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차 '일하는 엄마' “6번 이직.. 일과 가정의 균형은 결국 실패”
11년차 '일하는 엄마' “6번 이직.. 일과 가정의 균형은 결국 실패”
  • 김민주 기자
  • 승인 2021.09.10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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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대한민국 워킹맘 보고서③] 11년차 직장인이자 생계부양자, 이민영 씨

【베이비뉴스 김민주 기자】

코로나19가 집어삼킨 대한민국, 워킹맘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져있다. 2021년을 살아가는 열 명의 워킹맘을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듣고 정부 정책이 개별 가정에 잘 전달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가정 내, 직장 내, 사회 내 차별받는 워킹맘들을 위해 우리 사회는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고민했다. -기자 말

이민영 씨는 11년차 직장인이자 12세 자녀를 키우고 있다. 이 씨는 엄마이자 생계부양자로 아이를 양육하면서 직장을 다니기 위해 6번의 이직을 했다. ⓒ베이비뉴스
이민영 씨는 11년차 직장인이자 12세 자녀를 키우고 있다. 이 씨는 엄마이자 생계부양자로 아이를 양육하면서 직장을 다니기 위해 6번의 이직을 했다. ⓒ베이비뉴스

“직장다니면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친정엄마 도움을 많이 받게 됐어요. 친정엄마가 거의 저희 집에 살았다고 봐야해요. 제가 늦게 퇴근하니까, 원래는 저녁 7시 반까지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게 맞는데 어린이집이 실제로 그렇게 운영을 안하는 거죠. 오후 4~ 5시 쯤 되면 남는 아이가 저희 아이 뿐이었어요. 정확하게 말하면 그 당시 친정엄마가 없었으면 아이를 키울 수 없었을 거에요.”

공공분야의 11년 차 직장인인 이민영(가명·37세) 씨는 12세 자녀를 둔 엄마이자 생계 부양자이다. 아이가 태어난 첫 해는 1년 육아휴직을 사용했기 때문에, 아이 나이에서 1을 빼면 이 씨의 경력기간이 완성된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경력을 쌓으면서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이 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못’한 것이다.

“출근시간을 짧게 계산해도 편도로 1시간 30분 정도였어요. 제가 오전 7시 10분 쯤 출발해야 9시 전까지 출근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일찍 출근하게되면 아이를 맡길 곳이 없잖아요. 그래서 친정엄마한테 부탁할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은 아이 양육은 제가 해야하는 거잖아요.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이 씨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11년 동안 6번의 이직을 했다. 생계부양자와 엄마의 역할을 동시에 하는 이 씨의 부단한 노력. 이 노력으로 직장과 육아를 동시에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었을까. 지난 8월 22일 오전 11시 이 씨의 집에서 만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이 양육을 했던 일에 대해 자세히 들어 봤다. 인터뷰는 취재원 보호를 위해 가면을 쓰고 진행했다.

◇ “저는 지금도 제 커리어 생각하면 억울해요”

이민영 씨는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겼을 당시를 회상하며 "당시 나는 1990년대 아빠같은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베이비뉴스
이민영 씨는 친정엄마에게 아이를 맡겼을 당시를 회상하며 "당시 나는 1990년대 아빠같은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베이비뉴스

“육아휴직 끝나고 직장에 복직하려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어요. 출근 첫날에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제가 데려오려고 무리해서 칼퇴를 했죠. 남산 1호 터널과 한남대교 구간을 지나는 광역버스였는데 너무 막히는 거에요. 버스가 꼼짝도 안하더라구요. 아이가 혼자 기다릴거란 생각에 너무 속이타서 쪼그려 앉아서 엉엉 울었어요. 결국 친정아빠한테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아이 좀 찾아달라고 부탁했죠. 저는 정말 직장 다니면서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고,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구요. 지금도 그때 생각만하면 너무 눈물이 나요.”

‘직장과 자녀양육이 동시에 가능하지 않을까’란 긍정적인 생각은 첫 날부터 깨졌다. 회사와 어린이집과의 거리가 문제의 요인이었지만, 꼭 그것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당시 이 씨가 다녔던 기업은 칼퇴가 불가능했고, 야근과 회식문화가 만연했다. 이때부터 생존을 위한 친정엄마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이 일을 계기로 친정집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어요. 친정엄마가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에오고, 저는 야근이 많으니 주무시고 다음날 아이를 어린이집 보내주셨어요. 그 뒤에 시간날 때 본집에 가셨죠. 그렇게 아이가 4살이 됐는데, 친정엄마도 힘들어하고 아이도 힘들어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저는 엄마라는 정체성이 없더라고요. 당시 저는 그냥 1990년대 아빠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양육자 역할은 완전히 친정엄마한테 미뤄놓고, 이제 나는 생계 부양자의 역할만 하고 있다는 생각에 회의감이 들었어요.”

이 씨는 이어 “회사 직원들은 주로 남자였고, 주양육자가 아니었어요. 저는 아이를 키우고 있었지만 ‘애가 있어서 먼저 집에 가볼게요’라고 말하는 것 조차 불편했죠”라며, “엄마를 나의 일에서 해방시켜주고 싶었어요. 첫 회사는 대기업이었는데 프리랜서, 시간제 계약직으로 일을 옮겼어요. 나중엔 집과 가까운 곳으로 눈을 낮춰서 이직했어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저는 커리어에 대한 아쉬움이 여전히 있고 지금도 억울해요. 지금 제가 생각해봤을 때, 저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정서가 ‘억울함’인거 같아요.”

◇ “학력 격차에 관한 고민은 저와 아이에게 사치에요”

이민영 씨의 자녀는 3학년부터 돌봄교실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돌봄을 늘리자'는 내용의 글을 썼다. ⓒ베이비뉴스
이민영 씨의 자녀는 3학년부터 돌봄교실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돌봄을 늘리자'는 내용의 글을 썼다. ⓒ베이비뉴스

현재 이 씨의 자녀는 12살로 초등학교 5학년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을 지난 시점, 이제는 아이 양육과 직장의 균형이 잡히지 않았을까. 이에 대한 이 씨의 대답은 ‘엑스’다.

이 씨는 “아이가 초등학교 1, 2학년일 때는 돌봄교실에서 오후 4시 반에서 5시까지 있었어요. 그때는 방학이 제일 힘들었죠. 방학 때는 돌봄교실을 단축하거나 아예 문을 안 열었어요. 그래서 방학 동안에는 점심밥을 주는 학원을 찾아서 말도 안되는 돈을 주며 보냈어요”라며,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돌봄교실이 없어서 아이가 집에 혼자 왔어요. 제 아이는 집에 혼자 있으면 화장실 가는 것도 무서워 하는 아이였는데, 그때부터 더 힘들어졌어요”라고 말했다. 

돌봄교실이 없는 초등학교 3학년. 어느정도 컸다곤 하지만 아이는 혼자있는 게 무섭다. 그래도 방과 후의 시간이라면 학원을 가는 등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학교 등교가 멈추면서 그야말로 '비상사태'가 시작됐다. 

“학교는 모두 멈췄는데 직장은 전혀 변동이 없었어요. 오히려 전보다 더 바빠져서 힘들게 일을 해야 했죠. 아이의 학력 격차나 학습 결손을 고민하는 것은 저에게 사치스러운 이야기였죠. 코로나19 이후 한동안은 3학년에게 긴급돌봄을 잠시 열어 줬는데, 이것도 1, 2학년 수요가 너무 많다고 중간에 잘렸어요. 저학년 아이들이 힘든 것 저도 겪어서 잘 알잖아요. 저는 이해하지만, 마음이 아팠던 것은 아이에게 돌봄교실 못간다고 말했던 거에요. 3학년이라고 돌봄이 필요없는게 아니잖아요, 제 아이는 혼자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것도 무서워 했었는데...”

아이는 일기장에 ‘돌봄교실을 가면 집에 혼자 있지 않아도 되고, 친구들과 같이 놀 수 있고’라고 썼다. 학교의 부재는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외로움’이라는 정서적인 문제도 심각했지만, 급식처럼 영양이 갖춰진 식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학교는 문을 닫고, 엄마는 직장에 있으니 편의점에서 밥을 먹는게 아이에게 최선이었죠. 아니면 아이가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컵밥같은걸 사놨어요. 결국 이번에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빌릴 수밖에 없었죠. 제 동생이 같이 살면서 아이의 식사를 챙겨주게 됐어요. 이 외엔 아이가 하루에 한 명은 꼭 만날 수 있도록 방문 미술, 체육관 등을 다니게 했어요. 그런데 일등 공신은 코로나19 이후 키운 반려묘인것 같아요.”

◇ “스튜디어스도 일할 수 있는 정도의 완전돌봄이 가능해져야”

이민영 씨는 "직장인이 아이 양육을 하기에 우리나라는 장시간 초과노동이 너무 만연한 사회"라고 지적했다. ⓒ베이비뉴스
이민영 씨는 "직장인이 아이 양육을 하기에 우리나라는 장시간 초과노동이 너무 만연한 사회"라고 지적했다. ⓒ베이비뉴스

‘내가 다른 부모들과 같았으면 어땠을까’, ‘나에게 시간이 조금 더 많았다면 어땠을까’는 이 씨가 자주하는 고민 중 하나다.

“부모라면 누구나 하는 애정과 정성을 아이에게 쏟을 수 있었다면, 아이가 좀 다르게 자라지 않았을까. 좀 더 밝게 자라지 않았을까, 더 사회성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도 들어요. 어릴 때 충분한 애정을 줘야 할 시기에 그렇게 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이한테 항상 미안해요.”

아이에게 항상 미안함을 가지고 있는 이 씨. 하지만 그의 11년은 아이와 함께 생존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취재진은 ‘아이 양육과 생계부양을 동시에 하는 입장에서 가장 필요한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했다.

이 씨는 “아이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들이 두 명의 양육자 혹은 두 명의 부모를 기준으로 설계된 사회 안에서 한 명의 부모와 같이 살려면 얼마나 빈틈이 많겠어요. 이건 소득의 문제가 아니에요. 제가 돈이 엄청 많은 것도 아니지만, 중위소득 60% 미만에 들지 못해서 돌봄 입소에서 맞벌이보다 우선순위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저한테는 돈이 아니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요”라며, “이사와 이직을 수도 없이 거치면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잡으려고 했었는데 실패했어요. 이건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인 문제라고 확신해요”라고 전했다.

덧붙여 “저는 국가에서 완전돌봄을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느 수준이냐면, 스튜어디스가 아이를 맡기고 일을 할 수 있는 정도요. 한부모가 급하게 야근에 일을 하거나 장시간 집을 비워야 하거나,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걱정이 없어야 해요”라고 말했다.

“직장인이 아이 양육을 하기에 우리나라는 장시간 초과노동이 너무 만연한 사회에요. 필요 이상의 헌신과 책임으로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증명해 나가는 노동문화가 있어요. 누구나 적게 일하고 더 많이 개인의 삶 또는 가정에 쓸 수 있는 그런 균형을 잡아나가는게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요.”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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