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부모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쓰는 편지 - 가고 싶은 유모차
박근혜 대통령님께.
찌는듯한 여름이 물러가고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청와대에서 맞는 가을의 시작은 어떠신지요? 요즘처럼 정국이 시끄러운 때에 제대로 높은 가을 하늘을 볼 기회도 없으실 것 같습니다.
저는 부산에 살고 있는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저에게 무더웠던 지난 여름은 두 아이를 데리고 보내기에 너무나 차가운 겨울과도 같았습니다. 사람들의 무관심에 제 마음이 얼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지난 8월 초, 저는 두 아이와 함께 특강을 듣기 위해서 부산의 한 시립도서관을 찾았습니다. 유모차가 있었지만 도서관에 가려면 시내버스를 이용해야 하기에 10개월 된 아기를 앞으로 안고 네 살 딸아이의 손을 꽉 잡았습니다.
북적이는 만원버스에 올랐을 때, 누군가 자리를 양보해 주겠지 하는 기대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른척 스마트폰만 눌러대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는 이내 괜한 기대란 걸 알아차렸습니다. 오히려 갑갑해서 우는 아기가 민폐가 되는 것 같아 주눅이 들었습니다.
시내버스의 몇몇 좌석에는 '노약자석'이라는 표시가 있었지만 이미 제 기능을 잃어버린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딸 아이의 손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렇게 힘겹게 정류장에 도착을 했고 이제 도서관까지 걸어가야 하는 일이 더 남아 있었습니다.
머리 위를 비추는 뜨거운 태양에도 저는 수업을 재밌게 들을 딸의 얼굴을 상상하며 설레이는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우리 도서관에 가서 선생님이랑 친구랑 재밌게 놀자!"
"응 선생님이랑 친구랑 재밌게 놀꺼야! 히힛"
딸 아이는 저의 말에 신나게 반응을 하며 한 여름 매미의 울음 소리를 따라 했습니다.
어느덧 도서관 정문에 도착했습니다. 고개를 들어 건물을 본 저는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습니다. 주차장에서 1층 로비까지 이어진 수십개의 계단들은 저의 다리를 휘청거리게 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오느라 유모차를 가지고 올 생각도 못했지만 눈 앞에 펼쳐진 계단을 보니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파른 계단으로 유모차가 오르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 었으니까요.
10kg이 넘는 아기를 안고 계단을 오르며 문득 '장애인들은 어떻게 도서관을 이용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건물은 두 바퀴로 이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어 보였습니다.
헐떡이는 숨을 쉬며 1층 로비에서 3층으로 이동하는 엘리베이터를 찾았습니다. 6층 도서관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겠냐 싶어 이리저리 헤맸지만 처음 찾는 방문객이 꼭꼭 숨은 엘리베이터를 찾기는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포기한 저는 안내데스크 앞의 사물함에 어린이집 가방을 보관하며 직원에게 엘리베이터의 위치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직원의 대답이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있기는 하지만 장애인용이라 이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직원의 말은 두 바퀴의 휠체어의 방문객이 아니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인은 계단으로 올라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눈앞에 서있는 저를 보면 아이들과 계단을 오르는게 쉬운 일이 아니란 것쯤은 알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도대체 뭐라는 거야? 여기는 계단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오지도 못하겠구만! 좀 태워주면 안되나?' 저는 속으로 도서관 직원에게 불만을 토했습니다. 융통성이 없는 직원의 태도에 마음이 상한 저는 딸의 손을 잡고 계단으로 올라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때 근처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다른 직원이 복도 끝 철문 뒤에 숨은 엘리베이터로 안내했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앞에는 '장애인용'이라는 글씨가 붙여져 있었습니다. 직원이 열쇠를 꽂아 엘리베이터를 작동시키는 모습을 보니 수고를 덜었다는 기쁨보다는 오히려 마음은 불편 했습니다. 그 뒤 수업이 끝나는 날까지 다시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별것 아닌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유모차가 있어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비싼 유모차는 집에서 자리만 차지할 뿐입니다. 엄마들이 바라는건 유모차에 아이를 편하게 태우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외출할 수 최소한의 사회적 배려입니다.
예전에는 울퉁불퉁 비틀린 거리와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계단은 조금만 수고하면 어렵지 않게 다닐 보통의 길이었습니다. 이젠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보니 바퀴를 이용해 세상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같은 뚜벅이 엄마의 외출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더이상 교통약자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식은땀을 흘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시내버스의 높은 턱도, 한번 이용하려면 멀리 돌아가야 하는 지하철 엘리베이터도 더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유모차를 타고 자유롭게 버스에 오르고, 휠체어를 타고 쉽게 엘리베이터를 찾을 수 있는 그런 친절한 곳.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대중교통의 모습이 아닐까요.
오늘도 아이들과 외출을 하며 하루 빨리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어디든 다닐 수 있는 그날이 오길 기다려봅니다.
◇ 대통령에게 쓰는 편지 공모 안내
'박근혜 대통령에게 쓰는 부모들의 편지 - 가고 싶은 유모차' 공모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응모할 수 있습니다. 유모차를 이용하면서 느꼈던 불편했던 점과 유모차를 이용하게 되면서 교통약자에 대한 자신의 시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적어 보내면 됩니다. 심사를 거쳐 채택된 원고에는 소정의 원고료가 지급됩니다. ▶ 보내실 곳 ibabynews@ibab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