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도움 없이 아기 낳겠다고?
의사 도움 없이 아기 낳겠다고?
  • 칼럼니스트 정환욱
  • 승인 2011.07.11 15:1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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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와의 만남과 자연출산의 길

[연재] 정환욱 원장의 자연출산 이야기

 

나탈리 부부의 자연출산 모습. ⓒ정환욱
나탈리 부부의 자연출산 모습. ⓒ정환욱

 

오늘도 나탈리에게 전화가 왔다.

 

“Dr. Chung. Please, I will really appreciate it if your help my natural birth. (전원장님, 제발요. 선생님이 제 자연출산을 도와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어요.)

 

“Oh, Natali, Give me a break. I can help you. I do not have any experience of homebirth. And I am not sure how safe it is. Just listen to my advice. Go to hospital and have a safe birth. (오! 나탈리, 나도 좀 봐줘. 나는 자연 출산을 해 본 경험도 없고, 얼마나 그게 안전한지도 모르겠어. 그냥 내 말대로 병원에 가서 안전하게 아기 낳아)

 

벌써 몇 차례 이런 실랑이를 벌인지 모르겠다. 뉴질랜드 출신으로 한국에서 보이스 레코더(Voice recorder: 영어교재 녹음을 해주는 원어민)로 일하고 있는 나탈리는 자궁 외 임신으로 나와 인연을 맺게 됐다. 강남 M병원 근무 시절 나탈리를 처음 만나 자궁 외 임신 치료를 복강경 수술로 도와줬다. 수술 경과도 좋고, 나와 의사소통도 원활하자 나탈리는 나를 편하게 여기고 큰 신뢰를 하게 된 것 같다. 이후 나탈리는 수술 후 몇 차례 외래로 만남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나탈리는 아직 결혼은 하지 않은 남자 친구 사이에 아이가 생겼고, 출산을 원했다. 당시 나는 새롭게 유비클리닉이라는 개인병원을 개업했고 이제 출산은 하지 않기로 생각하고 부인과 질환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예전 병원에서 하루에 50건의 외래 환자와 한 달에 30~40건의 분만으로 며칠에 한 번씩 밤에 호출을 받아 병원에 가야 해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고된 출산에서 벗어나고자 새롭게 개인병원을 개업한 상황이었다. 유비클리닉에서 출산을 할 수 없었기에, 나탈리에게 내가 전에 근무하던 C병원의 영어를 잘 하는 선생님을 소개시켜주며 그쪽에서 안전하게 출산을 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나탈리는 소개 받은 병원에서 돌아와서 내가 자신의 출산을 도와 달라고 계속 요청했다.

 

“Dr. Chung. I want to have a natural birth like my mother and grandmother did in New Zealand. But the doctors you recommended do not understand me. (정 원장님, 저는 뉴질랜드의 저희 어머니 할머니처럼 자연 출산을 하고 싶은데요, 선생님이 추천해 준 의사 선생님들은 제 뜻을 이해 못하세요.”

 

“Neither do I. I have never heard that doctors helped the natural birth. Natural birth is an old-fashioned way. No one gives birth in that way in Korea any more. (나도 이해 못해요. 나도 의사가 자연출산을 돕는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적이 없어요. 자연 출산은 오래된 방법이고 한국에서 어떤 사람도 그런 식으로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아요.)

 

첫 만남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자, 나탈리는 다음번에는 전 세계의 자연출산의 사례와 자연출산을 하는 의사들의 사례를 담은 인터넷과 서적 자료를 들고 찾아 왔다. 이런 식으로 몇 번이나 나를 찾아왔지만, 나도 요지부동이었다. 의사인 내가 나탈리가 원하는 대로 의료 개입을 거의 하지 않는 자연주의 출산을 진행한다는 것이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나탈리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OK, Dr. Chung. Then, could you come to my home when I give a birth as a friend, not as a doctor?. (좋아요 원장님, 그러면 제가 집에서 아이를 낳을 때, 의사가 아니라, 친구로서 제게 와 주시겠어요?”

 

나탈리가 이렇게까지 이야기 하는데, 그 상황에서 “그것도 안 돼” 하기는 힘들었다.

 

“As a friend? Not as a doctor? Omm… then I will think of it.” (친구로요? 의사가 아니라? 음… 그럼 한번 생각해볼게요.”

 

이렇게 말은 했지만, 막상 나탈리가 진통을 시작하고 약속대로 그녀의 집을 찾아가는 나의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 않았다. 우선 무슨 장비를 가지고 가야 할지 정말 막막했다. 생각나는 긴급 장비를 우선 챙겼다. 석션 스포이드, 켈리 클램프스(탯줄 양쪽에 묶는 도구), 가위, 명주실(클램프가 작동 안 할 때를 대비하여)을 챙겼다.

나탈리 집에 도착하니, 남자 친구는 물을 끓이고 있었다. 나탈리는 반갑게 맞아 주며, 전에 자기가 준 출산 계획서(Birthing preference)대로만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우선, 내진을 해서 얼마나 진행됐는지, 어떤 상황인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의사인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조급증을 느꼈다. 그런데, 나탈리가 준 출산 게획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불필요한 내진을 하지 말 것!”

 

사실 나는 각종 모니터와 산모, 아이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장비가 없는 상황에서 내진도 못하게 하는 게 답답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나탈리는 호흡을 하고 물마시고, 욕실을 왔다갔다하며 진통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탈리 남자친구와 나, 남자 둘은 멀뚱멀뚱 나탈리만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나탈리가 물 달라고 하면 물을 주고, 배고프다고 하면 요리를 해서 갔다 줬다. 그렇게 나탈리는 10시간을 진통했다. 새벽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나탈리가 작은 욕실 안에서 나를 불렀다.

 

“Dr. Chung. It’s coming.” (원장님, 아이가 나와요)

 

화들짝 놀라, 욕실로 들어가서 진행 상황을 보았다. 아기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회음절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때, 나탈리가 준 자신의 자연출산 안내문 3번째 줄이 생각났다.

 

“저는 회음 절개를 하지 않겠습니다.”

 

남자친구도 작은 욕조에 들어가 나탈리 뒤를 받쳐 주고, 나탈리는 호흡을 하며 마지막 진통을 이어갔고, 마침내 아기(모지)가 세상에 나왔다. 모지가 호흡이 터지고 울기 시작하자, 나탈리와 남자친구 모두 감동하고 눈물이 그렁그렁 해졌다.

 

“Oh, Natali, You did it. Good job.” (오 나탈리, 해 냈어요. 잘 했어요.)

 

“Thank you Dr. Chung. Is my baby OK?” (원장님 감사해요. 아기는 괜찮은가요?)

 

“Yes, he is fine. He is very healthy” (그럼요. 좋아요. 아주 건강해요.)

 

막상 아기를 받고, 건강한 나탈리를 보니 그 동안 내가 가졌던 의심과 불안이 한 순간 씻겨 나가는 듯 했다.

 

현대 자연주의 출산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랜틀리 딕리드(Grantly Dick-read)는 <두려움 없는 출산(Childbirth without fear, 아직 국내 미번역)>에서 전쟁터에서 자신이 경험한 출산의 모습을 전한다. 정통 의대 수련을 받고, 병원이 아니면 안전한 출산을 할 수 없다고 믿고 있던 딕리드는 포성이 오고 가는 전쟁터에서 한 산모의 출산을 목격하게 된다. 전투가 진행되고 있어, 대기하고 있는 가운데, 의무 막사 안으로 피난민인 듯한 한 산모가 들어오더니, 약간의 신음을 하고 아이를 쑥 낳고, 아이를 옷으로 둘둘 말고, 탯줄로 끊지 않은 상태로 나가는 게 아닌가?

 

이 모습을 보고, 딕리드는 충격에 빠진다. 아이 산모가 의사의 도움 없이도 저렇게 아이를 낳을 수 있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의사가 없던 시절에는 다들 저렇게 자신의 힘으로 아이를 낳지 않았나? 그 후 딕리드는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연구와 출산을 진행하며 현대 자연주의 출산의 핵심 개념인 두려움-긴장-고통(Fear-tension-pain)의 상관관계와 산모가 호흡과 이완을 잘 한다면 충분히 자연스러운 탄생을 할 수 있다는 자연주의 출산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게 된다.

 

나탈리는 나에게 바로 딕리드에게 자연출산의 의미를 알려준 전쟁터의 산모와 같은 사람이다. 나탈리가 가져다 준 자료를 보며, 나는 의심과 호기심이 생겼다. 과연 이렇게 의료 장비 없이 의료 개입을 최소로 하는 자연출산이 가능할까? 그럼 자연 출산에서 의사의 역할은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나의 이 모든 의심과 두려움은 내 눈앞에서 벌어진 어쩌면 너무 나도 당연한 출산의 모습에서 여지없이 사라졌다. 정말 과거에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들은 다 이렇게 경험 많은 출산의 동반자들과 함께 이렇게 자신만의 출산으로 아이를 낳아 오지 않았는가?

 

이렇게 시작한 나의 자연주의 출산의 여정에서 수많은 산모들과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체격 좋은 외국인들이니까 이렇게 자연출산 할 수 있을 거야라는 편견은 수많은 한국 산모들 역시 자연스러운 자신만의 출산을 성공적으로 해 내는 모습을 보며 깨어졌다. 정상적인 위치의 아이들만 가능할거야 라는 의학적인 믿음도 거꾸로 발부터 나오는 역아(breech)도 자연출산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며 수정됐다. 그리고 그 길에서 프랑스의 미셀 오당 선생님, 히프노버딩의 메리몽간 여사,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둘라 등 많은 자연출산 전문가들과의 행복한 만남과 인연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

 

인생을 살면서 귀중한 만남이 많이 있는데, 나탈리와의 만남은 정말 나에게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 결국 나의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다. 자연출산을 통해 생명의 의미와 자연과 신의 섭리에 대해 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수많은 가정이 치유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리고 나와 아내, 나와 딸들의 관계가 회복돼 감을 경험했다. 그녀는 처음에 나의 환자로 나를 찾아 왔지만, 나를 자연 출산으로 이끈 선생님이자 은인이 됐다.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어 그녀와 그녀의 아기 모지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대들이 아니었으면 용기 없는 한국인 의사는 자연출산의 길로 들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Thank you Natali. I owe you a lot." (나탈리 고마워, 당신은 나의 은인이야.)

 

* 정환욱 원장의 출산 Tip: 과거의 출산

 

20세기 이전 모든 인류의 출산은 현대적인 용어로 자연출산이자 가정 출산이었다. 어떤 분들은 병원이 없던 시절 많은 산모들이 출산 중 죽거나 아이들도 잘 못된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의사인 내가 분석하건대, 당시 이러한 의료 사고의 원인은 대부분 임신중독이나 산모가 가지고 있던 다른 질병에서 유발된 합병증 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보온의 미비와 영양 부족이 건강하지 못한 산모와 아이를 만들어 모성 사망률이 높았을 수 있다. 현대인들이 쉽게 생각하듯이 병원이 없었기 때문에, 혹은 의료적 개입이 없었기 때문에 모성 사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행히 현대에는 이러한 고위험 산모들은 대부분 산전검사에서 모니터링 될 수 있다. 이러한 고위험 군의 산모들이 아닌 대부분의 산모들은 충분히 자신의 힘으로 자연출산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칼럼니스트 정환욱은 현재메디플라워여성의원 자연출산센터(www.mediflower.co.kr) 원장과 순천향대학병원 외부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 박사과정을 밟고, 미국국립보건원 암센터 연수를 마쳤으며, 삼성제일병원 부인종양학 교수, 미래와희망병원 원장을 역임했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부인종양학회, 대한의사협회 정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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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 2011-07-12 12:00:00
저희도 나탈리에게 감사드려요.
정환욱원장님께서 나탈리를 만난 덕분에, 그리고 나탈리의 적극적인 요청 덕분에, 우리나라에도 자연주의출산이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또 그 덕분에 저희도 자연주의 출산으로 첫아이를 낳을 수 있었네

onmiy**** 2011-07-12 10:15:00
내진을 하지 않아도 알수 있을까요
자연출산을 하는 것이 이런 것이었군요... 누구나 인생의 길라잡이를 만나는 일이 한번은 있느느데,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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