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전아름 기자】
한국여성민우회가 31일 윤석열 정부의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과제 및 추진 방향에 대해 전면 철회를 촉구했다.
민우회는 우선 이번 정부 발표안이 "지난 2020년 발표된 5개년 계획인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이하 4차 계획)의 ‘모든 세대가 함께 행복한 지속 가능 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전면 부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 4차 계획에서 근본적으로 구조에 개입하는 해결책으로서 전향적으로 제시되었던 ‘개인의 삶의 질 제고’ 등 목표를 현 정부가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목표”라고 평가하면서, ‘결혼·출산·양육이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환경 조성’을 위한 ‘선택과 집중’을 추진 전략으로 내세운 것에 대해 "이는 현상에 대한 미시적 접근에 국한한 구시대의 정책 관점으로 회귀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구문제 대책으로서 결혼·출산·양육에 집중하는 관점은 출산의 주체인 가임기 여성을 문제의 주요 원인이자 정책의 관리대상으로 주목한다는 점에서 해롭다는 주장이다.
이어 민우회는 "특히 이번 발표안의 기본 관점을 살펴보면 현실 진단과 정책 과제 설정에서 성인지의식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며 "4차 계획의 3대 목표 가운데 ‘성평등하고 공정한 사회’가 포함되어 있던 것과 비교하면 명백한 퇴행"이라고 강조했다. "4차 계획에 포함되어 있던 여성에게 부과된 돌봄 책임 완화, 성평등한 일터 조성, 포괄적인 성·재생산권 보장, 젠더폭력 피해 구제와 예방 등의 성평등 제고를 위한 목표와 추진 과제가 완전히 소거됐다"고 주장한 민우회는 "이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책 언어에서 ‘성평등’, ‘여성’을 끊임없이 삭제하고 있는 기조와 맞물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민우회는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공적 돌봄체계의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적극적 대책을 찾아보기도 어렵고, 돌봄노동자의 열악한 고용지위와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는 의지도 전혀없다고 지적했다. 당면한 문제를 회피한 채 기술 개발을 통해 돌봄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대체할 수 있다는 발상은, 돌봄 현장에 대한 무지를 드러낼 뿐 아니라 돌봄의 시장화를 가속한다는 점에서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자녀 가구 직접 지원'만을 확대하는 대책은 양육의 책임과 비용을 가정에 전가한다고 지적하고 "성별 분업구조에 대한 시정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출산·육아휴직을 쓸 수 있도록 기업을 단속하고 육아기 단축 근로 및 유연 근무를 활성화하는 양육 지원 대책은 오히려 여성 노동자에 대한 낙인을 강화하여 기업이 지금보다 더 완강하게 여성 채용을 기피하게 만드는 효과를 낼 것이 분명하다"고 전망했다.
'선택과 집중'해 추진하겠다던 5대 핵심분야 정책에 예산조차 배정되지 않았다는 점 또한 문제라고 민우회는 지적했다. 민우회에 따르면 초등늘봄학교 2023 국고지원 예산은 0원, 신혼부부와 유자녀 가구 공공임대주택 관련 혜택을 주겠다고 하면서도 도리어 올해 공공임대주택 예산은 5조 7000억 원이 삭감됐다.
무엇보다 저출산 대책으로서 '임신 준비 남녀'의 사전 건강관리 사업을 신설하고 부인과 초음파, 난소 기능검사, 정액검사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정책은 "임신과 출산의 직접적인 수단으로서 신체기능만을 '관리'하겠다는 취지"라고 지적했다. 여성 노인의 빈곤과 건강문제에 대한 성인지 관점 대책도 전무한데, 여성 노인의 공적연금 수급률은 남성의 절반이고, 노동 참여율도 남성에 비해 낮은데다 고용지위도 열악해 계속고용제도 등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고려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진단도 이어졌다.
민우회는 "한국 사회 인구문제의 근본 원인은 ‘이 사회가 살만하지 않은, 그리고 누구도 새로 태어나 살게 하고 싶지 않은 사회라는 절망적 인식’"이라며 "주 69시간의 과로에 시달리며, 불평등하게 부과된 돌봄 책임 때문에 일을 포기해야 하고,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받기 어렵고, 혐오와 폭력이 만연해 아무것도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사회에서 개인들은 생존과 다른 모든 가치를 맞바꿀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사회 부정의의 근간에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성차별이 있다. 인구문제는 젠더 문제이며, 해법은 성평등이다. 윤석열 정부는 퇴행적이고 모욕적인 결혼·출산·육아 장려 중심의 저츨산고령사회 정책 계획을 철회하고, 현실에 부합하는 대책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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