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지 않는 여행작가로 산다는 것
여행을 가지 않는 여행작가로 산다는 것
  • 칼럼니스트 김재원
  • 승인 2023.02.16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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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사람 제주살이 이야기] 67. ‘언젠가 다시 여행을 떠나야겠지요’ 두 번째 이야기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되다면 가장 먼저 아프리카로 떠나고 싶다. ⓒ김재원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되다면 가장 먼저 아프리카로 떠나고 싶다. ⓒ김재원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게 되면서 세상에 없던 타이틀 하나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작가’라는 이름인데요. 급기야 제주와 관련한 여행서를 쓰면서부터는 거기에 단어 하나가 더 붙게 되었고 어느샌가부터 제 의지와 상관없이 ‘여행작가’라고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중들은 저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로망대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일 텐데요. 여행을 하면서 책을 쓰고 돈을 번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그런데요. 요즘 여행작가라는 불리는 것이 제 마음을 무척이나 무겁게 만들고 있는 중인데요.   

동아프리카를 여행할 때 자주 이용했던 케냐의 윌슨공항. ⓒ김재원
동아프리카를 여행할 때 자주 이용했던 케냐의 윌슨공항. ⓒ김재원

코로나로 인한 빗장이 3년 만에 조금씩 허물어지면서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를 돌아다니다 보면 여행길에 오른 분들을 부쩍 많이 보게 됩니다. 가까운 일본에서부터 머나먼 남미까지 코로나로 잃어버렸던 여행의 일상을 찾으려는 듯 사람들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한데요. 

솔직히 부럽기도 하고요. 저도 훌쩍 떠나고 싶기도 해요. 그런데요. 그 마음 이면에는 '여행작가'라는 타이틀을 따라다니는 사람인데 ‘여행을 가지 않는 작가’라는 것이 왠지 대중들에게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양심의 가책 같은 게 존재합니다. 제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여행작가로 불리는 사람인데 코로나 핑계, 가족 핑계, 자녀 핑계로 본분을 다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 계속 제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데요.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은 늘 그립다. ⓒ김재원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은 늘 그립다. ⓒ김재원

그런데요. 며칠 전 제 아내가 이런 이야기를 제게 하더군요. (아마도 제 아내는 제 마음을 읽는 '독심술'을 부리는 듯합니다) 

"당신한테 사람들이 '지금 작가님이 말씀하신 그 여행은 언제 다녀오신 건가요?'라고 물으면 어쩌려고 자꾸 여행 다닌 이야기를 강연과 칼럼의 에피소드로 사용하는 건데. 그러다가 당신 큰일나.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코로나고 뭐고 여행으로 콘텐츠를 잡고 가는 분들은 전쟁이 나도 다녀." 

아내의 지독히도 옳은 소리에 저는 감히 대놓고 반박하진 못하고 속으로 이렇게 말을 했어요. 

'알아 여보 나도...그러니까... 너무 뭐라고 하지마... 그런데 여보 나는 강연이나 글을 쓸 때 여행의 루트를 이야기하거나 여행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지 않아. 여행이 내 삶과 인생에 미친 엄청난 영향과 그로 인해 내 삶과 태도가 어떻게 변했는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여행지에서 맛보는 맥주 한잔도 우리가 여행을 잊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김재원
여행지에서 맛보는 맥주 한잔도 우리가 여행을 잊지 못하게 하는 이유다. ⓒ김재원

이제는 글을 쓴다고는 하지만 두 아이를 둔 아빠이자 한 가족의 가장이기에 아무리 그래도 맘 편히 떠날 수는 없지요. 그리고 이렇게 마음 한편이 뭐라도 불편하면 사실 온전히 여행의 순간들을 누리기도 어렵고요. 그렇게 떠난 여행길이 대중들의 공감을 얻는 글로 창작될 것 같지도 않고요. 

오만 생각을 하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 입술을 씰룩씰룩 오물오물거리며 한껏 풀이 죽은 남편에게 제 아내는 이번에도 이렇게 다정히 말해주었어요. 

"애들 내가 잘 보고 있을 테니까 어디라도 다녀와요. 독자들에게 체면이 있지. 꽃 피는 봄이 오면 이젠 정말 꼭 다녀와요. 당신을 위해서도 독자들을 위해서도요" 

“고마워, 여보, 언젠가는 다시 꼭 여행을 떠나볼게요.”

여행지를 누비며 삶의 흔적들을 기록했던 노마드 인생을 다시 살아보려 한다. ⓒ김재원
여행지를 누비며 삶의 흔적들을 기록했던 노마드 인생을 다시 살아보려 한다. ⓒ김재원

여행을 가지 않는 여행작가로 살아간지 벌써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요. 코로나 펜데믹의 마지막 고비를 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젠 정말 떠나야 할 시간이 된 것 같고요. 오래도록 가장 깊숙한 곳에 방치해두었던 제 배낭부터 다시 챙겨 봐야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칼럼니스트 김재원은 작가이자 자유기고가다. 대학시절 세계 100여 국을 배낭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에 사는 '이주민'이 되었다. 지금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제주인의 시선으로 알리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에세이 집필과 제주여행에 대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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