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속의 아이들과 가족③
※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에 대한 중요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린 4남매를 두고 엄마가 사라진다. 첫째 아들 아키라가 고작 열두 살. 아키라 밑으로 아버지가 다른 동생들이 세 명이나 있다. ‘아무도 모른다’는 1988년 도쿄에서 실제 있었던 스가모 아이 방치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이다. 아버지는 원래부터 없었던 싱글 맘 가정이다. 아이들은 학교도, 유치원도 다니지 않는다. 도움을 줄 일가친척도 안 보이고, 교류하는 이웃도 없다. 한 마디로, 아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성인이 단 한 명도 없다. 엄마가 남겨두고 간 돈으로 아이들끼리 살아남아야 한다. 보호해줄 성인이 완벽히 사라졌을 때, 아이들은 어떻게 생존할까.
처음에 아이들은 영리하고 강건하게 일상을 이어나간다. 엄마가 크리스마스 때 온다고 말하고 사라졌기 때문에, 장남 아키라는 엄마가 주고 간 돈을 알뜰히 계산해서 장을 보고, 공과금을 낸다. 둘째 교코는 빨래를 한다. 집은 청결하게 유지되고, 아이들도 위생적인 상태이며, 끼니를 굶지 않는다. 이웃들은 이 집에 아이가 한 명이라고만 알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아이 세 명은 베란다로도 나가지 못한다. 아이들은 이 규칙을 잘 지키면서 감금 생활을 견딘다.
그러나 돈이 떨어지고 엄마의 행방을 알 수 없어지면서, 아이들의 생활은 서서히 무너진다. 공과금을 내지 못해 물이 안 나오고, 전기가 끊긴다. 편의점의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울 돈마저 떨어진다. 아이들은 씻기 위해 양동이를 들고 공원으로 나가고, 야외 화장실을 이용하고, 동네 편의점 직원에게 유통기한 지난 식품을 얻어먹는다.
집안은 쓰레기장이 되고, 아이들의 얼굴이 수척해지며, 옷은 너덜너덜해지고, 표정이 어두워지는 모습을 보니 발을 동동 구르게 됐다. 누군가 쟤네를 씻겨야 되는데. 먹여야 되는데.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혀야 하는데. 따뜻하게 안아줘야 하는데. 이웃이든, 경찰이든, 사회 복지사든 제발 어른 딱 한 명만 나타나면 좋겠다. 그러나 영화는 무서우리만큼 냉정하다. 영화 제목에 충실하다. ‘아무도 모른다.’ 이 아이들의 존재를, 아무도, 모른다.
우선은 이 네 아이의 아버지들이 이들을 모른다. 엄마는 제멋대로라고 항의하는 아키라에게 엄마는 대꾸한다. “네 아버지가 제일 제멋대로지. 혼자서 사라지고.” 아키라는 돈이 떨어지자 동생들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돈을 꾸려고 시도하는데, 이들은 아키라를 외면한다.
다음으로는 이웃들이 이들을 모른다. 집세가 밀리자 찾아온 집주인이 엄마가 어디 있냐고 묻지만, 일 때문에 오사카에 있다는 대답을 듣고 사라진다. 이웃이 무관심하다고 매도할 수도 없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대도시의 전형적인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는, 사회 전체가 이들을 모른다. 이들 남매가 생존을 위해 주기적으로 들를 수밖에 없는 장소가 편의점인데, 아키라의 사정을 아는 아르바이트생이 경찰 신고를 권유한다. 아키라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예전에 한 번 그랬다가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 뻔했다고. 사회 복지 제도가 이들에게 믿을 만한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는 끝까지 누구도 비난하지 않고, 아무 해결책도 내놓지 않는다. 아이들은 마지막 장면까지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아이들은 살고자 한다. 필사적으로. 공원에서 물을 퍼다 나르고, 유통 기한 지난 음식을 꾸역꾸역 먹으면서. 그런데 생존에 대한 아이들의 본능적 의지는 다만 끼니를 잇고 죽지 않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나는 온 힘을 다해서 살려고 하는 아이들의 일상에서 의식주만이 돌봄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한다. 학교 담장 너머의 아이들을 부러워하고, 길거리에서 사귀게 된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며 행복해 한다. 아이들은 넓은 장소에서 걷고, 뛰고 싶어 한다. 외출을 못하다가 밖에 나간 아키라의 동생들은 깔깔깔 웃으면서 즐거워한다. 아이들은 아름다운 것을 보는 걸 좋아한다. 길거리 아스팔트 사이에 핀 꽃을 보면서 한참을 대화하고, 어둠 속에서 빛을 내면서 지나가는 열차를 보고 황홀해 한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존엄을 지킨다. 막내 유키가 집에서 의자에 떨어져 죽자, 아이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유키의 장례를 치른다. 유키를 캐리어에 넣고 유키가 좋아했던 초콜릿을 잔뜩 넣어준다. 넷이나 되는 아이들의 존재를 숨겨야 했기에, 아키라의 동생들은 이 집에 이사 올 때 캐리어 안에 숨어 있었다. 유키는 들어온 방식대로 집에서 나가게 된다. “그동안 많이 커서” 캐리어 속 공간이 조금 부족해진 채로. 아키라는 비행기를 좋아했던 유키를 위해 캐리어를 비행기가 보이는 곳까지 낑낑 메고 가서, 손수 땅을 파서 캐리어를 묻는다.
아이들은 좋은 음식을 먹고, 깨끗한 옷을 입고, 안전한 장소에 살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인과 만나 교류를 즐기고,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을 누리며 행복을 느낄 자격이 있다. 또한 동생의 죽음이라는 초유의 사건 앞에서, 최대한의 정중함을 갖추고 작별 인사를 할 줄 아는 존재들이다.
어른들이 철저하게 버린 아이들의 삶에서 감독은 이렇게 가장 희미하고도 끈질긴 빛을 찾아내고야 만다. 그 빛이 희망의 빛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그 빛은 이 아이들이 존재 자체만으로 귀하고 소중하지 않느냐는 질문으로 다가왔다. 동생을 묻고 흙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아키라의 모습 위로 이런 노래가 흐른다. “얼음같이 차가운 눈동자로 나는 커 가고 누구도 다가갈 수 없는 악취를 풍기는 보석.”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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