아 대학병원에서의 종합심리검사(Full-Battery 풀배터리) 검사 비용으로 사용하기도 다소 빠듯할 듯하다.

◇ 지원의 방법과 체계를 다시 점검할 때

영유아건강검진의 노력이 헛되게 되지 않으려면 그 이후의 지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봤으면 한다. 생때같은 내 아이를 일부러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게 할 부모는 없다. 영유아건강검진 이후 적절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노력이 헛되게 될 뿐이다.

영유아건강검진이후 ‘추적검사요망’의 권고 이상을 받은 아이들에게 ‘아이의 느림을 드러내는 불편함’보다 경제적인 실리가 더 크게 법과 제도를 바꾸면 된다. 즉, 영유아건강검진에서 ‘추적검사요망’의 권고 이상을 받은 아이들에게 정밀진단비를 지급하도록 기존 제도를 확대하고, 검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실질적인 치료와 교육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치료비나 교육비를 지원해줘야 한다. 그래야 부모들이 사회적인 인식의 벽에도 굴하지 않고,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에게 맞는 치료와 교육을 찾아 제공해줄 수 있다. ‘심화평가권고’라는 의미는 ‘장애’를 의미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늦된 아이들도 있고, 문화적인 실조로 ‘심화평가권고’를 받을수 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이 아이들조차 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이라는 것에는 반박의 여지가 없다.

계속해서 지원을 하라는 것도 아니다. 발달기에 있는 아이들은 가소성이 있어서 건강한 자극에 금새 발달의 성장세를 보이는 이들도 분명있다. 다만, 영유아다보니 치료사 또는 교사와 건강한 라포가 형성되고, 아이를 파악해 치료나 교육의 목표를 수립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보며 최소 6개월 이상의 지원이 제공돼야 한다.

영유아건강검진이라는 좋은 제도를 놓고 ‘심화평가권고’를 받거나 ‘추적검서요망’ 또는 ‘지속관리필요’를 받은 아이와 부모에게는 바른 정보가 가장 시급하다. 이들에게는 일종의 종합안내소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허브가 없다. 아이의 느림을 먼저 알고 초록색 검색창에 ‘발달장애’라고만 쳐도 사설 치료실과 완치가 가능하다고 눈속임을 하는 병원들의 목록이 보인다. 공공기관은 사실상 찾아보기 어렵다. 정보의 객관성을 검증하는 일은, 이제 막 내 아이의 느림을 발견한 부모의 몫이 되어버린다. 이런 부모의 불안심리를 이용한 상술이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다.

아이의 느림에 대해 설명해 줄, 그리고 앞으로의 아이가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지,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하는것인지 육아와 아이의 삶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줄 전문가를 찾는 것 조차 쉽지가 않다. 특수교육을 전공했거나, 복지관이나 치료실등에서 장애유아를 오랫동안 만나온 이들은 전문가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음에도 보건소나 건강가정센터, 육아종합지원센터 등은 그들에게 학교나 복지관 사설 치료실보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해 현장에서 만나기는 어렵다.

이러니 대한민국에서 느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든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 아이의 느림을 인정하기란 얼마나 고된 육체노동, 정신노동일까.

정보를 하나로 모으는, 바른 정보를 제공해 줄 전문가가 상주해 있는 곳이 필요하다. 기존의 기관이어도 상관은 없으나, 영유아건강검진을 실시한 병원에서부터 안내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영아교육기관의 목록이 안내되고, 다닐 수 있는 어린이집의 목록과 유치원의 목록이 하나로 제공돼야 한다. 이후 아이가 다닐 수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전공과나 발달장애인들이 다닐 수 있는 대학의 목록도 한곳에서 확인할수있어야 한다. 그래야, 부모가 덜 불안하다. 이것은 비장애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은 모두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다. 아이가 자라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고, 초등교육을 받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직업을 갖거나 대학에 가는 것. 이런 보편적이고 당연한 과제조차 느린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에게는 커다란 산이자 두려움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회가 ‘별 것 아닌 것처럼 그저 사람답게 잘 살 수 있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해주면 된다. 거대한 사회인식의 변화라는 것은 어쩌면 여기서부터가 시작이지 않을까.

‘네 아이는 특별한 도움이 필요할뿐이야. 괜찮아. 잘 살 수 있어’라고 이야기해주는 것. 영유아건강검진의 목적도 어쩌면 이러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세계가 극찬하는 ‘국민건강검진’.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몸과 마음이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련된 제도라면 우리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 역시 이 제도를 통해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성장하길 기대해본다. 2007년에 시작된 영유아건강검진이 벌써 15년째를 맞이한다. 영유아건강검진 역시 조금 더 성장해주기를, 조금 다른 아이를 키우는 부모 마음에 조금 더 가까워지기를 기대해본다. 애써 만들어놓은 구슬들을 잘 꿰어 하나의 귀한 목걸이로 만드는 일, 이제는 가치를 높이는 일을 해야할 때이다. 

*칼럼니스트 박현주는 유아특수교육을 전공해 특수학교에서 근무했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면서, 내 아이를 함께 키우고 싶어 어린이집을 운영하게 됐다. 화성시에서 장애통합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모님들과 함께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데 동참해, 현재 꿈고래놀이터부모협동조합에서 장애영유아 발달상담도 함께 하고 있다. 다양한 아이들을 키우는 일, 육아에서 시작해 아이들의 삶까지, 긴 호흡으로 함께 걸음으로 서로의 고민을 풀어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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