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맞벌이 부부의 저녁 시간
어느 맞벌이 부부의 저녁 시간
  • 칼럼니스트 권성욱
  • 승인 2014.12.21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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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가정의 양립은 남편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해

[연재] 일 가정 양립을 꿈꾸는 워킹대디의 육아칼럼

 

저와 집사람 모두 직장이 가깝고 퇴근 시간 또한 비슷하다보니 서로 시간을 맞추어 함께 퇴근합니다. 제가 직장 어린이집에서 나은 공주를 태우고 집사람이 근무하는 학교로 가면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늘 이렇게 하지는 못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이상 야근이나 출장, 회식이 자주 있으니까요. 만약 집사람이 퇴근이 늦으면 제가 나은 공주를 챙겨서 근처에서 장을 본 후 집으로 돌아와 저녁 준비부터 아이 목욕, 설거지, 빨래 따위의 가사까지 모두 혼자서 해야 합니다. 반대로 제가 늦을 때에는 집사람이 해야 할 몫이죠.

 

퇴근하면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봅니다. 우유, 생선, 고기, 햇반 따위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장을 보는데 아무리 꼭 필요한 것만 산다고 해도 어느새 10만 원이 넘어버립니다. 카트를 끌고 다니다보면 엄마, 아빠가 한눈 팔 때 나은 공주가 뭔가를 하나씩 살짝살짝 집어넣기도 합니다. 자기 마음에 드는 간식거리입니다. 나중에 계산대에 가서야 발견하지만, 과자를 너무 많이 먹지 않는다면야 적당히 눈감아 줍니다. 하긴 저나 집사람도 간식거리를 한두 개쯤 넣어두니까요.

 

예전에는 저녁 준비하는 일이 번거로워서 근처 중국집이나 파스타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기도 했지만 돈도 많이 드는데다 건강 때문에라도 역시 집에서 먹는 것이 제일 좋다는 생각에 요즘은 외식보다는 집에서 저녁을 먹습니다.

 

집에 오면 7시 반쯤 됩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저녁 준비입니다. 저는 요리에 워낙 젬병이라 보통은 저녁 준비를 집사람이 하면 그 옆에서 설거지나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어 베란다에 널어놓습니다. 어제는 반대로 제가 저녁 준비를 했습니다. 지난 주말에 제가 만든 돼지고기 김치볶음밥이 너무 맛있었답니다. 그렇게 얘기하니 솜씨를 발휘해야겠죠. 돼지고기를 적당히 구운 다음 가위로 잘게 썰어 프라이팬에 붓고는 버터를 바른 후 밥과 김치를 함께 넣어 달달 볶습니다. 전에는 직접 쌀을 씻고 압력솥에 밥을 지었지만 요즘은 그냥 햇반으로 대신합니다. 안 그래도 할 일도 많은데 가능하면 편한 쪽을 택합니다. 한쪽에서는 집사람이 고기와 소시지를 굽고 상추를 씻습니다.

 

밥상에 밥과 마트에서 산 밑반찬, 맛김 따위를 올립니다. 나은 공주도 수저와 밥그릇을 나릅니다. 간단한 일이나마 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면 저녁 준비 끝입니다. 그다지 준비할 것이 없는 것 같은데도 30분 이상 걸립니다. 남편의 김치볶음밥이 맛있다며 칭찬을 늘어놓는 게 앞으로도 계속 시켜먹으려는 마음이 느껴지네요.

 

소시지를 먹으며 행복해 하는 나은공주입니다. ⓒ권성욱
소시지를 먹으며 행복해 하는 나은공주입니다. ⓒ권성욱

 

​후식은 나은 공주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 흐르는 물에 씻으면서 꼭지를 하나씩 땁니다. 그 와중에 집사람은 세탁기에 빨래를 넣어 돌린 다음 베란다에 널어놓은 빨래를 걷어 갭니다. 후식을 먹고 나면 나은 공주의 목욕시간입니다. 욕조에 물을 받은 후 반신욕을 시키면서 심심하지 않게 욕실 벽에다 거품 물감을 풀어줍니다. 색색이 거품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면 예쁜 마블링이 되는데 무척 재미있어 합니다. 유산균 먹이고 양치를 시키고 나면 9시​ 반입니다. 자기 전에 책이라도 한권 읽고 싶지만, 아침잠이 부족해 애를 먹는 나은 공주를 위해서는 적어도 10시까지는 다 같이 잠자리에 누워야 합니다. 마음은 재우고 나서 일어나야지 하면서도 몸은 녹초이기에 엄마, 아빠도 어느새 다 같이 잠이 들어버립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부부의 절반 이상이 맞벌이라고 합니다. 여성들의 자아실현과 사회적 성취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결혼할 때 빌린 주택 대출금에다 아이들 교육비, 높은 생활비 덕분에 남자 혼자서 벌어서 가족들을 부양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맞벌이 여성은 정말 힘듭니다. 아이가 어릴 때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가지 않으면 안 되고 가사 일은 끝이 없습니다. 맞벌이가 아니라 전업 주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전의 어머니들은 시부모님 부양에다 아이 여럿을 키우면서 가사 일까지 홀로 도맡았는데 정말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따름입니다. 그토록 혹사당했기에 자식들 다 키우고 나니 허리가 굽고 온 몸에 골병이 들었습니다. 자랄 때에는 당연하게만 생각해 왔던 어머니의 모습. 부모가 되어서 이제야 그 분이 얼마나 고생하셨던가 싶습니다.

 

사회가 변화하고 가치관 또한 바뀌면서 육아와 가사의 분담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육아, 가사는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남편들이 태반입니다. OECD에서 올해 3월 8일에 발표한 남녀 가사노동 비율에서 우리나라가 꼴찌라고 합니다. 하루 동안 남편의 육아, 가사 노동 시간은 아내의 1/5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더욱이 육아에 쓰는 시간은 고작 평균 10분이라고 하니 아이와 눈 한번 마주칠 시간이 있나 싶습니다.

 

물론 남편들도 할 말은 있을 것입니다. 일과 가정을 양립할 여건부터 만들어 달라고. 하지만 지금도 마음만 먹는다면 조금은 더 가족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지 않을까요. 남편이 육아 가사에 보다 적극적이면 아내는 그만큼 여유가 생깁니다. 아내가 여유가 생기면 남편과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에도 여유가 생깁니다. 내가 조금 노력하면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든 남편 분들이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칼럼니스트 권성욱은 울산 토박이이면서 공무원으로 13년째 근무 중이다. 36살의 나이에 늦깎이로 결혼해 모처럼 신혼을 즐기려는 찰나 집사람의 임신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어차피 엎질러진 물에 책임감에 육아서적을 탐독하며 초보 아빠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다. 집사람의 출산 육아 휴직이 끝나자 과감하게 직장에 육아 휴직계를 던지고 시한부 주부 아빠가 돼 정신없는 1년을 보냈다. 현재는 직장에 복직해 맞벌이 집사람과 함께 가사, 육아를 분담하며 고집 센 네 살 딸아이의 수발들기를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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